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이야기] 바람만이 아는 대답
[나의 엄마 이야기] 바람만이 아는 대답
  • 이지은 광진경찰서 화양지구대장
  • 승인 2021.08.07 13:45
  • 수정 2021-08-08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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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 이야기] ⑤ 이지은 지구대장의 어머니

당신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인가요. 시간의 원을 돌고 돌다보면,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엄마라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는 엄마야말로 리더십 에너지의 원천이었고, 어떤 리더보다 더 큰 리더였던 존재였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의 '엄마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이지은
ⓒ이지은

 

“오~ 너 두달간 술 못 마시면 건강해지겠다!” 

작년 5월경 추락사고로 엉치뼈 분쇄골절 8주 진단을 받고 병원에 꼼짝없이 누워있던 나에게 엄마가 한 말이다. 의사는 하반신 마비를 걱정했지만, 대책 없이 긍정적인 건 엄마를 닮았는지, 실은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던 차였다. ‘두 달 금욕생활 후 퇴원하면 간(肝)이 리뉴얼 되어 술자리 천하무적이 되겠는걸?’

엄마는 엄청난 교육열의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엄마는 공부가 싫었지만, 할머니 잔소리가 무서워 공부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나와 교수까지 하신 걸 보면 공부에 소질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딱 이공계 스타일이다. 글 쓰는 거 싫어하고, 남 앞에 나서는 건 더 싫어한다. 음식 냄새를 맡을 땐 손으로 바람을 일으켜 맡고, 숙취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아세트알데이드의 화학식을 이야기한다. 평생을 실험하던 분 답게 소주로 화장품을 만들어 주고, 생강·마늘·양파로 주스를 만들어 줬던 기억도 있다(시도하지 마시길. 웬만한 사람은 못 먹는 맛이다). 신기한 건, 엄마는 과학자임에도 신과 미신을 모두 믿는다는 것이다. 눈 다래끼가 났을 땐 옷 끄트머리를 실로 묶고 자면 낫는다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엄마 책장엔 ‘동양철학으로 풀어보는 주식’과 같은 정체불명의 책들이 많다. 성당을 열심히 다니면서도, 기, 염력, 수맥, 관상, 사주팔자를 다 믿는다. 세상 모든 걸 믿는 엄마는 공감 능력이 뛰어나 그런지 눈물이 엄청 많은데,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 항상 운다.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눈물이 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운다. 

엄마와의 추억에 빠질 수 없는 게 음악과 술이다. 내가 어렸을 땐 당시 유행하던 ‘뉴키즈 온 더 블록’이나 ‘토미 페이지’ 노래를 같이 들어주던 정도였다. 하지만 20살이 되면서부터 우린 본격 음악 찐친이 되었다. 처연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김윤아의 목소리에 반해 함께 자우림 콘서트에 가자고 했던 그 날부터 엄마는 가사를 외우기 시작했고, 콘서트 날 그녀는 떼창의 선봉에 섰다. 내가 친구들과 락밴드 공연을 할 때면 늘 와서 뒷풀이 비용을 보태주었고,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면 같이 음악 술집을 발굴하러 다녔다. 신촌의 LP바에서 밥딜런, 존바에즈의 음악들을 듣고 있자면, 엄마와 나 사이의 30년 세월 차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미국의 6,70년대 음악들이 나에게는 발견이었지만, 엄마에게는 추억이었다. 함께 유럽여행을 갔을 땐 하루종일 0.05% 정도의 낭낭한 혈중알콜농도를 유지했었는데, 그때도 버스킹하던 거리의 악사들을 만나면 우리는 한참을 서서 그들의 인생을 엿보곤 했다. 

ⓒ이지은
ⓒ이지은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20년 가까이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엄마는 싹싹하거나 붙임성 좋은 며느리는 아니었다. 공대 최초의 여자 교수였지만, 집에서는 서툰 며느리일 뿐이었다. 명절이 되면 시댁 식구들 틈에서 열심히 음식을 했지만, ‘교수면 뭐해, 할 줄 아는 게 없는데’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때 엄마는 울었을까? 아빠 회사가 부도났을 때, 실험실 폭발 사고가 있었을 때, 내가 소송에 휘말렸을 때, 대책 없이 긍정적이지만 눈물 많은 우리 엄마는, 울었을까.

골절사고로 한참을 술을 끊었지만, 퇴원 후 나는 딱히 술자리의 천하무적이 되진 않았다. 대신 엄마와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만들었다. 엄마는 내가 병실에 누워있는 동안 실험정신을 불태우며 ‘골절환자를 위한 X싸기 편한 바지’ 이런 이상한 아이템들을 계속 만들었고 나는 깔깔대며 그 옷들을 입어보았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힘들어 보이는 이 세상엔 사실 즐거운 일들이 엄청 많단다’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신이 보낸 나의 엄마는, 그 정도 일들에 울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눈물이 먼저 터져버려 지금껏 날 제대로 야단 한번 못친 엄마를 생각하면 또 내 답에 자신이 없어진다. 오늘밤 엄마랑 C2H5OH(알콜) 한 잔하며 유도 신문을 해 보겠지만, ‘이 모든 답은 결국 바람만이 알고 있지 않을까’ (밥딜런, Blowin’ in the wind 中)

* 필자 이지은은 현재 광진경찰서 화양지구대장으로 경찰젠더연구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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