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채찍질하는 노력파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맞아 여성의 사회참여는 양적으로 늘어났지만 질적 성장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지금까지 알려진 소수의 성공한 여성들은 대부분 조직경험이 적고 개인의 스타성이 부각돼 커리어 롤모델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현재 대기업 임원에 오른 여성들은 남성 중심적인 조직에서 치열하고 오랜 경쟁을 통해 커리어를 쌓아온 이들로서 우리시대 커리어우먼들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롤모델을 제시한다. 2004년부터는 대기업 여성임원들을 통해 각각의 생존 및 성공전략, 리더십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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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희 상무에게는 조직의 화합과 균형을 먼저 생각하는 여성적 리더십이 돋보인다.▶

디자인마다 줄히트 실력 입증

조직 화합·균형 리더십 탁월

후배 진출 '준비된 환경' 최선

최근 발간된 <21세기 여성리더십>에서는 성공한 여성리더의 5가지 역량으로 '진실성, 관계형성, 주체성, 균형감각, 자아명료성'등을 들고 있다. 그것이 바로 여성관리자의 성공비결이기도 하다. 코오롱 FnC 정보실장 김복희(42·사진) 상무야말로 진실성, 관계형성, 균형감각 등 이 5가지 테마를 고루 갖추고 있다. '진실하게 최선을 다하라'가 일에 대한 김 상무의 철학. '성실하고 진실하게'넘치지 않고 정도를 걷는 것이 김복희의 내공이며 성공비결이다.

“특별히 재능이 있는 건 아니구요. 저는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지금의 성과는 다 노력의 결과입니다.”

다양성과 창의력, 감각을 중시하는 패션업계에서 오래 종사한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그는 겸손하다. 김 상무에겐 좌중을 휘어잡는 남성적 카리스마 대신 조직의 화합과 균형을 먼저 생각하는 여성적 리더십이 돋보인다. 회사와 가정, 사람과 일, 열정과 휴식, 상사와 후배, 소비자와 생산자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신의 균형을 잘 잡는 사람이다.

김 상무는 2003년 코오롱그룹 임원인사에서 그룹 첫 여성임원으로 선임됐다. 전체 임원 180명 가운데 홍일점이며 디자이너 출신으로서도 최초다.

작년 한 해 코오롱 FnC는 주 5일 근무제, 웰빙 트랜드에 힘입어 20%이상 매출액이 늘었다. 특히 안시현 선수가 우승하면서 엘로드 골프가 인기를 끌었고, 헤드골프 런칭에 이어 올해 봄시즌 팀버랜드 캐주얼을 새로 런칭할 계획이다. 업계 1위의 자리를 굳히겠다는 각오로 코오롱 FnC는 신임 제환석 사장 산하에 스포츠, 골프, 캐주얼 사업부를 강화했다. 이와 함께 BU(Brand Unit, 브랜드팀)를 9개로 정리, 각 BU가 빠르고 신속하게 실무와 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물류실과 정보실에 새롭게 힘이 더해졌다.

이렇게 도약을 다짐하는 FnC 코오롱 정보실장에 김 상무가 내정됐다.

패션업계에서 여성의 감성경영은 필수 아이템이다. 김 상무의 일은 FnC 코오롱이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상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국내 시장정보와 패션 트렌드를 분석해 회사의 방향을 잡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경영자의 조력자 역할이죠. 고객이 뭘 원하느냐에 따라 패션의 방향과 흐름을 잡고 조언을 합니다. 또한 현업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시장을 보고 마케팅을 읽습니다.”

김 상무는 올해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소비자, 상품, 사회·문화 등을 조사해 브랜드에 반영하는 리서치플랜을 잡아 새 브랜드 개발에 반영할 생각이다.

사실, 김 상무의 임원경력은 2000년서부터다. 미샤에서 3년간 기획이사로 지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창의적인 업무를 하기 때문에 고집스럽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느 단계까지죠. 디자인 실장이 되면서는 브랜드 전체를 봐서 다른 부서나 아래 직원들과의 협력관계를 조절해야 합니다. 저는 어떤 사람에게서건 장점만 보고 모자라는 건 커버해요.”

김 상무는 디자이너로서 단기간 승진한 케이스다. 어느 브랜드를 맡든 디자이너로서 인정을 받았고 매출액 신장에도 곧장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인형 옷 만들기와 종이 인형놀이를 좋아하던 김복희는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디자이너로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우리 어릴 때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없었죠. 사실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 대부분이 복장학원을 수료하고 개인 숍을 가지고 있던 디자이너 선배들이었는데요. 저는 제가 하는 브랜드가 잘 팔렸으면 좋겠다, 제가 하는 브랜드를 사람들이 좋아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바라면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1983년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제일모직에 입사, 결혼 후 1986년 코오롱상사 숙녀복 '벨라'로 옮겼다. 벨라에서 그는 확실히 많은 히트작을 냈고, 매출액에 상당히 기여했다. 이를 인정받아 그는 1996년 코오롱상사 숙녀복 '캐서린 햄넷'디자인실장을 맡았다.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고정시키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이 시기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다.

“브랜드를 잘해서 띄우고 인정받고 나니까, 이번엔 기획이사를 하고 싶었어요.”

디자이너로서 전체조직을 보기 시작한 것이 캐서린 햄넷 디자인실장 때. 그는 점차 여성인력도 능력에 따른 연봉이나 대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졌고, 넓은 시야에서 브랜드를 기획하고 싶어졌다.

“우리 세대에는 여성 롤모델이 없었어요. 오래 남아봐야 디자인실장 정도지요. 3년에서 5년, 단발적인 커리어 계획을 세울 순 있었어도 장기적인 목표를 생각할 수 없었어요. 롤모델이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어떻게 가야 할지 힘들었습니다.”

김 상무는 자칭 노력파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실력파라 부른다. 일처리가 분명하고 사람관계 역시 깨끗하다. 미샤에서 코오롱 임원으로 올 때 그의 능력은 이미 인정된 것.

“실력이나 능력으로 인정받아야지 라인이나 비공식 네트워크에 의존하고 싶지 않아요. 커뮤니케이션은 일하면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임원 1세대라 불리는 김 상무는 지금도 남성임원에 비해 앞으로의 롤모델이 적으며 사실상 네트워크, 정보력, 재무회계 능력 등 경영자 실무 훈련에서 소외돼 왔음을 지적했다.

“여자들 속이 좁고 감정적이라는 건 편견이에요. 오히려 여성관리자들이 일하는 스타일이 시원시원하고 맘이 넓어요. 저는 끊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끊고, 옳다고 생각할 땐 쭉 밀고 나갑니다. 하지만 저에겐 팀웍도 중요하기 때문에 마찰이 생기면 수고를 청하거나 도움을 주면서 빨리 설득시켰어요.”

그런 그를 두고 후배들이 '복복실장' '복복이사'라 부르기도 했다. 김 상무의 상냥한 목소리와 밝은 미소에서 읽을 수 있듯이, 그는 사람들과 감정의 벽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올해부터 코오롱그룹은 계열사마다 여성인력을 30% 이상 뽑을 계획이다. 유통분야 등 섬세함과 창의력이 필요한 곳에 여성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제가 잘 해서 훌륭한 여성 후배들이 준비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할텐데 책임이 큽니다. 정말 어깨가 무겁습니다.”

김 상무의 한 해가 더욱 바빠질 것 같다.

감현주 기자soon@

김복희 상무가 있기까지

가족 울타리가 최고 멘토

성공한 여성들의 대부분이 일과 가정 중 하나를 포기한다. 하지만 김복희 상무는 일과 가정, 2가지 삶의 균형을 맞추면서 성공에 오른 경우다.

김 상무는 초등학생, 중학생 두 아들과 남편, 게다가 시부모까지 모시고 산다. 되도록 야근을 삼가고 주말은 가족들을 위해 보낸다. 정해놓은 영역에서 완벽하게 자기 일을 해낼 수 있는 것도,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빨리 풀 수 있는 것도, 사람에 대한 맺고 끊음이 분명한 것도 다 행복한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김 상무에게 가족은 사회생활 하는 데 가장 든든한 조력자다. 사업을 하는 남편은 경영자의 자질과 실무에 관해 속 깊은 조언을 해주는 최고의 멘토다. 또한 시어머니는 두 아들과 남편 걱정 없이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가정을 이끌어 왔다. 능력이 아깝다며 여지껏 며느리 뒷바라지를 맡아온 것.

일과 가정의 균형을 이루면서 김 상무는 어디서나 중심이 안정돼 있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통했다. 또 일에 대한 집중도도 높아지고 직원들의 다양성을 더욱 존중하게 됐다.

“조직의 화합을 깨고 괜한 말을 만들어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을 팀을 약하게 합니다. 균형감각을 가지면 개인보다는 전체를 볼 수 있지요.”김 상무에게 성공은 짧은 순간 찾아온 결실이 아니다.

감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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