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보는 눈을 길러 주는 스승
이용숙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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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회에서 다시 만난 시종 차림의 왕자와 안젤리나(체칠리아 바르톨리). 1994년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공연.
“넌 왜 그렇게 남자 보는 눈이 없니?”
신의 없거나 괴팍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실패한 친구에게 흔히들 하는 얘기다. 하지만 '보는 눈이 없는'걸로 말하자면 대체로 남자들이 더하다. 같은 여자의 눈으로 볼 때 정말 괜찮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싱글로 남아 있고, 인간적으로 문제가 많은 데다 몸치장에나 신경 쓰는 친구일수록 오히려 연애와 결혼에 강하니 말이다. 남자와 여자가 워낙 밑바닥까지 다르다 보니 양쪽 '보는 눈' 갖추기가 어려운 건 당연한 일. 그래도 가끔은 사람 제대로 볼 줄 아는 '진짜'가 나타나는 법이니, 이제까지의 소신을 굽히지 말 일이다.
지금이 몇 세기인지 문득 의심하게 될 정도로 TV 드라마에는 여전히 신데렐라 이야기가 넘쳐난다. 요즘 신데렐라들은 자신을 '재투성이'에서 아름다운 공주로 변신시켜 줄 마법사의 지팡이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갖은 수단과 간계를 동원해 왕자를 쟁취하지만, 영악한 그들이 이뤄낸 성공은 동화 속 순진하고 멍청한 신데렐라의 성공보다도 진정한 행복과는 더욱 거리가 있어 보인다.
<신데렐라> 이야기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어서 계몽적 차원에서 볼 때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다양하게 패러디해 새로운 교훈들을 만들어냈는데, 그 중 하나가 의붓어머니 대신 의붓아버지가 나오는 로시니의 오페라 <신데렐라>(이탈리아어 원제는 <라 체네렌톨라La Cenerentola>)다.
여주인공 안젤리나는 이름이 버젓이 있지만 의붓아버지 마니피코와 두 여동생에게 늘 '체네렌톨라'(재투성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안젤리나의 어머니는 첫 남편을 잃고 마니피코와 재혼해 딸 둘을 더 낳은 뒤 세상을 떠났는데, 아내가 데리고 들어온 큰딸을 눈엣가시로 여겼던 마니피코는 이 딸이 죽은 아내의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하려고 아예 하녀 취급을 했던 것. 온종일 예쁜 옷 갈아입고 몸매 가꾸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는 두 여동생도 언니를 몸종 부리듯 한다. 그런데 안젤리나가 동화 속 신데렐라와 다른 점은 부뚜막에 앉아 눈물이나 짜지 않고 당당하게 처신한다는 점이다. 이 집에서 밥 얻어먹고 살기 위해 하녀로서 할 일은 다 하지만 불평할 거 다 하고, 동생들이 듣기 싫어 죽겠다는 데도 청소할 때면 끈질기게 노래를 부른다.
거지가 찾아와 먹을 것을 청하자 두 동생은 매정하게 쫓아내려 하지만 안젤리나는 몰래 먹을 것을 갖다주며 그를 따뜻하게 대하는데, 물론 그 거지는 보통 거지가 아니라 이 나라 왕자를 위해 인간성 반듯한 신부감을 찾으러 다니는 왕자의 스승이다. '여자의 겉치장에 현혹되지 말고 그 정신의 고귀함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라'는 스승의 가르침 덕분이었는지, 시종과 옷을 바꿔 입고 이 집에 신부감을 보러 온 왕자는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동생들 제쳐두고 안젤리나에게 반하고, 안젤리나 역시 '진짜 왕자'를 시종으로 생각한 채 그에게 빠져든다. 시종은 계속 왕자 행세를 하며 온 가족을 무도회에 초대하는데, 갖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변장의 진실이 밝혀지고 안젤리나와 왕자는 사랑을 확인한다. 의붓아버지와 두 딸은 안젤리나의 보복이 두려워 사색이 되지만 행복을 찾은 안젤리나는 느긋하게 이들을 용서한다.
현실 속의 남자들이 이처럼 여자 보는 눈을 갖게 된다면…. 새해의 희망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