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올라누스’를 보고 

ⓒLG아트센터
ⓒLG아트센터

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용맹한 장군이 조국에서 추방당하고 적장이 되어 복수전을 벌이고 적에게 처형당하는 이야기. 세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 코리올라누스가 무대에 올랐다.

기원전 5세기 로마 시민들은 이 영웅을 환대하고 집정관으로 추대했다가 곧 탄핵하고 추방시켜버렸다.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도 조국에서 추방당한 쓸쓸한 영웅은 적진에 투항하고 적장이 되어 조국을 공격하는 선봉대장이 되었다. 조국 로마를 제압하고 평화협정을 맺은 이 영웅은 이번에는 그가 승리를 안겨준 적에게서 처형당한다. 이 비극적인 영웅의 이름은 ‘코리올라누스’ .

기원전 5세기 로마 귀족사회는 왕정에서 공화정을 수립했지만 최종의사결정기관 원로원은 귀족만으로 구성되었고, 최고위직인 집정관(2명)도 귀족만이 입후보 할 수 있었다. 뒤이어 시민혁명이 일어나 시민의 대변자 호민관제도를 설치하고 집정관 중 1명을 시민들이 선출하게 되는 등 시민 세력이 성장하고 있었다. 2천5백년 전 시민사회의 태동기를 배경으로 한다.  

연극 코리올라누스는 절대적인 한 영웅과 ‘민중’이라 할 수 있는 시민 집단과의 갈등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이 영웅은 왜 조국 로마를 위해 엄청난 공을 세우고도 로마 시민들에게서 추방당했을까? 또 반대로  승리를 안겨준 적에게서 왜 또 처형을 당했을까? 

작품은 그 비극의 실마리를 ‘오만’에서 찾으려고 한다. 영웅 코리올라누스는 완벽한 엘리트였다. 용맹하고 헌신적이며 보상의 댓가는 사양하고 가족에게도 충실하다. 그의 단점을 찾자면 시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코리올라누스는 시민의 대변자 호민관제도를 철폐하라고 요구하고, 시민을 향해 공짜 식량을 좋아하는 무의미한 존재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시민계급이 태동된 시대에 귀족영웅의 엘리티시즘은 모두를 위한 존엄을 인식하지 못한다. 시민계급의 존재이유를 인정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기준에서 판단하고 말한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오만의 시작이다. 

‘오만’한 영웅은 혹독한 댓가를 치룬다. 자신이 구해준 조국에서 추방되고, 또 자신이 구해준 적군에게 처형당한다. 그의 처형을 지켜보는 관객의 마음에는 질문이 생긴다. 코리올라누스의 잘못이 뭐였지? 코리올라누스가 다시 시민법정에 선다면 몸에 난 상처를 보여달라는 등의 ‘사소한’ 요구에 응하면서 타협하고 중형을 피할 수 있었을까? 또 시민들은 자신들을 지켜준 영웅을 꼭 추방해야 했을까? 시민의 대변자라는 호민관들은 시민들을 이간질하고 여론을 호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역사는 되돌이킬 수 없으니 무의미한 질문이지만 다시 그 상황이 되어도 그들을 똑같이 선택할 것 같다. 그 선택이 최선이었으니까. 그래서 또 이 비극을 반복할 것 같다. 어리석지만 최선이었던 인간의 선택은 비극의 영원한 테마다. 

연극 '코리올라누스' 양정웅 연출가 ⓒ뉴시스‧여성신문
연극 '코리올라누스' 양정웅 연출가 ⓒ뉴시스‧여성신문

기원전 5세기를 무대로 17세기의 세익스피어가 쓴 희곡을 21세기의 양정웅이 연출했고, 젊은 배우들이 연기했다. 양정웅 감독의 멋진 연출 덕에 그 오래전 사건을 바로 지금 우리들의 문제로 공감할 수 있었다. 시민의 대변자로 뽑힌 로마의 호민관들의 분장은 나쁜 기자들을 연상케 한다.  코리올라누스의 반역죄를 입증하는 증거로 휴대폰에 녹음된 ‘(시민을 무시하는)몹쓸 발언’파일이 제출된다. 무채색의 지하벙커에서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무대, 현대적인 안무와 의상, 간간히 등장하는 유머러스한 장면 등 세련된 무대가 관객을 끌어들인다. 

코로나 시기 어려움 속에서도 수작을 무대에 올린 극단 여행자에 박수를 보낸다. 7월 3일부터 15일까지의 LG 아트센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8월 20-21일 경남 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한다. 공연 즐기는 사람들에겐 놓치기 아까운 작품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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