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여성도서관 둘러싼 성차별 논란에
인권위 “기증자 의사 꼭 따를 필요 없어”
결국 1일부터 남성에도 도서 대출 허용

제천여성도서관. ⓒ뉴시스·여성신문
제천여성도서관. ⓒ뉴시스·여성신문

여성교육기관 건립을 조건으로 기부한 여성의 의사에 따라 세워진 제천여성도서관이 이달부터 남성에게도 도서 대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시립 공공도서관이 남성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성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충북 제천시에 “여성도서관 시설 이용에서 남성 이용자가 완전히 배제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 제천시는 이를 받아들여 이달부터 남성들에게 대출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1994년 개관한 제천여성도서관은 고 김학임 여사가 ‘여성으로 살면서 느낀 교육기회 차별을 해소해 달라’며 여성교육기관 건립을 조건으로 약 11억 상당의 부지를 기증하면서 설립됐다. 김 여사는 평생 삯바느질을 하며 모은 전 재산을 제천시에 기부했다. 시는 이같은 고인의 뜻에 따라 약 8억의 예산을 들여 여성도서관을 개관했다.

“평생교육 시설 이용에 있어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 진정 제기

제천여성도서관을 둘러싼 성차별 논란은 지난 2011년부터 10년간 지속됐다. 2011년 29세 남성 장모씨가 “제천시가 지난 1994년 시립여성도서관을 설립·운영하면서, 여성만 이용 가능한 것으로 정해 남성의 이용을 배제하고 있다”며 “이는 평생교육 시설 이용에 있어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도서관 측은 도서관 설립 역사와 다른 4곳의 공공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 도서관의 편의 시설이 여성에 이용에 맞춰져 있어 여남 공용으로 사용하기 부적절하다는 점을 성차별이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장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듬해 2월 남성도 해당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시정할 것을 제천시에 권고했다. 당시 남성연대가 남성 출입을 허용하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시는 도서관 1층을 시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북카페로 꾸미는 등 일부 시설을 개조했다. 다만 인권위는 이를 ‘권고 수용’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제천시 “개관 당시부터 기증자의 기부채납 조건에 따라 이용되고 있다”

제천시가 이 북카페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한방쇼핑몰을 만들자 지난해 다시 유사한 진정이 인권위에 제기됐다. 이번 진정으로 제천시 측은 “여성도서관은 개관 당시부터 기증자의 기부채납 조건에 따라 여성들의 자기계발 및 독서를 위한 전용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기증자는 개관 후 사망 시까지 여성도서관 건립에 만족하며 자랑스러워했다”며 “유족 또한 여성도서관이 본래 취지대로 운영되는 것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도서관에 남성용 화장실이 없는 점 △계단 폭이 120cm로 좁아 남녀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려운 점 △남녀공용 전환 시 예산 소요는 큰 반면 이용자의 만족도는 떨어지고 도서관으로서의 효용성이 저하될 거란 점 등도 소명했다.

이어 “남성이 도서관 이용을 원할 경우 여성도서관에서 1.5km 거리에 있는 시립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며 “또한 도서관 내 시설이용은 제한되나 도서대출을 위한 자료실의 이용은 가능하고 향후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이 함께 참여가능한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주장했다.

인권위 “지자체가 기증자 유지 반드시 따를 이유 없다“

인권위는 지자체가 기증자의 유지를 반드시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유재산법 제13조는 지자체 등에 기부채납을 하는 자가 기부에 조건을 붙일 수 없다고 정하고 있어 기증자의 의사에 어떠한 효력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며 “지자체 등이 기증자의 의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의사는 참고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타당하며 시설 운영을 위해 연간 약 9600만원의 예산과 5명의 인력이 투입되고 있는 정황을 볼 때 사적인 기증자의 의견이 공적 시설의 목적에 반(反)하여 우선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기증자 의사에 따라 여성 특화 도서관을 운영한다 해도 프로그램이나 자료구입 등 내용적으로 전문성을 확보해 운영할 수 있어 남성 이용을 완전히 배제하는 방식이 불가피하다 보기 어렵다”며 “다원성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모든 구성원이 함께 어울려 발전해나갈 수 있는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한 “특히 지식정보 습득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자료실 출입을 허용하지 않거나 이용 중 생리현상 해결을 위한 남성화장실을 한 곳도 설치하지 않은 점은 남성의 시설이용을 과도하게 제한해 남성을 배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공공도서관의 운영 목적을 벗어난 것으로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제천시는 이달 1일 인권위에 남성들도 도서 대출·반납 서비스를 이용케 하기로 했다고 회신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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