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예술평론가

도시에 여러 공해가 있지만 시각공해도 만만치 않다. 그 중 둘째 가라 하면 서러운 것이 바로 '웨딩홀', '웨딩타운'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예식장들이다. 깃발을 단 뾰족한 지붕의 서양 중세의 성이나, 둥글면서 위만 뾰족한 아라비아 궁전의 이미지만 아주 조야하게 따와 울긋불긋한 색깔로 치장해놓은 건물들 말이다. 이런 건물에는 키치란 말을 쓰기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어느 만화평론가는, 1970년대에 나온 순정만화의 표지를 보여주면서 “요즘 저런 예식장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이런 만화를 보며 자라난 세대들이겠지요”라고 했다. 그 표지에는 드레스 입은 눈 큰 소녀가, 뾰족 지붕의 성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물론 그 소녀의 뒤에 백마 탄 왕자가 타이즈 신은 날씬한 다리를 뽐내며 서 있었다.

도대체 우리의 머릿속에 언제부터 이렇게 서양의 공주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자리잡았을까? 왜 멋진 건축물은 돌로 지어져야 하고, 하필이면 서양 고대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열주(列柱)가 자리잡아야 하고(국립극장이나 세종문화회관을 생각해 보라), 아파트 이름까지 '캐슬'이어야 할까. 거기에 다리는 가린 채 어깨를 드러내는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모습을 왜 그토록 선망했던 것일까.

공주병의 본격적 시작은 아마, 해방 후 미국문화의 융단폭격(이 표현은 가요평론가 강헌이 잘 쓰는 말이다, 우리의 미국문화가 미군정이나 전쟁과 무관하지 않음을 형상적으로 느끼게 해준다)과 함께 이루어졌을 것이다. 노래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역력히 드러난다. 미8군 밤무대 출신들이 국내 대중가요계에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펼치지 시작하고, 그에 따라 트로트나 신민요가 아닌 서양식 팝 분위기의 노래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그 속의 여성의 모습은 매우 트로트의 여성상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내 이름은 소녀 꿈도 많고 / 내 이름은 소녀 말도 많지요 / 거울 앞에 앉아서 물어보면은 /어제보다 요만큼 예뻐졌다고 / 내 이름은 소녀 꽃송이같이 / 곱게 피면은 엄마 되겠지

조애희 <내 이름은 소녀>(1965, 하중희 작사, 김인배 작곡)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히스테리가 이만저만 / 데이트에 좀 늦게 가면 하루종일 말도 안해 월 셜 아이 두 /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강짜새암이 이만저만 / 젊은 여자와 인사만 해도 누구냐고 꼬치꼬치 오 헬프 미 / 우우 --- 라라--- /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서비스가 이만저만 / 춥지 않느냐 뭘 먹겠느냐 털어주고 닦아주고 오 탱큐 (하략)

최희준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1961, 손석우 작사·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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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의 최희준

미국 영화에 등장하는 모습들, 남자가 여자의 외투를 받아주고, 식당에서 의자 서비스를 해주며, 문에 들어설 때 '레이디 퍼스트'를 실천하고, 아내와 사교 모임에서 함께 춤을 추는 모습들은, 여전히 남편보다 두어 걸음 뒤에서 고개 숙이고 따라가야 정숙하다고 여겼던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꽤나 신선하고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이 당시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여성 존중과 남녀평등으로 비추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미국이 우리보다 민주주의가 빨리 발전하여 여성의 지위가 훨씬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상당 부분 이러한 관습은 남녀평등이나 가부장제 극복과는 무관한, 서양의 귀부인 숭배 전통과 관련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여성상 역시 가부장제적 남녀 성 역할의 강제적 구분 속에 철저하게 묶여있는 여성상이나 마찬가지이다. 히스테리나 강짜를 부릴지언정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이지는 못하다. 거울을 보며 외모를 치장하고 자신을 선택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꽃송이'일 뿐이다. 자신의 모든 삶을 오로지 남자의 삶과 선택을 통해서만 이룬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노래에서 확인되듯, 겉으로 발랄해 보이는 이들의 꿈은 '아내', '엄마'가 되는 것이며, 최고의 행복은 남자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공주과 여성을 전통적 여성상과 매우 대립적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의 폐해는 꽤 크다. 남존여비의 전통에서 도망간다고 간 곳이 결국 그와 다를 바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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