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내년 예산은 1조1789억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의 약 0.21% 수준이다. ⓒ여성신문·뉴시스
올해 여성가족부 예산은 약1조2325억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의 0.2% 수준이다. ⓒ여성신문·뉴시스

야당발 ‘여성가족부 폐지론’이 등장하면서 이상한 퇴행적 논의가 재미를 보고 있다. 대권주자인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5년 전 발언을 반복하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원에 나서면서 여가부 폐지가 공론장의 현안으로 부각됐다.

여성신문은 올해 초 여성가족부 20년을 기념하는 기획물을 통해 여성가족부가 지난 20년 동안 작은 예산으로 엄청난 일을 해왔고,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하며 앞으로 왜 확대돼야 하는지를 밝힌 바 있다(여성신문 1629호).

위원회 구조는 한계 분명해

긴박한 민생현안들이 산적한 이 시점에서 예산 1조2325억원, 국가 예산의 0.2%를 쓰는 여가부의 존속이 그렇게 중요한 현안인가? 이준석 대표가 당선됐을 때, 반대하는 사람들도 젊은 지도자에게 거는 기대가 있었다. 몇 가지 개혁은 신선해보였지만 젠더 이슈에서는 원로들과 비슷하고 어떤 점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닮았다. 2007년 이 전 대통령은 여가부를 못마땅하게 생각해, 후보 토론회에서는 ‘여가부 확대’를 약속했다가 당선 이후에 폐지하려고 했다. 여성들의 대대적인 반대 움직임으로 결국 전년도 예산의 95%를 줄인 539억원의 초미니 부처 ‘여성부’로 축소된 적이 있다. 그 때 이 전 대통령은 “여성부는 여성권력을 주장하는 사람들만의 부서”라며 반감을 드러냈다.

2021년 야당의 30대 대표와 대선주자는 아예 폐지를 주장한다. 이들이 성평등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여성 할당제가 여성의 발전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처럼 여가부도 효율적으로 일하지 못하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평등은 여가부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부서로 확산되어야 한다며 유 전 의원은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주장했다. 성평등을 더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한 여가부 폐지론이다.

여가부는 우리나라 행정사에서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의존적 존재에서 주체적인 시민으로 만들었다. 유교적 남존여비 개념을 담았던 부녀정책에서 여성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성평등정책으로 발전해온 민주주의 과정에서 여성가족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여성운동이 행정과 결합해 이룬 민관 협치 거버넌스의 대표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정당의 여성인재부터 키워야

유 전 의원은 여가부를 폐지하고 대통력 직속 위원회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위원회’가 가진 한계는 명백하다. 여성부의 전신이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였다. 입법기능과 집행기능이 없는 위원회는 한계가 있어서 작더라도 행정부처로 전환했다.

이준석 대표는 여가부 장관이 전리품 나눠주는 자리였다고 비판했다. 여가부 장관 자리를 그렇게 만든 건 정치권력이었고 여성정책 전문성과 무관하게 권력자들의 취향에 맞는 인사를 했을 때 역풍이 더 커졌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여가부 폐지 주장에 앞서서 할 일이 있다. 여성인재 양성정책부터 개선하는 일이다. 여성인재들이 도무지 성장하지 못하는 정당이 된 이유부터 찾아야 한다. 다선 여성의원들이 많이 포진한 더불어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에는 재선 의원도 두 사람 뿐이다. 여성인재를 일회용으로 생각해온 관행을 전면 수정해야 할 것이다.

여가부에 이어 통일부 폐지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정치 지도자들의 발언이 신중했으면 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반도에서 통일 문제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세계 주요 7개국정상이 서명한 G7 공동성명서에 명시된 성평등 정책을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지도자가 말을 잘한다는 뜻은 말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걱정 끼치는 말을 자제할 줄 아는 것이다. 잘 모르는 건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 여가부 폐지? 이성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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