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문화상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현대미술가 마리킴

올해 14회를 맞는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시상식은 2008년 여성신문사가 여성문화예술인들의 성장과 지원을 위해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으로 처음 제정했습니다.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사)여성문화네트워크가 함께하며 연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14년간 총 139명의 수상자를 발굴했으며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여성문화인상과 양성평등문화상을 통해 문화예술을 통한 젠더인식의 사회적 변화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4회를 맞아 주요 역대 수상자들을 만났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더욱 성장한 수상자들의 모습에 많은 기대바랍니다. 매주 공개되는 인터뷰는 11월 온라인 E북(E-BOOK)으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현대미술가 마리킴 ⓒ마리킴
‘아이돌’의 작가 마리킴은 예술성과 상업성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아티스트로 꼽힌다. ⓒ마리킴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소녀 ‘아이돌(Eye Doll)’. 너무도 유명한 이 캐릭터는 뷰티 아이템 패키지나 가벼운 데일리백에서 발견될 뿐 아니라, 세계적인 경매회사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이우환, 서도호 씨의 작품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아이돌’의 작가 마리킴은 예술성과 상업성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보기 드문 아티스트로 꼽힌다. 그는 국내 네오팝의 대표 주자로, 2008년 첫 전시회로 이름을 알린 이후 지금까지 국내외 미술계 이슈의 중심에 서왔다.

마리킴의 작품은 국내뿐 아니라 독일 베를린, 중국 상하이, 미국 LA, 영국 런던, 홍콩 등의 유명 갤러리에 소개되며 국내외 컬렉터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동시에 2011년 걸그룹 2NE1 뮤직비디오 ‘Hate You’의 감독이자 미니앨범 아트디렉터로 나섰고,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는가 하면, ‘아이돌’ 캐릭터로 만든 패션 브랜드 마리마리(MARIMARI)를 론칭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술계 최고 이슈인 NFT(Non-Fungible Tokens: 대체 불가능한 토큰) 열풍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NFT이란 블록체인(암호화 기술)을 적용해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을 보장하고 양도 또는 판매를 허용하는 디지털 인증서다. NFT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그림은 누구든 자유롭게 복사할 수 있지만, 소유권을 가진 작품 주인은 실물처럼 소유한 작품 파일을 재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이미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NFT 작품이 나와 고가에 낙찰됐고, 베이징현대미술관에서는 크립토아트라는 암호화폐를 장르화하기도 했다. 마리킴의 NFT 작품 ‘미싱&파운드’는 2021년 3월 진행된 NFT 플랫폼 디파인아트 사이트 경매에서 약 6억 원(288 이더리움)에 낙찰됐다. 국내 첫 NFT 미술품 경매였으며, 낙찰가는 현재까지 거래된 마리킴의 작품 중 최고가였다.

NFT 이슈가 식기도 전인, 5월 그는 자전적인 주제의 작품으로 개인전 <나도 공부가 싫었어>를 마련했다. 자신의 유년 시절 모티브에서부터 현재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작업까지 선보인 전시였다. 어린 시절의 향수가 아련하게 느껴지는 수채화 드로잉을 중심으로 채워졌으며, 1년 전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마스터피스’에서 선보인 오마주 작품 일부도 선보였다. 자전적 전시인 만큼 갤러리 한쪽에는 작가가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바비인형, 만화책 등 다양한 소품으로 꾸며졌다. 마리킴과의 인터뷰는 작가의 유년 시간이 오롯이 담긴 바로 그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마리킴은 011년 걸그룹 2NE1 뮤직비디오 ‘Hate You’의 감독이자 미니앨범 아트디렉터로 나섰다. ⓒ여성신문

# theme 01 놀이가 일이 되다

현대미술가 마리킴 ⓒ여성신문

작품을 보니 영감을 형성했던 유년시절이 궁금해졌어요.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나요?

전시회 제목처럼, 어렸을 때는 공부를 안 했어요. 유년 시절엔 선택할 권리가 없으니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며 자랐지만, 조금이나마 자유가 생긴 청소년 시절부터는 공부를 안 했죠. 비행청소년까지는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고민할 만한 애였을 거예요. 학원비로 만화책 보러 가고, 동생은 오락실 보냈으니까요. 학교에서 만화책 보고 자다가 머리에서 정전기가 나기도 했어요(이 시기의 이야기는 아이돌 ‘정전기’ 시리즈에 묘사된다). 엄마가 집에 없을 때는 외국 영화를 볼 수 있을 만큼 봤어요. 공포 영화와 컬트영화를 좋아했죠. 집에서 그려온 만화를 자습시간에 친구들에게 보여주던 생각이 나요. 수업시간에는 밤새 만화책을 본 여파로 잠을 자고 자율학습 시간엔 일어나서 만화책 보고 그림을 그렸죠. 겁은 많아서 술을 먹지도 않았고, 엄마가 무서워 가능한 테두리 내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했던 것 같아요.

호주 로열 멜버른 공과대학에서 애니메이션(학사)과 크리에이티브 미디어(석사)를 전공했어요. 어떻게 작가의 길엔 어떻게 들어섰나요?

어릴 때는 꿈이 없었어요. 공부를 하지 않아서 성적이 좋지 않았죠. 그러다 막연히 호주에 가서 애니메이션에서 본 양떼목장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엄마는 ‘그래도 영어는 배워오겠지’라는 생각에 보내주셨어요. 호주에서 처음으로 자유롭다고 느꼈고, 친구에게 디자인 툴을 배우고 그걸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컴퓨터 디자인 단기 코스에 들어갔어요. 그 이후 쭉 관련 공부를 하게 된 거에요. 공부라고 표현했지만 제겐 즐거운 놀이에 가까웠죠. 그러다가 좋아하던 만화 그림을 컴퓨터 툴을 이용해 그려서 매일 블로그에 올렸어요. 2년 동안 700개의 그림을 올렸죠. 그 그림으로 전시를 했고, 그것이 직업이 됐네요.

미술을 전공하지 않고도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형적인 입시 미술 스타일을 공부하지 않은 것이 굉장히 유리했다고 생각해요. 미디어를 전공하면서 그림을 생각하기 전에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생각하는 훈련을 하게 됐고 그런 점이 제 전시와 작품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클림트의 ‘키스’를 오마주한 ‘Tree of Life’ 등 명화를 원용한 작품들도 인상적이에요.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작가들인가요?

오마주 작품들은 작년 마스터 피스 전시의 연계 작품들로, 제가 제 스타일의 작품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던 것들이에요. 유년시절엔 그런 작품들을 볼 기회가 없었고 전시나 순수 미술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럼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은 누구인가요?

엄마와 아빠입니다. 엄마는 어릴 때 우리 남매 옷을 만들어 입히고 뜨개질을 해서 외투나 겉옷을 만들어 주셨고 이불 등을 만들고 수를 놓으셨어요. 어릴 때는 엄마가 손수 만들어주신 옷을 입고 등교하는 것이 무척 싫었지만, 돌이켜 보면 엄마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아빠는 저희 남매가 궁금해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 표현해 보여 주셨습니다. 한번은 참치통조림을 먹다가 ‘참치는 뭐야?’라고 묻자 물고기의 반을 갈라서 위는 검은색이고 아랫부분은 하얀 참치를 그려주셨어요. 그때 아버지의 그림이 지금도 제가 생각하는 참치의 모양이에요. 아빠의 대학 시절 노트를 우연히 보았는데 거기도 글과 그림이 있었습니다. 두 분은 아티스트로 활동하지 않았지만 재능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이렇듯 어렸을 때 보고 배운 기억은 매우 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부모님께 무엇보다 중요한 DNA를 물려받았으니까요.

# theme 02 여성 작가의 위치, 느리더라도 변화를 일으키고 싶어

마리킴의 2021년 개인전 '나도 공부가 싫었어' ⓒ여성신문

2013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청강문화상’을 수상하신지 벌써 8년이 지났네요. 당시 그 상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당시는 지금보다는 훨씬 신인이었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는데 상을 받게 되어 놀랐어요. ‘10년 후에는 대상(올해의 여성문화인상)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당시 대상은 인순이님이 받으셨는데, 그분처럼 훌륭한 여성의 모습으로 계속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상 당시, ‘한국의 여성 작가라는 마이너리티를 생각하며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어떤 의미였는지?

여자는 대부분의 직업군에서 마이너리티입니다. 작가라는 직업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 작가라는 점도 불리한 점 중 하나였어요. 역사적으로 문화와 예술 유산이 많고 발전한 나라의 작가들이 주로 유명하고 성공하고 있었으니까요. 최근에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성장하면서 국가 브랜드 경쟁력이 많이 올라가긴 했지만, 여전히 미술이나 클래식 음악 등 몇몇 나라의 작가들이 활동에 유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느꼈습니다.

8년 전과 지금의 여성작가의 위치는 어떻게 달라진 것 같으신가요?

요즘 미국에서도 반인종차별과 반성차별 운동 등이 일어나며 흑인 여성 작가나 마이너리티에 대한 전시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천 년 전부터 화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직업군이 남성 위주로 되어 있다는 것은 7년이라는 시간으로 쉽사리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천천히라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노력하려 합니다.

당시 2ne1의 앨범 재킷 디자인을 맡으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는데, 지난 8년을 돌아보면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요?

활동을 더욱 왕성하게 한 것 같아요. 드라마틱하게 시도해 봤던 일들도 있었어요. 2016년에는 단편영화 찍었고, 같은 해에 학고재에서 전시했었죠. 2020년에는 가나아트센터에서 꽤 큰 전시를 했어요. 최연소로요. 2017년에는 패션브랜드 마리마리를 론칭했어요. 해외에는 예술적인 굿즈가 굉장히 많지만, 우리나라에는 없어서 안타까웠거든요. 올해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할 예정이에요. 다만, 제가 모두 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사업이 다른 길이니 올해부터는 사업을 잘하는 분들에게 맡기려고 하고 있어요.

작품에서 동심이 느껴지는 것처럼, 실제 모습도 나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아요.

요시모토 나라라는 일본 작가를 보면, 70살이 다 되어가는 데도 젊은 청년 같은 느낌이 있어요. 작가들은 대부분 다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가나아트센터에서 하는 장흥 아틀리에라는 곳을 사용 중인데, 작가들이 50명 정도 모여 있어요. 그분들을 보면 저보다 더 나이가 많으시더라도 너무 젊으시더라고요.

# theme 03 신기술 접목해 세계 미술시장 트렌드 따라가다

현대미술가 마리킴 ⓒ여성신문

최근 NFT 기술을 접목한 예술 작품인 ‘미싱&파운드’(2021)가 6억 원에 낙찰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어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요?

피카 프로젝트와 유튜브 관련 회의를 하면서 우연히 NFT라는 분야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는 이미 많이 행해지고 있는 터라 한국에서도 빨리 시도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저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 있어서 새로운 기술인 NFT를 작품에 접목했어요. 이미 세계적으로 수많은 NFT 플랫폼이 생겨나고 작품이 거래되고 있으며 미술시장도 빠르게 발맞춰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미술 전공이 아닌 미디어를 전공한 작가가 전통적인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것이 불리했다면, 현물이 존재하지 않은 블록체인 기술로 디지털화한 작품이 거래되는 세상은 저 같은 작가에게 매우 유리한 것 같아요.

NFT 작품인 ‘미싱&파운드’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중국 민중화가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을 오마주했어요. 아이웨이웨이는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작품 활동 때문에 정부의 탄압을 피해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하지요. 아이웨이웨이의 행위는 실종됐던 것들을 찾는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요. 제 시도도 실종된 예술시장을 찾는 데에서 그의 행위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유튜브로 일반인도 쉽게 공부할 수 있는 레슨을 하고 있어요. 어떤 취지에서 시작했는지 궁금해요.

<나도 공부가 싫었어> 전시에서 보여주듯 그림을 전공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어요. 또 그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현재 계획하고 있는 일이나 목표가 말씀해주세요.

팬더믹으로 국내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전시하게 됐고, 해외 일정이 많이 취소된 상태이에요. 내년에 독일 전시를 열 수 있었으면 좋겠고 계획된 LA 아트쇼나 뉴욕 일정 등에 참여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마리킴 약력

현재 마리킴컴퍼니 대표

2021 개인전 ‘나도 공부가 싫었어’, 서울옥션 강남센터

2020 Masterpiece-Immortal Beloved, 가나아트센터

2019 Masterpiece-Immortal Beloved, LA Convention Center, Los Angeles, USA

2019 Masterpiece - Immortal Beloved, Pontone Gallery, London, UK

2018 Synchronicity – When People Meet, JR Gallery, Berlin, Germany

2017 Days of Future Past, Pontone Gallery, Taichung, Taiwan

2016 La Vie Parisienne, Simone 0914 Gallery, Seoul, South Korea

2016 Synchronicity, Gallery Bundo, 대구/대한민국

2016 Days of Future Past, Pontone Gallery, 런던/영국

2016 Days of Future Past, LA Art show 2016, 로스앤젤레스/미국

2016 SETI, 학고재갤러리, 서울, 한국

2015 Romance in the age of Chaos, JR gallery, 베를린/독일

2015 Forgatten Promises, Hak Go Jae gallery, 상해/중국

2014 Synchronicity, Shine Artists Gallery, 런던/영국

2014 Famous Show in Berlin, JR Gallery, 베를린/독일

2014 Famous Eyedoll show, AP contemporary Gallery, 홍콩.

2013 Famous Show in Hong Kong, Houbour City, 홍콩

2012 Famous Show3, 가나아트 갤러리, 부산

2012 Famous Show2, 오페아 아트갤러리, 두바이

2012 Famous Show, 가나아트 갤러리, 서울

2011 2NE1 앨범 디렉터

2011 2NE1 뮤직비디오 ‘Hate you' 감독

2011 Child Play, 텔레비전 12 갤러리, 서울

2009 EYEDOLL SHOW, LVS 갤러리, 서울

2008 <EyeDoll 마리킴의 기묘한 만화경, 아이돌> 출판, 리더스컴 출판사

2008 Sugar Candy Show, 쌈지일러팝갤러리, 서울

2007 단편영화 ‘목구멍 속 금붕어’ 감독

 

수상내역

2013 제6회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청강문화상

인터뷰어 두경아 작가 

- <레이디경향>취재기자, <여성조선>취재팀장 역임
- 현, 라이프치히M&B 대표, 프리랜서 기자,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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