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원/ 문학평론가

현진건의 (1924)에는 여학교 기숙사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이 그려지고 있다.

“여학교 기숙사라면 으례히 그런 편지가 많이 오는 것이지만 학교로도 유명하고 또 아름다운 여학생이 많은 탓인지 모르되 하루에도 몇 장씩 죽느니 사느니 하는 사랑 타령이 날아들어 왔었다.”

이를 막으려는 노처녀 사감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 이 소설에서는 여학교 기숙사를 학문을 하는 학생들의 숙소가 아닌 연애의 온상으로 그리고 있다. 그게 어디 현진건의 소설에서뿐이랴. 김동인과 염상섭의 소설에 나타나는 신여성은 학문에는 관심이 없고 자유연애와 사치에만 눈 먼 청맹과니들이다.

이러한 부정적 신여성관은 그 효과가 매우 커 그 후 반세기가 지나 철이 들기 시작했던 필자에게도 '신여성'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들곤 했다. 필자가 얼마 전에 읽은 식민지 시기 인기작가 이태준의 <구원의 여성>이라는 소설에도 여학교 기숙사는 연애문제로 여학생들이 밤마다 잠 못 이루는 곳이요 삼각관계 때문에 찾아오는 남학생이 대기실에서 서성이기도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학교 기숙사에 대한 이러한 호기심은 확실히 남성들의 여성폄하 혹은 고질적인 관음증(voyeurism)의 한 증세라고 평가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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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담그고 있는 학생들>. 이화학당의 경우 해마다 11월이 되면 입동을 전후로 전교생이 일제히 수업을 쉬고 김장준비를 했는데, 이 기간을 김장방학이라 했다. <사진·www.ewha.ac.kr/public/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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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시기 여학생들의 기숙사 생활을 어떠했을까. 1924년 <신여성>에 실린 기숙사의 풍경은 보다 학구적이고 생활적이다. 미국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명신여학교의 탐방기에는 기숙사 풍경이 비교적 자세히 실려 있다.

이 중 도서실에 대한 소개를 보자.

…책장 속에는 여러 가지의 참고서적이 갓득하엿고 책상우에는 <신여성> <어린이>를 비롯하야 여러 가지 잡지가 여러 호씩 모여잇섰난데 그 중에 <개벽> 잡지가 잇든 것과…

이처럼 각종 서적과 의식 있는 잡지들이 갖춰진 기숙사 곳곳에는 사회적 지식을 얻고자 하는 학생들의 열망이 있었다. 그 옆에 흐릿하게 보이는 기숙사 사진은 앉은뱅이 탁자와 책꽂이, 가지런히 정돈된 책이 보이고 벽에는 작은 사진틀이 두 개 걸려 있는 양식풍의 모습이 보인다(사진상태가 매우 흐려 여기 게재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학구적 분위기가 여성들을 사회운동 및 여성해방운동에 동참하게 만들고 소설가, 미술가, 성악가로 탄생하게 되었으며, 교육자나 전문직 여성을 탄생하게 길러낸 것이다. 그들은 졸업 후 사회진출을 꿈꾸었고 독신을 선택한 채 자신의 일에 몰두한 경우도 있었다.

그들의 생활에서도 사치와 허영을 일삼는 생활은 보이지 않는다. 명신 여학교 기숙사 학생의 생활의 단면을 보자. 그들은은 당번제로 식당을 운영했다.

음식은 자긔 손으로 자취하는 고로 보통 한달에 긔숙사 비가 모다 오륙원밧게들지 아니한다하난대 그중에도 돈업는학생을 위하야 그아래로

이등삼등의 등급을 맥이고 삼등으로 먹을 사람은 따로모여서 것칠게먹는고로 한달에 삼원오십전밧게들지 안코 이등은 그 중간이라합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불평등해 보이는 이러한 차등은 그러나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보면 오히려 공평한 것으로도 생각되는데 근대화와 더불어 신분변동의 중요한 창구가 되었던 학교 교육을 받고는 싶었으나 가난하였던 여성들이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기숙사 여학생들이 자취를 한 것은 다른 학교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이화학당에서는 입동을 전후하여 김장을 담그는 김장방학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약소한 기숙사 풍경이나마 여학생들이 사색하고 고민하며 생활하는 공간으로서 기숙사 풍경으로 대치되었으면 한다. 그들은 지배 담론이 유포한 것과는 달리 자유연애에만 사력을 다하는 연애를 위한 자동인형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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