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벗은 몸은 외설스럽다! 고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 보통의 남자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옷을 벗는 여자연예인들은 짐짓 당당하게 아니라고, 자신이 벗는 까닭은 예술이기 때문이다! 라면서 외설과 예술의 경계에 선 채로 어깨, 가슴, 배꼽, 무릎, 엉덩이, 그리고 헤어누드까지 내보이며 누드집을 출간하고 있다.

여성 누드집의 집단적 소비자는 남성이다. 인터넷 포르노사이트는 몇 년 동안 여자 연예인의 섹스장면 비디오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해 몰래 찍은 유명 여성의 벗은 몸 사진과 사생활은 유통이 힘들어졌다. 어쨌든 유명한 여성의 벗은 몸은 그것이 예술이든, 외설이든, 장사가 되는 품목인데, 그것이 힘들어지니 그 틈새에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이 자발적으로 벗었다는 미명하에, 아름다움과 예술의 이름으로 여성연예인의 누드집 출간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자고 일어나면 누가 벗었네, 앞으로 누가 벗을 거네, 파격적이네, 털이 나오네, 안 나오네 하고 떠들어댔다.

몸매가 아름답다고 소문난 여자들의 이름이 줄줄이 이어지고 나면 인터넷엔 누드집 출간을 앞둔 그녀들의 인터뷰가 딸려 나오고 네티즌들은 어떤 여자의 가슴이 이쁘다, 성형이다, 크다까지 순위를 매겨댔다. 아쉽게도 나는 그 여성들의 누드집을 본 적이 없다. 아니, 관심도 별로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내가 여성연예인의 누드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런 소식들 끝에 이어지는 누드의 소비양태 때문이었다.

메일의 편지함마다 쏟아져 들어오는 에로 혹은 포르노사이트의 제목에서 나는 그녀들을 만났다. 성현아 누드, 함소원 누드, 이지현 누드, 보시라, 보기만 해도 금방 쌀 것이다! 누구는 털이 보인다까지.

어떤 몸매 출중한 여자가 늙어서 볼품 없어지기 전에 가장 아름다운 한 시절의 아름다운 몸을 스스로의 욕망에 의해 누드를 찍었다고 해도(어쩌면 계약에 묶여 억지로 찍혔을 수도 있다) 나는 그 누드가 소비되는 경로가 심히 불쾌하고 우려된다.

불특정 다수의 남성들의 시선에 철저하게 붙들린 채, 시궁창 같은 그들의 끈적한 욕망의 한가운데에 홀딱 벗은 채 버려지고 소비되는 그녀들의 몸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안쓰럽다.

그녀들이 자발적으로 몸의 가장 완벽한 순간을 잡아놓기 위해 그리스 해변에서, 옛 궁전에서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어도, 그래서 그녀들에게 여신이니, 도발적이고 힘찬 스포츠 누드니 하고 떠들어대도 그들의 섹시한 포즈가, 완벽한 몸매라는 것이 그녀 자신의 욕망에는 전혀 소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녀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여성의 욕망이나 자신의 욕망에 부응하고 복무하라는 말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자신의 몸의 이미지를 소비하는지는 알았으면 좋겠다. 제발 속아넘어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들의 누드가 예술작품으로까지 인정되어 누군가의 책꽂이에 꽂혀 아름다운 여성의 몸으로 추앙받으리라는 그런 착각 말이다. 착각하지 않는다면 나중에라도 상처입고 나가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바란다.

그녀들이 몸에 붙은 옷을 벗어던지는 것처럼 여성의 벗은 몸에 달라붙는 더러운 시선들까지 가차없이 떨쳐버리기를. 그 시선의 의미를 알고 있기를. 그래서 온갖 에로틱한 이미지로 도배했을지언정 끝내 당당하고 아름다웠고 당찼던 마돈나처럼 그녀들도 그럴 수 있기를.

권혁란/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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