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주재 미국 대사관 밖에서 아프가니스탄 이주자들이 키르기스스탄 시민권 취득 또는 미국이나 캐나다로의 재정착을 요청하는 집회에 참여해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AP/뉴시스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주재 미국 대사관 밖에서 아프가니스탄 이주자들이 키르기스스탄 시민권 취득 또는 미국이나 캐나다로의 재정착을 요청하는 집회에 참여해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군 철수 이후의 아프가니스탄 혼란상에 속출하는 난민들을 위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적극 찾아야 한다는 글을 썼다. 여러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긍정적인 반응이 여럿 있었지만, 부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이런 코멘트가 꽤 있었다.

“자국민이나 신경 써라.”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고, 우리 국민들의 삶을 신경 쓰고 돌보는 것은 나의 의무다. 하여 지금껏 내 모든 의정활동은 온통 ‘자국민을 신경 쓰는’ 데 집중돼있다. 다만 자국민을 신경 쓰는 의정활동을 할 때에도 나는 비슷한 말을 듣는다. 장애인의 이동권과 탈시설을 외치면 ‘정상인’의 인권이나 신경 쓰라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외치면 ‘평범한 사람들’(성소수자도 매우 평범한 존재라는 것을 이 평범한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쯤 이해할까)의 인권이나 신경 쓰라고, 여성 인권을 외치면 남성 인권이나 신경 쓰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을, 여성이 아닌 남성을, 소수자 문제 말고 경제 문제나 신경 쓰라는 말들은 내가 선택한 공적 발화의 주제 자체를 무시하고 다른 주제를 들이밀며 집중력 있는 논의를 방해한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아무리 화제를 바꾸려 해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약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 경제적 불평등은 너무나 크고 명백한 문제이다. 또 장애인의 권리와 비장애인의 권리, 여성의 권리와 남성의 권리, 가난한 이들의 권리와 부자들의 권리는 이분법적 대립 항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운명공동체적 관계이다.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여야 비장애인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고, 여성이 차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남성도 지금껏 그들을 옥죄어온 낡은 젠더규범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삶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우리는 이 질문을 20년 전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파견하기로 결정하면서 진즉에 던졌어야 한다. ‘자국민이나 신경 쓰는’ 대신 군대를 보낼 정도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고 판단한 것은 다름 아닌 우리다.

‘자국민이나 신경 쓰라’는 말은 어쩌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을 우려하는 모든 나라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일지 모른다. 그 말은 어쩌면 미얀마의 군부가 시민 탄압을 우려하는 모든 다른 나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일지 모른다. 우리가 외세에 주권을 잃고 낯선 나라를 찾아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외쳤을 때 일제가 다른 모든 나라들에 하고 싶었던 말도 어쩌면 ‘자국민이나 신경 써라’가 아니었을까.

아마티아 센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 삶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사회적 지혜가 아니라 지적 항복을 택하는 격이 된다.”

올해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국제기구로부터 선진국의 위상을 획득했다. 전쟁과 기아 속에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으며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이제는 ‘선진국’이 된 나라의 시민으로서, 이 불확실한 지구를 함께 공유하며 오랫동안 관계 맺어온 다른 공동체의 어려움을 책임 있게 나눌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대단히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홍수형 기자
장혜영 정의당 의원. ⓒ홍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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