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동등 조건' 자체가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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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의 변 김찬 공보관님은 여성에 대한 인식,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이 확고한 분입니다. 여성문화 TF팀 회의 때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셔서 여성인 우리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안들에 대해 날카롭게 문제 제기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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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 공보관은 여성사, 여성문화, 여성 시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독서광이다. <사진·민원기 기자>

여성문제 꺼내면 제가 더 흥분해요

양성평등사회 정책당국이 앞장서야

책속에서 삶의 방향성 찾는 독서광

지난해 12월 문화관광부 문화행정혁신위원회 소속 여성문화 TF팀이 내놓은 정책과제 제안에는 눈에 띄는 내용이 많다.

구체적인 사업으로 올해 시행될 공공건물 내 여성화장실 비율 확충 및 보육서비스 강화를 비롯해 ▲문화관광부 내 여성정책 전담부서 신설 ▲양성평등문화진흥법 제정 ▲위원회 여성참여비율 50%까지 확대 ▲여성관련 문화프로그램 예산 확대 혹은 배정 ▲각 문화분야 여성인력 육성 ▲문화관련 분야 여성관련 통계 보강 ▲여성문화정책 종합계획 수립 ▲여성문화 발굴 사업 ▲여성주간과 연계한 여성문화의 날 제정 등 향후 정책의 반영 여부가 주목되는 과제들이 TF팀을 통해 수차례 논의된 바 있다.

지난 15일 어느 때보다 사회 전반의 양성평등문화실현에 앞장서고 있는 문화관광부의 광화문 청사를 찾았다. 여성관련 정책은 물론 일상에서 남녀평등에도 관심이 많다는 김찬(46) 공보관을 만나기 위해서다.

“정책 당국이 관심 갖는 것을 보면서 많은 여성들이 반가워하세요.”김 공보관은 “TF팀의 논의들을 접하고 우리 부내에선 얼마나 양성평등이나 여성에 대해 모르고 있었나 되짚어 보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일상적인 불평등이 남녀 모두에게 내재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스스로도 그런 불평등이 체화되어 있다면서 “우리 사회는 남녀가 똑같이 근무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똑같이 근무하는 것 자체가 여성이 남성보다 두세 배 일을 더하는 것 아니냐”는 '도발적'인 말을 꺼낸다.

여직원이 더 반가워해

“대부분 가사나 육아는 여자에게 맡겨져 있잖아요. 우리 사회 전체적인 시스템이 이미 불평등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8시간 근무라고 한다면 여성은 4시간 근무하는 것이 남성 8시간 근무하는 것과 같다고 봐요. 여성할당 문제만 해도 기왕의 불평등한 상태에서 같은 비율로 가자는 건 부익부 빈익빈 상태가 되기 때문에 할당제를 30%, 50% 비율에 맞추는 건 불평등이라 생각합니다. 승진도 여성이란 자체만으로 더 해야 하죠.”

“말을 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남자들은 남자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두 손 들고 살아야 하고, 여자들은 여자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얘기를 듣자니 어느 페미니스트의 입에서 나온 소린가 싶다.

마침 고개를 돌리니 아이의 미술 숙제로 보이는 그림 액자와 붓글씨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중학생 아들과 아이의 학교 축제 때 냈던 부인의 '작품'이라고 한다. 낮은 철제 캐비넷을 위해 여러 권의 시집이 놓여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환경·사회문제 관심 많아

주변에서 '너무 과격하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는 김 공보관은 사실 일을 하게 된 초기부터 여직원들과 메울 수 없는 틈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함께 일하는 여직원들과의 틈을 메워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부지런히 그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토론하면서 여성에 관한 문제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온 22년 공직 생활은 아직까지도 배울 게 많다는 결론으로 모아져 요즘도 꾸준히 책을 보며 생각을 정리한다.

김 공보관의 개인적인 관심영역은 여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특별히 공개한 도서목록에는 역사, 환경, 여성, 사회, 문학, 문화, 문명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저서의 제목과 주제들이 빼곡이 적혀 있다. 독서노트에 내용을 요약하지 못한 책은 옆에 표시까지 해둔 것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난다. 대학시절부터 모든 종류의 책을 섭렵하며 삶의 방향성을 잡아 왔다는 그의 말이 그제서야 납득이 됐다.

“여성관련 책으로는 <아주 작은 차이> <섹시즘> <나는 제사가 싫다> <말 속에 있는 불평등> 등을 읽었어요. 특히 이하천씨의 책은 처음엔 충격이었지만 눈을 뜨게 되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고 지금은 크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시 맛을 알게 돼 김선우 시인의 <도화 아래 잠들다>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 등 시집을 꽤 본다고 전한다.

중학생, 고등학생 아들만 둘이라는 그가 집에서는 어떤 아빠일지 궁금하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내 자신이 정직하게 살려고 할 뿐 특별히 좋은 아빠가 되어야겠다 그런 생각은 없어요. 애들한테도 그냥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라, 어려운 일 있을 때 상의할 만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얘기해라 정도로만 말을 하죠.”

고 3인 첫째는 학원, 과외를 전혀 안 받고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에 관심이 없다는 아빠 덕에 시험 스트레스가 덜하다.

김 공보관은 “그 동안 배운 학교교육이 삶을 참되게 살아가는 데는 거의 도움이 안됐다”면서 “그 10여 년 동안 좋은 책을 보고 좋은 경험을 많이 하고 삶을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좋은 직장은 못 얻었더라도 좀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갔을텐데”라며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안타까워했다. 다분히 역설적으로 들렸지만 문명을 반성하는 책을 즐겨본다는 그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연신 인터뷰를 쑥스러워 하는 그였지만 인터뷰 말미에 이르자 “이제 여성문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며 눈을 빛낸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건넨 말이었지만, 모처럼 만난 '괜찮은' 남성이라는 인상을 받은 이였다.

임인숙 기자is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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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 약력

▲58년 경기도 광주 출생 ▲77년 경기고 졸업 ▲81년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졸업 ▲92년 미국 Asbury 신학대학원(M. Div.) 졸업 ▲82년 행시 25회 ▲94년 문화관광부 청소년교류과장, 청소년지도과장, 문화정책과장, 예술진흥과장, 관광개발과장, 관광정책과장 ▲2003년 문화관광부 공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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