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비밀정원] 여성할당제 말고 ‘남성’할당제
[정치의 비밀정원] 여성할당제 말고 ‘남성’할당제
  •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 승인 2021.08.13 16:03
  • 수정 2021-08-13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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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 Human Right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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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할당제(gender quota system)는 여성의 참정권 쟁취 이후에도 여성이 정치적으로 대표될 권리(피선거권)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다.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확보 수단으로서 성별할당제

여성의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1999년 12월 말에 국제의원연맹(IPU: Inter=Parliamentary Union)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의원 비율은 평균 13%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10명 중 한 명만이 여성의원인 상황에서 여성의원은 의원임에도 남성과 동등한 자격과 자질을 갖춘 존재로 인식되지 않았고, 여성의원의 요구와 주장은 하나의 독립된 의견으로 존중받지 못했다. 더욱이 여성의원(들)이 여성의 권리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남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정치에서 젠더의제는 정치의 핵심과제로 논의되기 어려웠고, 젠더관점에 기초한 법·제도·정책의 수립과 개혁도 쉽지 않았다.

이에 페미니스트 정치학자들은 여성의원 수와 비율이 집단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만 정치에서 여성들의 이해가 대표될 수 있다는 임계량 이론(critical theory)을 제시했고, 이를 빠른 시일 내에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 성별할당제를 제안했다.

성별할당제는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회 유엔세계여성대회(The United Nations Fourth World Conference on Women)를 계기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한국 또한 2000년에 정당법 개정을 통해 정치대표성과 관련한 할당제가 처음으로 법제화되었고, 이후 몇 번의 개정을 거쳐 지금의 성별할당제로 제도화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성별할당제

성별할당제는 최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한국과 같이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정당들에게 후보공천에 있어 후보의 성별을 고려할 것을 법으로 명시하는 법적 할당제(legislative candidate quota)이며, 다른 하나는 선출직 의석의 일정 비율을 여성의 몫으로 법으로 규정해 놓는 지정의석 할당제(legislative reserved seats)이며, 마지막은 정당의 당헌과 당규를 통해 개별 정당들이 자율적으로 실시하는 정당 할당제(political party quotas)이다(Dahlerup et al. 2013).

국가별 할당제 유형을 살펴보면,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들 다수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들이 정당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고,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약 57개 국가들이 법적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아시아 일부 국가들을 포함해 중동과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약 25개 국가들이 지정의석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International IDEA 2020).

할당제가 여성의 수적 대표성(descriptive representation) 확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나 할당제 유형에 따라 효과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법적 할당제는 할당제 크기(quota size), 후보 배치(placement mandate), 강제성(enforcement) 등 세부적인 내용들이 어떻게 제도화돼 있는지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 예상 가능하지만 할당제 크기가 크고, 성별에 따른 후보 배치 규정이 있고, 이의 실행을 강제하는 조항이 모두 갖춰졌을 때 그 효과가 가장 확실하다(Rosen 2017; Schwindt-Bayer 2009).

전 세계 할당제 현황 ⓒInternational IDEA
전 세계 할당제 현황 ⓒInternational IDEA

비례대표는 성별균형… 지역구는 남성독점

현재 한국의 할당제는 지역구선거(단순다수제)와 비례대표선거(비례대표제)에 따라 서로 다르게 제도화되어 있다. 지역구는 후보 중 30%를 여성으로, 비례대표는 후보 중 50%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구 후보공천 할당제는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강제력이 없고, 지키지 않아도 정당이 받는 불이익은 전혀 없다. (지방의회에만 지역구 할당제 성격을 가진 ‘여성의무공천제’가 적용되고 있다.) 반면, 비례대표는 의무사항이고, 여성을 홀수번에 배정하도록 하는 교호순번제(zipper system)가 적용되고 있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후보명부 등록을 무효화하는 제재조항을 갖고 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따라 서로 다르게 제도화되어 있는 할당제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측면도 있지만 남성/성 중심의 성별화된 정치체제를 해체하는 데까지는 효과를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총선에서 여성의원 비율이 이전보다 두 배 증가한 때는 비례대표 할당제가 처음 적용되었던 2004년 17대 총선뿐이다. 이때 16대에 5.9%(16명)였던 여성의원 비율이 13.0%(39명)로 두 배 증가했다. 이후 약 16년 동안 6.0%p 증가했는데 이는 4년마다 2.0%p 증가한 것으로 할당제 효과라고 하기 어렵다. 17대 총선 이후 비례대표 의원 성비는 50%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지역구 의원 성비는 21대 총선에서도 남성의원 224명(88.5%), 여성의원 29명으로 남성독점(monopoly)이 유지되고 있다.

적절한 여성의원 비율, 20대 남성은 20%, 20대 여성은 50%

할당제가 적용되는 비례대표 의석수가 전체 의석수의 15.7%(47석)밖에 되지 않고, 따라서 할당제를 통해 정치에 진입하는 여성은 전체의 10%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국회의 여성의원 비율은 전 세계 평균 25.5%보다 낮은 19%이다. 그럼에도 20대 남성들은 이미 성평등한 세상이 됐다며, 할당제를 반대한다.

<성평등한 정치 대표성 확보 방안 연구>(이진옥 외 2020)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중 할당제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면, 20대 남성 중 29%만이 할당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20대 여성은 65%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할당제를 역차별이라고 생각하는 20대 남성은 65%, 20대 여성은 38%로 나타났다(<표 1>과 <표 2> 참조).

현재 19%인 여성의원 비율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20대 남성 중에서는 ‘적절하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가장 높게 나왔으며, 20대 여성 중에서는 ‘매우 적다’와 ‘다소 적다’는 응답이 많았다(<그림 1> 참조). 그리고 적절한 여성의원 비율을 물어본 설문에서도 20대 남성의 응답은 전반적으로 20%를 중심으로 분포해 있는 반면, 20대 여성의 응답은 50%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2> 참조).

적절한 여성의원 비율 응답 X축값: 0~100%  ⓒ이진옥 외(2020, 145)
<그림 2> 적절한 여성의원 비율 응답
X축값: 0~100%
ⓒ이진옥 외(2020, 146)

여성할당제 말고 ‘남성’할당제

‘여성’과 같이 그동안 정치에서 배제된 집단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할당제는 할당제의 대상이 되는 개인과 집단을 능력과 자질 없는 사람, 경쟁도 하지 않고 특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는 동시에 이들에게 끊임없이 자질과 자격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더 중요한 핵심문제는 정치에서 배제된 집단을 대상으로 한 할당제가 그동안 정치를 지배해왔던 (이성애, 중산층, 비장애인, 고학력 등을 갖춘) 특정 남성집단을 정치의 규범(norm)으로 보는 전제를 문제 삼지 않기 때문에 남성 중심의 정치구조를 해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레인보우 머레이(Rainbow Murray)는 할당제를 저대표되고 있는 집단에 대한 목표량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과대대표되고 있는 집단에 대한 한계를 설정하는 것으로 재개념화하고, 남성할당제(quota for men)를 주장했다(Murray 2014). 이렇게 함으로써 남성들 또한 경쟁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검증을 받게 되고, 의회에 진입할 수 있는 후보자 범위(pool)가 넓어져 그동안 정치에서 배제되었던 다양한 집단들이 대표될 수 있으며, 결국 모두를 위한 대표성(representation for all)이 가능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여성할당제에 대한 반대가 높고, 여성할당제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상황에서는 ‘남성’할당제로 논의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몇 퍼센트가 좋을까? ‘여성’할당제 30%도 많다고 거부해왔으니 ‘남성’할당제는 20%로 할까? 이것도 너무 많나? 남성과 똑같은 태도를 보일 수는 없으니 50%로 하자!

여성할당제 필요성에 대한 태도  ⓒ이진옥 외(2020, 96)
<표 1> 여성할당제 필요성에 대한 태도
ⓒ이진옥 외(2020, 96)
남성역차별에 대한 태도 ⓒ이진옥 외(2020, 97)
<표 2> 남성역차별에 대한 태도
ⓒ이진옥 외(2020,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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