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문화가 바뀌고 있다. 한국가족관계의 전형이라고 했던 '갈등하는 고부관계',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주부', '가족의 중심이던 아버지' 등은 옛말이 되었다. 세계 최저 출산율, 세계 최고 이혼율의 당사국이 된 오늘날의 가족문화를 여성신문이 진단한다.

< 글 싣는 순서 >

1.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여자들

2. 신이산가족 기러기아빠

3. 시집살이 사슬 끊는 신세대 시어머니들

4. 변해야 사는 남자들

5. 주부는 가정의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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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모 병원의 분만실. '둘은 있어야지'라고 하던 말은 옛말이 되었다.▶

급속한 출산율 저하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2년 태어난 출생아 수는 49만 5000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11.1%나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02년 '가임여성 1명당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 출산율은 1.17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과거 저출산 문제로 고민하던 프랑스의 1.89명, 미국 2.13명, 일본 1.33명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남유럽과 동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낮은 수치다. 이춘석 통계청 인수 분석과장의 말에 따르면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은 2.1명 수준으로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020년부터는 국내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여성의 출산이 사회적 문제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1.17%의 낮은 출산율은 앞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출산율이 크게 낮아지면 인구의 노령화도 그만큼 빨라진다. 이미 우리나라는 2000년 65세 노인인구가 전체의 7.2%를 차지하면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상태다. 앞으로 15년 후인 2019년 후에는 노인인구가 전체 14%를 넘을 것으로 보여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인구 고령화 등 사회문제로

젊은 사람이 줄어들고 사회가 늙어 가면 생산성과 성장률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또한 인구 노령화에 따른 연금이나 사회부양비가 증가하게 되고. 이는 청, 장년층의 연금부담이나 부양에 따른 세대간 갈등도 가져올 수 있다. 이에 대해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은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은 우리사회의 인구고령화와 함께 앞으로 연금과 교육, 국방, 노동력 등 국가와 사회전반에 큰 문제가 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출산율 저하의 주된 원인으로 젊은 여성인구의 감소와 만혼 경향과 결혼의 기피현상을 들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대 여성 인구수는 92년에 비해 2002년 8.8% 감소했고, 20대 여성의 결혼 건수 또한 같은 기간 16.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과거와 달리 여성들의 경제활동 증가로 인한 경제적 독립이 가능해지면서, 생활의 편리함과 여유에 따른 여성 독신자 수가 늘어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결혼에 대한 당위성 또한 점차 낮아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이유로 사회 가치관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딩크족'의 증가는 이런 달라진 가치관의 대표적 케이스. 딩크란 결혼한 뒤 맞벌이로 왕성하게 벌고, 아이를 낳지 않고, 일찍 은퇴해 인생을 충분히 즐기겠다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가임기의 결혼한 여성 중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991년 90.3%에서 10년 사이에 58.1%로 떨어졌다. 교육정도나 취업유무와는 상관없이, 젊은 층일수록 '아이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지각혼인·결혼 기피도 한몫

대기업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직장여성 정모씨(26세)는 “요즘 직장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래도 난 좋은 직장도 구했고 월급도 내 생활을 어느 정도 즐길 만큼 받는다. 물론 결혼을 해도 맞벌이를 할 생각이지만 아이는 낳을 생각이 없다. 어렵게 쌓아올린 나 자신의 커리어를 잃을까 봐 두렵고… 결혼하면 육아는 고사하고 가사도 여자 몫이 되는 우리나라 현실인데. 그런 걸 생각하면 애 낳을 자신이 없어진다” 고 대답한다.

이는 또한 우리 사회의 열악한 출산·양육 환경이 출산율 감소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 박의경 교수는 “사회활동이 열리고 여성이 진출하게 됨과 동시에, 가정의 분담체계도 동시에 변화했어야 이러한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았겠지만, 우리 사회는 불합리하게도 남성과 사회모두 출산과 양육에 대한 의무지기를 오랫동안 외면해왔다.

이 때문에 개별적 가정사라든가, 희생적 어머니상을 강조하면서 여성들의 노동시간은 오히려 확대되고 과거 여성들의 '특권'이기도 했던 출산이 지금에 와서는 '부담'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모성보호법에 따르면 임신중인 여성과 산후 1년이 경과되지 않은 여성은 원칙적으로 야간근무나 휴일근무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거의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또한 법으로 출산휴가 90일이 보장되고 1년간의 육아휴직도 허용되지만 이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국여성개발원 김태홍 박사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9월까지 출산한 것으로 추계한 여성임금 근로자 수 4만7천여 명와 비교해 볼 때 산전 후 휴가의 경우 두 명에 한 명 꼴(50.5%), 육아휴직은 열 명에 겨우 한 명(10.3%) 만이 모성보호제도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육시설의 턱없는 부족과 과다한 양육비의 문제도 저출산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네 살 된 아들을 둔 장모씨(35세)의 경우 월급의 대부분이 육아비용으로 들어간다.

“직장 다니면서 아이 키우는 거 한마디로 지옥이나 마찬가지이다.

주변에 마땅히 아이를 돌봐주는 곳이 없어 놀이방에 아이를 맡기고는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놀이방은 아침 8시에나 문을 여는데 거의 매일 회사에 지각하다시피 한다. 놀이방 끝날 시간에 맞춰서 아이를 데리러 와야 하니 퇴근시간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다. 아이가 하나인데도 이러 상황이니 둘째라고? 어림도 없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국공립 시설과 법인 보육시설은 전체 보육시설의 20% 미만이다. 여성이 직장을 다니는 경우 아이를 대신 돌봐 줄 친정이나 시댁의 도움이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나 그렇지 못할 시엔 민간보육시설에 맡기든지 그도 저도 아니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1살 미만의 영아는 맡아 주는 곳도 거의 없는 실정이어서 아이에게 들어가는 양육비와 커 갈수록 늘어나는 엄청난 사교육비의 부담은 저출산의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정부가 저출산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마련하는 출산장려책은 출산수당이나 아동양육보조수당의 도입, 자녀출산시 세액공제 확대, 교육비 경감, 2명 이상의 자녀를 낳을 경우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 등이 포함된다.

출산·보육 국가가 책임져야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정책 추진 안에 반대하는 의견들도 만만치 않다. 우선 여성 노동력과 노인 노동력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는 현 시점에서 출산만 장려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출산장려책이 여성, 개별가정의 문제로 파악해선 저출산의 현상을 막을 수는 없다는 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박사는 “출산수당이나 양육수당 등 단순히 직접적인 장려정책만이 아니라, 보육환경 개선, 여성의 사회진출 장애요인 제거 등 전반적인 출산환경을 개선하는 복지정책으로 나가야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의 경우 독일, 스웨덴은 출산율 증가를 위해 세금감면은 물론 출산기피의 원인으로 꼽히는 여성 차별적 법적 요소를 제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한 우리보다 앞서서 출산율 저하와 인구감소를 겪은 선진국들은 출산과 보육, 교육 문제를 총체적으로 국가가 책임지고 있다. 이제 아이를 낳는 일은 더 이상 여성 개개인과 각 가정의 문제로 떠넘길 일이 아니다. 사회적인 문제, 구조적인 문제라는 데 인식을 함께하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가치관의 변화로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도 출산을 기피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한 명의 자녀나마 경쟁사회에서 처지지 않게 키워야겠다는 욕구가 커졌고 이로 인해 저출산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를 낳고 기르고 교육하는 일이 사회적 책임임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 정책을 펴야만 삶의 질도 높이고 출산율 저하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조은주 줌마기자

출산을 꺼리는 이유

1. 자녀 양육의 경제적 부담이 크고 사회제도 및 시설이 부족해서(33.3%)

2. 아이를 기르는 것보다 내 자아실현이 우선 (20.6%)

3. 결혼하지 않을 것 (19.0% )

4. 부모가 된다는 것에 자신 없다 (15.2%)

5. 기타(11.2%)

이화여대생들의 설문조사: 31% 아이 안 낳겠다 / 한국사회의 출산 및 양육 환경에 대한 만족도- 불만(92%)

육아휴직을 잘 이용하지 않는 이유

1. 근로자의 선택(39.3%)

▲부모 등 자녀를 돌봐 줄 사람이 있어서(28.9%) ▲가정의 어려움 때문(10.4%)

2. 기업의 문제 (55.4%)

▲기업 분위기상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어렵다(21%)

▲휴직 후 복직이 보장되지 않는다(19.3%)

▲기업에 육아휴직제도가 아예 없다(10.1%)

▲결혼이나 출산후 퇴직하는 관행 때문(3.6%)

▲기업의 노골적 퇴사 압력 때문 (1.9%)

3. 기타 (5.3%)

(출처: 한국여성개발원/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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