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위해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를 예고한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위해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를 예고한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25일, 서울시가 세월호 기억공간을 철거한다는 소식을 듣고 광화문을 찾았다. 그리곤 피켓을 들고 교차로에 섰다. 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지나갔다.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는 세월호 지우기와 세월호 기억관 철거를 중단하라’는 피켓 내용을 담은 뉴스에는 이런 댓글들이 달리고 있었다. “지겹다”, “대체 정치가 어디까지 해야하냐”, “그만 좀 해라.” 이들에게 세월호 기억관을 지키기 위해 온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기어코 ‘불행’을 찾아내는 사람, 수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깨트리는 사람, 사회적 참사를 ‘지겹게’ 얘기하는 사람”과도 같았다.

대체 행복은 뭘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사회적 참사가 있어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화롭게’ 일상을 보내는 것이 행복인 걸까. 많은 질문이 쏟아지는 가운데 고1이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2005년 11월 12일, 수능날이었다. 당시 고1이던 내게는 쉬는 날이었다. 그 날의 기억이 또렷한 건 수능 1교시 시작을 앞두었을 때, 아빠가 운전하고 있던 차의 뒷좌석에 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 나온 아나운서의 말이 생생하다. 학교 고사장 앞에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오가는 모습들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들어가자”라는 아빠의 말에 나는 차에서 내려 병원에 갔다. 당시 내가 살던 곳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동네 정신과였다.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며, 병원에서 준 사전질문지에 체크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질문들이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그 질문들에 답하는 내가 너무나도 낯설고, 불행해보이고, 참담해서 펑펑 울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병원에서 제공한 사전질문들이 아니었다. 병원에서조차 검열하며 솔직하게 나를 마주하기 어려웠던 모습과 ‘시험보는 걸 견뎌내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건 비정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어려움을 외면하게 했던 당시의 사회가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는 감정의 책임을 알지 못해서, 도움을 청할 병원과 주변인들을 찾아가지 못해서, 그럼에도 지금을 살아가야 하기에 수많은 사람이 모순적이게도 ‘오늘’을 유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유보에는 정치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 “과거에 역경과 고난이 있었더라도 이 모든 게 ‘빛나는’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지금은 성실하게 살아야만 하는 사회, 특정한 나이대에 맞춰 가족을 구성하고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자녀와 함께 ‘오손도손’ 지내 말 그대로 행복의 서사를 충실히 이행해야만 하는 사회” 여러 정치인의 출마 선언을 보며 느낀 점이다. 이른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선언 사이에서 내가 확신할 수 있었던 건 그 세상에 나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보편적으로 기획된 행복만을 수호하고, 이에 응답하는 사람들만의 세상으로 ‘행복의 나라’를 연출하며 결국 대통령이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거주할 공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데 ‘결혼을 해야 집이 필요할 것’이라며 제한된 삶만을 선택하며 특정한 지원만을 하며 말이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꾸리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있음에도 정작 현실에 반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선언만으론 부족하다. 행복이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그 언저리에 버려져있는 숱한 감정들이 무엇인지 정치는 말하고, 그 곁에 서야 한다. 1인 가구로 고양이와 살아가는 나의 일상에 대해서도, 그리고 내가 마주해왔던 ‘불행’이라고 일컬어져온 경험 역시 환대받았으면 한다. 나는, 나의 ‘불행’을 말해줄 대선 후보를 찾는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
조혜민 정의당 전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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