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섭섭한 게 많아지면 그게 바로 나이 들었다는 신호이니, 늙었다는 소리 듣기 싫거들랑 마음을 활짝 열고 웬만한 섭섭함은 다 날려 버려야 한다고 또래끼리 모이면 누누이 다짐하곤 한다.

아무리 섭섭해해 봤자 나를 섭섭하게 만든 사람이나 세상이 눈꼽만큼도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섭섭함이 쌓이면 분노가 일고 분노가 쌓이면 결국 늙음만 촉진할 테니 건강을 위해서라도 섭섭함 따위는 마음에 들이지 말고 그저 너그럽게, 너그럽게 받아들이자고 서로들 위로한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노력을 한 덕분인지 아니면 섭섭해할 기운조차 사그러든 탓인지 나 개인적으로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사람에 대한 섭섭함은 거의 사라져 버린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섭섭하다 못해 미운 사람들이 엄청 많았는데, 밴댕이 뺨 치던 나에게도 이런 때가 오다니 정말 신기하다.

그런데 그야말로 마음의 평화를 쟁취한 듯 여유만만 미소를 머금고 새해의 소망을 되새기고 있을 즈음, 아니 이럴 수가, 내 마음은 순식간에 섭섭함을 건너뛰어 분노에 이르고 말았다. 그것도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행복해야 할 새해 첫날 저녁 TV 앞에서였다.

집에 부부만 달랑 남았는데 신정이라고 둘이 같이 할만한 별다른 놀이거리가 없었기에 TV를 켠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게다가 그날 따라 웬 8시 뉴스를?(언젠가부터 9시 뉴스를 보다가 잠이 드는 게 일과가 되어 버렸는데.)

언론이 연령차별?

새해 첫날이면 으레 해왔던 대로 그날도 뉴스시간에 그해의 띠를 타고난 시민들의 소망과 각오를 듣겠다며 인터뷰를 하는 순서가 왔다.

맨 처음 그 날 태어난 아기를 보여주고 그 엄마의 소망에 이어 12살, 24살, 36살짜리의 말을 듣고 48살짜리가 나왔다. 그 다음엔 60살이… 안 나왔다. 72살은? 아니, 이 사람아, 지금 농담하나? 나는 분기탱천했다. 이런, 돌텡이들, 왜 60살 원숭이띠 말은 들어 보지도 않는 거야? 60이면 다 살았다는 거야, 뭐야? 60살이 되면 새해 소망도 각오도 없다고 생각하나 보지? 지금 우리나라 사람 평균수명이 몇 살인지나 아는 거야? 기자도 PD도 몽땅 새파란 것들이라 도대체 생각이 너무 짧아. 이러니 사회에 깊이가 없지.

처음엔 의아해 하던 남편도 이내 맞장구를 쳤다. 그래 72살은 좀 그렇다 쳐도 60살을 빼놓은 건 너무했다, 그치? (남편은 작년에 환갑이었다) 난 요즘같이 인생이 자꾸 길어져만 가는 상황에선 84살 원숭이띠는 몰라도 72살 원숭이띠의 말도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다고 우겨댔다.

나부터 반성하는 기회삼아

갑자기 의기투합한 우린 모방송의 9시 뉴스도 들어보기로 했다. 명색이 공영방송이라고 하니 혹시 그 쪽이 좀더 폭넓고 사려깊을지도 모르지 않느냐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결과는 동일. 오히려 24, 36, 48로 더 좁혀졌다. 어리거나 나이 든 사람들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 날 저녁 나는 연령차별이라는 폭력이 휘두른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기분이었다. 물론 나이듦에 관한 책을 쓴 이래 2,3년 동안 나는 우리 사회도 이젠 성차별보다 연령차별이 더 문제라는 말을 노상 하고 다녔지만 새해 첫날 그렇게 노골적으로 연령차별을 선언한 현장을 목격한 건 새삼스런 충격이었다. 하지만 분기탱천도 며칠이 지나니 슬그머니 가라앉고 말았다. 무엇보다 내가 그들을 욕할 자격이 있느냐는 반성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식의 진행에 대해 아무런 느낌을 갖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 역시 오랫동안 연령차별주의의 공범자였던 거다. 세상은 젊은이들이 만들어간다고 믿었으니, 막말로, 당해도 싸다.

그리고 혹시 방송제작자들은 아무리 소망과 각오를 다져봤자 그게 쉽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훤히 꿰뚫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니 그런 헛된 짓을 나이든 이들에게까지 시키는 건 무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이야말로 경로사상이 투철한 이 시대의 효자들?

아무튼 정초의 한 사흘 동안 별 할 일 없었던 나는 그냥 별 의미 없었을 뉴스 프로 때문에 공연히 심사가 뒤틀리고 머리 속이 분주했는데, 여러분은 어떠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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