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3.jpg

◀진선미/ 변호사 법무법인 덕수

참으로 허망했다. 그렇게 염려하던 상황이 벌여졌다. 호주제폐지에 관한 법률이 어렵사리 국무회의까지 통과했지만 본회의 상정도 못 해보고 한해를 마감했다.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으니 어찌하면 좋으냐는 피해여성들의 눈길을 어떻게 받을까? 지난 한해 호주제에 매달린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정말 호주제가 너무 지겨워서 호빵도 먹기 싫은 심정이다.

모두라고 할 수 없지만 여러 국회의원님들은 호주제가 가족제도의 붕괴를 가져온다는 해묵은 이야기를 맹목적으로 답습하거나 내심 내년총선의 표를 의식해 괜한 불씨를 안고 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방관자적 태도로 일관했다. 호주제 폐지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국회의원을 개별공략하기도해보고 호주제 폐지를 지지하는 의원들에게 평등보약을 전달하기도 했다. 차가운 날씨에 릴레이 1인시위도 불사했으며 포장마차토론회와 같은 이벤트도 기획했다. 호주제 폐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온갖 방법들을 총동원해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의원들과 일반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술 한잔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호주제에 관한 논의를 벌여보자는 취지로 기획했던 포장마차 토론회의 실망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결정권을 가진 의원님들과 만나려고 손을 호호 불며 기다렸지만 초청받은 현직 국회의원님들은 단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많이 안타깝지만 그렇게 서글프지만은 않았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오랜만에 회포를 풀 수 있는 자리였기 대문이다. 물론 자위하는 것이다.

호주제와 관련한 논의과정에서 여성들이 더 나아가 호주제 폐지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당한 곤욕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유림의 대표격인 어떤 분은 모 방송국에서 마련한 토론자리에서 한 남성이 “호주제 때문에 아내가 차별받는다고 생각되어 내가 호주로 되어있는 호적을 무호주로 변경해 달라는 신청을 하게 되었다”고 하자 다짜고짜 “그 아이가 당신 자식인지 우선 확인이나 해보라”는 폭언을 했다. 그 자리에는 '그 아이의 할아버지'도 함께 있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사석이라면 상대방의 뺨을 때리고 싶다”라는 말도 들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마련한 공청회에 자리에서 호주제 지지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자리한 토론자는 정해진 시간이 짧다며 정해진 시간의 3배인 1시간 동안이나 자신의 의견만을 '주장'했다. 유림의 예가 이것인가?

이것 뿐이 아니다. 변호사에게 확인까지 해봤다면서 '호주제를 없애면 일부다처제가 공식화되기 때문에 그 동안 착한 마음으로 애써 참았던 남자들도 모두 사생아를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도 했다.

호주제가 사라지면 모든 전과자들이 새로이 신분을 위장할 수 있게 되어 사회가 혼란에 빠진다느니, 근친상간을 막을 수 없게 된다느니 하는 말들을 이제 그만하자.

호주제가 바뀌면 그들의 주장대로 가족의 해체현상이 더욱 가속화되는 것인가

기존에 있던 가족의 해체는, 아니 변화는 진행되는 실제 상황이다. 다만 어느 책에선가 지적하고 있듯이 문제의 심각성은 가족의 '재구성'을 위한 언어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호주제 폐지는 가족해체의 원인이 아니라 현 시대의 새로운 가족의 재구성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다. 가족의 유대관계는 호주제가 아닌 사랑과 실천에 의한 교육에 의하여 담보될 수 있다.

호주제와 함께 새해를 맞은 것이 못내 맘편하지 않지만 다시 한번 마음을 전열을 가다듬자.

어른이 공경받고 아이가 존중되는 민주사회와 호주제가 유지되는 사회는 더 이상 같은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게을러서 미루다가 이제는 호주제가 없어져야 혼인신고를 하겠다는 남편과 나 역시 떳떳(?)한 부부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