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욱 국방부 장관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영상으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욱 국방부 장관. ⓒ뉴시스·여성신문

“우리는 해군이다. 바다가 고향. 죽어도 또 죽어도 나라 지킨다.” 내가 어린 시절 들어본 해군의 군가이다. 배열을 유지하여 뛰던 훈련모습과 우렁찬 목소리와 그 노랫말이 생생하다. 며칠 전 해군 여중사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마음이 힘들었다. 나라를 지키겠다던 그 무리가 동료를 죽음으로 몰고 간 기가 막힌 무의식의 함의(consequence) 때문이다.

이 사건 이전에 공군 여중사의 사건이 있었을 때에도 힘들고 괴로웠다. 고인이 된 중사들의 부모님, 연약한 시민의 서러운 마음에 공감하며 가슴이 시리다. 서럽고 노여운 감정을 잠시 추스르고 들여다본다. 이 위중함을. 이 어이없음을.

첫째, 군대는 국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지지하는 국가 조직인데도 내부의 조직 관리와 운영에 대한 품질관리는 엉망인 것 같다. 2021년 국방비 예산은 전체 예산의 13%를 넘는다고 한다. 최신의 무기시스템이 지원되고, 이를 유지, 향상하기 위한 걸 맞는 운영을 지원할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나? 이 두 여중사만의 일인지 합리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둘째, 모든 조직에서 바탕이 되는 조직 문화는 이 나라의 가치와 별개이지 않다. 양성, 젠더에 대한 관점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의 인격과 역할은 성으로 대상화되거나 희생적으로 소비되지 않아야 한다. 위엄을 존중받으며 서로 평등하게 존중하기 위한 노력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 기울여졌다. 그런데 이 번에 일어난 사건들은 이러한 선한 가치와 동떨어져 있다. 군대내 문화의 기저에, 막 대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약자의 속성의 하나로 여성이라는 젠더를 꼽지는 않았는지. 동기를 부추기거나 최소한 방조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셋째, 양성 평등에 대한 내부 통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았다. 내부 통제 시스템은 비용이 들고 제약을 받는 사람들에게 거추장스러울 수 있으나, 큰 사고를 예방하고, 이미 일어났던 사고에 대해서는 다음 사고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언론에 비친 국방부 장관은 국민께 사과하며 면목 없어 했다. 그걸로 끝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작동해야 했던 것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해석을 해본다. 명확해야할 사후 조치가 없었다고 본다. 가장 조직적으로 인식되는 조직인 군대가, 조직적이지 않다.

넷째, 국방 분야에 대한 미래 포지셔닝이다. 현재의 우리 삶에 깊숙이 파고든 과학의 일상화는 군의 사회적 포지셔닝에도 변화가 예고된다. 고전적 의미의 전쟁은 과학전, 심리전, 대테러전, 우주전등으로 다양한 게임양상에 직면할 수 있으며, 다양한 인재를 필요하게 될 것이다. 여성이 꾸준히 진입할 분야이다. 지금 군이 보여주는 역량과 시민에 대한 설득력으로는 미래를 준비하는데 매우 부족하다. 양성평등은 적대적 대치이거나 인격적 상하가 아니라 평등한 동료관계라는 문화가 기저에 빨리 자리 잡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방부 장관이라는 자리이다. ‘장관’이란 직무명이자 직위명이다. 권한을 행사하도록 위임받지만 권한의 행사에는 의미심장한 책임이 쌍이 되어 다닌다. 

이번 사태를 대면하는 과정을 언론을 통해 바라보며, 현 장관의 조직역량 지도력은 의문이 간다. 나는 현 장관과 개인적으로 아는 관계가 아니다. 현재의 이 분이 아니라 다른 분이었다 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이러한 대처는, 인사적으로는 경질감이다. 특히 국방부 장관의 자리는 조직 매트릭스가 탄탄하도록 끊임없이 빈틈없는 군사경영을 해야 한다고 본다. 내부 구성원의 보호는 이런 지도력과 역량에 원천한다. 

모두가 언론을 통해 사죄를 한다. 죽은 딸 앞에서 통곡하며 남은여생 뼈저릴 부모들 앞에 사죄의 변으로 퉁 쳐질 문제인지 유감이다. 진지한 액션만이 진실된 사죄의 첫걸음이다. 모두의 가슴 속에 은은히 빛나던 촛불이 흐물흐물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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