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문화상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2015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청강문화상 수상자

올해 14회를 맞는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시상식은 2008년 여성신문사가 여성문화예술인들의 성장과 지원을 위해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으로 처음 제정했습니다.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사)여성문화네트워크가 함께하며 연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14년간 총 139명의 수상자를 발굴했으며 많은 문화예술인이 여성문화인상과 양성평등문화상을 통해 문화예술을 통한 젠더인식의 사회적 변화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4회를 맞아 주요 역대 수상자들을 만났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더욱 성장한 수상자들의 모습에 많은 기대바랍니다. 매주 공개되는 인터뷰는 11월 온라인 E북(E-BOOK)으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김현정 작가의 모습. ⓒ김현정 작가

아이러니와 풍자. 김현정 작가의 작품 ‘내숭’하면 떠올리는 단어다. 그의 연작시리즈 ‘내숭 이야기’ 속 여성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쭈그리고 앉아 가스버너에 라면을 끓여 먹고, (라면 뚜껑 사용은 필수!), 한복 치마를 걷어 올린 채 맥도날드 배달 오토바이를 몰며, 수많은 구두에 둘러싸여 뭘 신을지 고민하기도 한다. 모두 작가 자신을 모델 삼아 탄생한 이 작품들은, 한복 입은 여인과 현대의 일상을 사회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통 의상과 현대 소품,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본능, 격식과 일상 등 정반대의 요소들이 충돌해 통쾌하고 유쾌한 느낌을 준다. 수묵담채화와 서양의 콜라주 기법을 결합한 독특한 화풍도 김현정만의 작품 세계를 완성하는 큰 요소다.

그의 작품 세계는 ‘내숭올림픽’, ‘21세기 언어’, ‘내숭놀이공원’, ‘계란 한판 결혼할 나이’ 등의 전시회를 통해 변주되고 확장되고 있으며, 여러 상업 브랜드와 예술 협업 작업으로 순수 예술과 상업 예술 사이에서 영리하게 균형 잡고 있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고루하게 느껴지던 한국화도 얼마든 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7년에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그를 꼽기도 했다.

김 작가는 SNS 등 온라인 매체를 활용해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며 한국화의 매력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덕분에 그는 ‘한국화의 아이돌’이라는 닉네임도 얻었다.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당시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에서도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2015년 제8회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청강문화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뒤, 그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김현정 작가의 모습. ⓒ김현정 작가

# 청강문화상,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일까’에 대한 답

2015년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청강문화상을 받으신 지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처음 화가로 활동을 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2013년입니다. 여느 화가들과는 다소 다른 활동을 하면서,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일까?’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5년에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청강문화상을 받았는데, 저의 이러한 행보가 수상을 통해 인정을 받았던 것 같아 기뻤어요. 또 활발히 활동하라는 의미로 상을 주신 것 같아 더욱 열심히 활동을 영위해 나올 수 있었던 계기가 됐습니다.”

# 사람들의 표리부동한 모습을 ‘내숭’으로 희화화

작품 세계가 ‘내숭’을 기반으로 뻗어 나가고 있는데, ‘내숭’이란 어떤 것일까요? 또 그걸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요?

“스무 살이 된 후, 타인의 시선에 무척 민감했어요. 대학에 진학한 뒤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을 접하던 시기였고 저에 대한 평가를 쉽게 내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죠. 인간관계에서 큰 부담을 느꼈죠. 사람들을 만나기가 두려워질 정도였습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앞으로 어떤 사람이 돼야 할지 스스로 물었어요. 그러나 혼란스러울 뿐이라, 저를 쉽게 평가하는 그들을 살펴봤습니다. 저를 쉽게 재단하는 그들도 별다르지 않았어요. 그런데 과연 그들이 나쁜 의도로 나를 평가한 것일까. 본래 ‘악의가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를 비난하는 이들을 싫어하는 것은 결국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요.

작품의 모티브인 내숭은 여기에서 비롯됐어요. 저를 포함해서 사람들의 표리부동한 모습을 희화화하고 싶었습니다. 내숭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는 순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함’이에요. 한국의 문화적인 특성상 내숭을 떠올리면 여성이 연상되지만, 여성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작품에선 단어의 정의부터 성별까지 모두 중립적이에요. 내숭은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면 보편적 욕구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감추고 좋은 모습을 보이려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흔한 ‘불일치’지요. 결국 사회의 통념에 따라 한 개인이 자아의 정체성을 양보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어요. ‘내숭 이야기’를 그리며 ‘내숭’은 어느덧 심리학, 철학까지 아우르는 분석 대상으로 바뀌었어요. 쉽게 말해 ‘내숭 이야기’에서 거론되는 ‘내숭’은 보다 넓은 의미를 포괄하며 자신에 대한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좋게 받기 위해 속마음과 다른 겉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모든 태도를 뜻합니다.”

작품의 제작과정이 궁금해요.

“전통 기법과 콜라주를 함께 사용해요. 촬영 및 밑그림 제작, 채색, 콜라주 3단계 과정을 거치죠. 우선 사진 촬영은 2차례 진행돼요. 인체 실루엣을 그리기 위한 촬영을 한 뒤, 실루엣과 같은 자세를 하고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어요. 내숭이야기는 마치 종이인형 놀이를 하듯 인물 실루엣에 옷을 입히기 때문에 2차례의 사진 촬영은 필수입니다.

사진 촬영을 마치면 촬영된 이미지를 초배지에다 밑그림으로 그려요. 스케치를 마치면 채색을 시작하고, 인물은 담채(淡彩)로, 인물이 활용하는 사물은 진채(眞彩)로 표현합니다. 마지막으로 수묵담채 또는 한지 콜라주를 통해 인물에게 옷을 입히는 것으로 끝이 나요. ‘내숭’의 두드러진 표현상 특징은 바로 이 마지막 단계에서 나타나요.

사실 한복 저고리의 독특한 느낌을 실감 나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고민 끝에 한지 콜라주를 떠올리게 됐어요. 한지 콜라주는 한복의 질감을 드러내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게다가 내숭에서 콜라주는 한복의 효과적인 표현수단인 동시에, 화면에 긴장감과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죠.”

김현정 작가가 콜라주 작업을 하고 있다. ⓒ김현정 작가

 

# 성별과 나이 딛고, 나만의 세계 구축해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여서 자아 성찰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주변에서 도움을 주곤 합니다. 곁에서 응원해주는 가족(아버지, 어머니, 언니, 현동이(강아지)), 친구 저희 작업실 식구에게 참 고맙습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서울대학교 차동하 교수님께 늘 자문했고요. 작품을 하다 재료에 대해 막막하고 궁금할 때면, 국립현대미술관, 지류유물보존처리 장인 차병갑 교수님께 자문합니다. 이론적인 측면에 대해 고민을 할 때는 장진 교수님께 자문하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통할 때 만나게 되는 SNS 친구들을 꼽고 싶어요. 댓글이나, 쪽지 그리고 이메일 등으로 작품을 보신 후 느낀 점, 혹은 개선 방향 등을 마음껏 표현해 주세요.”

한국화지만, 팝아트라 할 정도로 형식과 주제를 벗어난 파격이 특징이라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신 셈이에요. 보수적일 수 있는 한국화(동양화)계에서 이단아로서 새로움을 개척해 나가는데 즐거움과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그림의 소재 측면에서 말씀드리면, 파격적인 소재의 그림이라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과정을 거치며 막막함과 불안함으로 전시를 했는데, 그 전시 반응이 폭발적이다 보니 그 불안함이 점차 확신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릴 때마다 마주하는 나 자신이 편안했고, 그런 나 자신을 화폭에 옮기는 일은 자신을 다독이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젊은 여성화가로서 활동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화가라고 생각하면 흔히 중년 남성을 많이 떠오르시죠(고흐, 고갱, 피카소, 김홍도 등). 미대생의 90%가 여성인데, 교수, 학원 강사, 유명화가 90% 남성인 곳입니다. 그만큼 저는 성별, 나이 때문에 튈 수밖에 없었는데, 10년 가까이 활동을 하다 보니 루머들도 사라지고 응원으로 바뀌었어요.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제는 좀 더 단단해진 것 같습니다.”

작품에는 현대에 대두되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언제부터 여성의 삶과 현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나요?

“제 작품은 자화상입니다. 실제로 생활하는 순간순간에 영감을 얻고, 제 머릿속의 고민을 화폭에 담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림 속에 여성의 삶과 현실이 반영되더라고요. 전시하며 관객분들과 소통을 많이 하다 보니, 여성관객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됐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공감하는지, 앞으로는 어떠한 여성의 삶을 살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대화하다 보니, 현시대의 여성의 삶과 현실을 더 잘 반영하게 됐습니다.”

작가님이 구축해가고 싶은 한국화는 어떤 것일까요?

“제가 구축해나가고 싶은 한국화는 이 매력적인 한국화가 음악처럼 향유하고 즐기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친구들을 만나면 간혹 노래방에 가곤 하는데요. 노래에도 분명 잘 부르고, 못 부른다는 기준은 있지만, 노래방에 있는 순간은 다 같이 즐깁니다. 노래방에 가는 사람들 모두가 음악을 전공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노래를 다 같이 즐기는 데는 문제가 없죠. 미술이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고 미술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것이 목표입니다. 앞으로 저의 활동에 대한 기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작업하고 일은 해태제과 연양갱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양갱 패키지에 작품이 삽입돼 표현되는데요. 왕의 병풍으로 사용된 일월오봉도에서 영감을 받아 재해석했어요. 

요즘에는 MBN <일하는 개미와 노는 베짱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어요. 항상 열심히 일하는 저의 모습과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담긴 예능이에요. 이렇게 현재 저는 다양하게 활동을 통해 예술의 문턱을 낮추는 데 이바지하고 싶어요. 이 매력적인 한국화를 향유하고 즐기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김현정 작가 약력

학력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미술학과 박사 수료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학사,석사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 학사
선화예술중, 고등학교 미술학부

전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국회의사당 서울시의회 | 예술의 전당 | 국립현대미술관

수상 및 활동

Forbes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
동아일보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
EBS <해요와 해요> 댕기언니
서울특별시 홍보대사

수록

2018 고등학교 미술교과서 8종 | 2014 고등학교 미술이론 2018 초등학교 미술교과서 | 2009 중학교 미술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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