박혜란 여성학자

“난 중도 아니고 속도 아니야.”

십여년 동안 유명 뷰티크에서 홍보와 판매 일을 해 왔던 내 친구는 자기 자신에 대해 노상 이렇게 말했다. 전업주부로 살았을 때도 왜 자기는 늘 다른 전업주부처럼 주부에 전념을 하지 못하나 해서 불만이었다고 했다. 남편이 이렇다 하게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닌데 재테크에도 별 관심이 없는 데다, 아이가 단 하나 뿐인데도 남들처럼 교육열에 불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림에 재미를 붙이고 사는 것도 아니고 뭐 하나 똑 부러지게 주부노릇을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일을 하게 되면서도 또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도 없고 그 방면으로 크게 성공하겠다는 생각도 없으니 스스로 돌아봐도 영 한심하기만 하다고 했다. 그 친구는 자신을 이 세상의 중심에서 주류로 살아가기엔 여러 모로 모자란 인간, 한 마디로 경계인, 주변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그 친구만이 아니라 주위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경계인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아주 모범답안 같은 전업주부로 사는 것처럼 보여서 나 같은 어정쩡한 주부가 볼 때는 공연히 주눅부터 드는 여성들도 정작 말을 시켜 보면 하나같이 자신이 전업주부 적성도 아니고 능력도 없는데 어쩌다 그 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그냥 흉내나 내면서 사는 거지 본격적인 주부노릇에는 한참 멀었다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성공한 커리어 우먼들도 경계인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대부분의 커리어 우먼들이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는 세상의 주류로부터 밀려났을 뿐만 아니라 소위 여성적 주류인생도 못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엊그제처럼 서울대 입학생들의 어머니는 전업주부인 경우가 압도적이라는 조사 같은 게 발표되기라도 하면 그들의 경계인 의식은 한결 증폭된다.

여성, 비주류 인생?

글쎄 이건 너무 내 중심적인 생각일지 모르겠는데, 아마 '여자라서 너무나 행복한'여자들(그게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정말 궁금해 죽겠다. TV광고로는 내 짐작보다 엄청 많은 것 같던데)을 제외한 여성들은 대부분 죽을 때까지 경계인의 의식을 가지고 삶을 살아나가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도 그렇다. 그냥 그럴 정도가 아니라 내 경우엔 완전 중증이다. 공부도 웬만큼 했고 남들 눈에도 그럭저럭 잘 살아나가는 여성으로 보일 테고 아주 가끔은 어린 여성들로부터 '선생님처럼 살고 싶어요'라는 민망스런 말까지 듣는 처지이지만 나는 갈 데 없는 경계인이요 주변인이다.

경계인에서 벗어나 정치하는 여성 늘어야

주부로서나 사회인으로서나 한 번도 주류에 올라타 봤다는 느낌이 없다. 이 세상도 주인공으로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 그저 구경꾼으로 참여하기 위해 와봤다는 기분이 강하다.

게다가 어떨 때는 내가 이 사회의 경계인 정도가 아니라 혹시 이 지구의 외계인이 아닐까 의문이 들 때도 많다. 예를 들면 두 가지 경우인데 하나는 정부나 기업의 고위직 인사발령에 대한 화제가 만발할 때이고 또 하나는 어쩌다 백화점 같은 곳에 갔을 때가 그렇다. 소위 높은 자리에 대한 왕성한 부러움과 무성한 시기심이 이해 안 될 때가 많고, 마치 전쟁터처럼 비장한 기세로 물건을 사들이는 사람들에 질릴 때가 많다.

그런데 솔직히 난 경계인으로 사는 게 좋다. 경계인으로서 소외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자부심을 느끼니 그게 적성에 맞나 보다. 문제는 모든 여성들이 경계인으로서의 삶에 안주하면 이 세상이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거다. 따라서 많은 여성들이 경계인의 시각을 잃지 않으면서 싫어도 세상 가운데로 들어가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뀐다. 앞으로 정치하는 여성들이 대폭 늘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나처럼 경계인이 적성인 여자가 세상 바꾸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일은? 아, 멋진 아이디어가 있다. <전국경계인연합회>, 약칭 <전경련>을 조직하는 거다. 남녀불문 회원을 모집해서 그 표를 몽땅 여자들한테 몰아주는 거다. 틀림없이 대박 날 거다. 며칠 전 인터뷰차 만난 참한 남자 하나도 말 꺼내기가 무섭게 기꺼이 회원이 되겠다고 자청한 걸 보면.

자, 전경련 가입 희망자들 연락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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