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평등이란 장식품으로 치장한 공주병

대중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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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심 1집 <별 걸 다 기억하는 남자>(1992)

예술작품이란 참 묘한 것이다. 추상적 용어를 사용하는 학문적인 글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사람의 질감까지 느끼게 해주니 말이다. 예컨대 겉으로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해도, 막상 그 사람의 작품에서는 전혀 반대의 남성우월주의나 여성주의에 대한 반감과 허무주의 같은 것들이 드러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사람들이 말로 자신을 가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학문적 용어의 추상성이 지닌 한계, 예술작품이 지닌 감각적 구체성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 것이다.

내가 <별 걸 다 기억하는 남자>을 귀 기울여 들은 것은 어느 여대 신문사 기자들 때문이었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대중가요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는 그 학생들은 무슨 이야기 끝에 이 노래를 화제로 꺼냈다. 요즘 학생들이 아주 좋아하는 노래라면서, 여자에게 이것저것을 요구하는 <희망사항>에 대해 통쾌하게 한 방 날려준 셈이라고 페미니즘적인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평가해 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나를 처음 본 게 정확히 목요일이었는지 금요일이었는지 그때 귀걸이를 했는지 안 했었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 그런 시시콜콜한 걸 다 기억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내 생일이나 전화번호를 외우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아요 / 내가 전화 걸 때 처음에 여보세요 하는지 죄송합니다만 그러는지 번호 8자를 적을 때 왼쪽으로 돌리는지 오른쪽으로 돌려 쓰는지 / 지하철 1호선과 4호선 안에서 내 표정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내 모습까지도 기억하는 남자 / (하략)

<별 걸 다 기억하는 남자>(1992, 노영심 작사·작곡 ·노래)

그때 나는 학생들이 어려서 예술작품의 전모를 이해하는 것이 좀 미흡하다고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는데, 두고두고 생각해 보니 그것은 단지 작품에 대한 이해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이 작품에 충분히 공감하며 동의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은 듯했다. 우리가 서로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을 뿐, 그들과 나는 아주 다른 생각과 태도를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이 노래의 태도가 일종의 '공주병'으로 보였다. 겉으로는 여자가 남자에게 무언가를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요구사항이란 남성을 통한 삶의 성취라는 가부장제적 여성관에서 조금도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남자에게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자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진전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이 정도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면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없을 터다.

성인 취향의 노래에서도 문주란의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나 김국환의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가 나오고 있을 때였으니까. 이런 대중가요들이 우수수 쏟아지고 있다는 것은, 대중의 요구가 달라지고 있는 시대라는 것이고, 이런 시대에 여성주의적이란 평가를 받으려면 이 정도 수준은 넘어서야 한다. 그런데 여자가 남자(정확하게 말하면 애인이나 남편)에게 요구하는 내용은, 수사만 신선할 뿐 본질은 구태의연하다. 이전의 여성형이 '여자인 나의 삶은 당신을 사랑하는 것뿐입니다'에 그쳤다면, 지금은 '나의 삶이 온전히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므로, 남자인 당신의 삶 역시 나를 사랑하는 것뿐이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노래는, 남성을 통하지 않은 여성 스스로의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모색하거나, 남성중심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 테두리 내에서 한정된 남성(애인과 남편)에게 사랑이라는 방법만으로 존중받는 것에만 모든 관심이 모여져 있을 뿐이다. 이는 남성을 가정 내로 끌어들여 편협한 가정 내 평등만을 강요하는, 매우 퇴행적인 평등주의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이기적 가족주의를 강화시키는 부정적인 경향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노동을 통한 여성의 자아실현이 쉽게 이루어지기 힘든 사회적 조건 속에서, 교육받아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키워온 여성들의 출구가, 이렇게 자신이 선택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배려받는 것에 머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문다면, 여성주의의 기치는 그저 '공주'를 치장해주는 장식품일 뿐이다. 본원적으로 보수적인 대중가요는, 이런 퇴행성을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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