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이야기] ③ 조효경 CEO와 어머니 김숙년
“학교 다닐 때 소풍날이면
엄마는 항상 김밥 도시락을
두 개씩 준비해주셨다.
소풍 가면 분명히 도시락을
못 싸온 친구가 있을 테니
그 친구한테 건네주라고 하셨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살며시
김밥 도시락을 건네주고 나서는
괜히 마음이 흐뭇해지곤 했다”

당신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인가요. 시간의 원을 돌고 돌다보면,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엄마라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는 엄마야말로 리더십 에너지의 원천이었고, 어떤 리더보다 더 큰 리더였던 존재였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의 '엄마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조효경 ㈜승효 대표이사와 어머니. 본인제공
조효경 ㈜승효 대표이사와 어머니. 본인제공

비가 후둑 후둑 떨어지기 시작하고 금세 빗줄기가 굵어지면 뜰에 무성한 옥잠화 잎이 더 선명해진다. 푸른 잎 사이로 수줍은 새색시 마냥 쑤욱 올라온 가녀린 하얀 옥잠화 꽃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더욱 엄마 생각이 난다. 이맘때면 엄마가 해주시던 옥잠화 불고기, 노오란 호박꽃 아래 방울만 한 열매가 달려있는 암꽃은 호박에게 양보하고 수꽃만 따서 고기소를 넣고 만든 호박꽃 탕, 맨드라미 잎 된장찌개, 아삭아삭 씹히는 오이의 향이 좋았던 편수, 그리고 투명하게 비치는 빠알간 빛이 너무 고왔던 오미자 책면까지..

사대문 안 재동에서 10대를 넘게 살아오시다가, 경술년 한일합방 이후 세상을 듣지 않고 보지 않기 위해 어머니의 고향인 오현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지금의 번동인 오현은 당시 형조판서이시던 엄마의 고조부 할아버지께서 1910년 일제의 강점에 항거하여 순국하신 곳이다. 이곳에서 증조부, 조부, 부모님 이하 여러 삼촌, 고모, 당숙, 당고모들이 함께 모여 4대가 대가족을 이루고 생활하셨다.

종갓집의 맏딸인 엄마는 흙으로 소꿉장난을 하는 대신 식재료로 요리를 하셨다. 세 개의 솥(사과만한 작은 솥 세 개가  한 판에 연결된 솥단지)이 있는 주방에서 직접 요리한 음식을 증조할아버지 상에 올리곤 하셨다.

엄마의 손끝에서는 무엇이든 곱고 아름답게 피어났다.  엄마는 몇 가지 안 되는 식재료만으로도 한 상 가득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셨고, 흰색 레이스 뜨개로 집안을 예쁘게 장식하셨다. 또 색색의 조각보, 털실로 짠 스웨터, 장갑, 모자, 목도리, 바지, 코트, 가방, 인형 등 무엇이든지 예쁘게 만들어주셨다. 수필집, 요리책, 육아책, 동화책을 집필하셨고 서예를 즐기셨으며 한글 궁체로 국전에 세 번이나 입상도 하셨다.

나는 엄마의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엄마는 항상 앞치마를 입고 부엌에 계시거나 글을 쓰고 계셨다. 작고 귀여운 항아리나 소품들이 집 곳곳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엄마 집은 항상 정갈했으며 향기가 났다.

한 달쯤 후면 엄마의 기일이다. 엄마는 항상 내 옆에 계실 줄 알았기에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의 그 충격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렸을 때 꿈에서 엄마 돌아가시는 꿈을 꾸고 깨어나 울다가 꿈이구나 하고 안도했던 것처럼 꿈이기를 얼마나 바랐는지...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많은 분들이 문상을 와주셨고, 며칠씩 주무시며 빈소를 지키거나 매일 방문해 주시는 분들도 여럿 계셨다.

모두들 엄마가 얼마나 사랑을 주시고. 베푸셨는지 우리에게 얘기해 주셨다. 엄마가 떠나신 지 삼 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엄마를 기억하며 자주 연락을 주신다. 삼삼오오 모여 엄마가 좋아하시는 꽃과 함께 음식들을 만들어 엄마 묘소에도 자주 가신다고 한다.

조효경 ㈜승효 대표이사의 어머니. 본인제공
조효경 ㈜승효 대표이사의 어머니. 본인제공

엄마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시고 조용히 많은 선행을 베푸셨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소풍날이면 엄마는 항상 김밥 도시락을 두 개씩 준비해 주셨다. 소풍 가면 분명히 도시락을 못 싸온 친구가 있을 테니 그 친구한테 건네주라고 하셨다. 소풍을 가면 진짜 도시락 없이 그냥 멀리 배회하는 친구들이 꼭 있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살며시 김밥 도시락을 건네주고 나서는 괜히 마음이 흐뭇해지곤 했다. 엄마가 구운 쿠키나 음식들을 이웃은 물론 병드신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반 친구 집에도 심부름 시키셨다.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소풍은 물론 체험 학습이나 견학 수학여행을 갈 때에 준비 못 해 온 아이들을 위해서 김밥 도시락이랑 간식을 넉넉히 챙겨줬고 시집간 딸도 또 손자의 간식을 넉넉히 준비한다. 엄마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조용히 남을 돕게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하신 것 같다.

엄마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서울의 반가음식을 그대로 재현한 전통 요리 연구가로서, 26년간 교직 생활과 국전 서예부문 입상과 평생 실천해 오신 봉사의 공로로 2014년 신사임당 상을 수상하셨다. 엄마는 전통을 이어받은 엄격한 가풍과 교육 그리고 증조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오늘의 엄마를 지탱해 주는 참다운 생의 의미를 느낀다고 하셨다. 엄마가 조상들의 삶을 닮아가듯이 엄마의 아들딸들---우리가, 또 우리의 아이들이 그들의 삶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셨다.

일생 동안 엄마는 가정주부로, 서예가로, 교육자로, 전통 요리 연구가로, 작가로서 쉼 없이 바쁘게 정신하시고 또 정진하셨다. 엄마의 빈자리를 절실히 느끼고 엄마가 많이 보고 싶고 그립지만 나의 정신에 육체 안에 엄마의 가르침과 DNA가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끼며 오늘도 비가 내리는 뜰의 옥잠화 꽃을 바라본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