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적 노래의 효시 <가요! 나는 가요>
여성주의적 노래의 효시 <가요! 나는 가요>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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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예술평론가

눈을 조금만 뜨고 보면, 이 세상에 노래라고 하는 건 오로지 대중가요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눈을 크게 뜨고 남들이 잘 안 보려고 하는 것까지 살펴보면, 의외로 많은 것들이 눈에 띈다. 대중가요 중에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노래가 아니라 라디오나 콘서트에 가야 만날 수 있는 노래도 있고, 홍대 앞 클럽에 가야 만날 수 있는 노래들도 있다. 혹은 옛날 사람들이 부르던 민요나 판소리도 있고, 어릴 적 부르던 동요도 있고,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던 구전가요도 있고, 민중가요라는 독특한 노래들도 있다.

여태까지 이 난에서는 대중가요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어차피 대중가요란 보수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다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 사회의 보수적 사회의식과도 충돌하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하고, 대중의 다양한 욕구와 욕망 중 비교적 대중들이 편안하게 받아들여 잘 팔리는 노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대중가요는, 대중들의 진보성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다. 대중들이 저만큼 한참이나 앞서가면, 그제서야 못 이기는 체 반 발자국 뒤로 따라온다. 왜? 많은 대중들에게 팔아야 하는 대중가요가 대중보다 너무 앞서가면 장사가 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일찌감치 페미니즘 의식은 대중가요가 아닌 '민중가요' 속에서 싹텄고 그 속에서 발전해왔다. 민중가요란 애초부터 대중가요가 지닌 보수성에 대한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끼리 가꾸어낸 문화다.

합법적 음반과 방송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검열과 심의 기준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자본이 개입하지 않아 장사에서 이윤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애초부터 없기 때문에, 철저히 향유 대중들의 요구에 의해서만 선택되고 유통되는 그런 노래문화다. 이런 민중가요 문화 속에서 비로소 페미니즘은 노래와 만나게 된다.

1. 가요 가요 나는 가요 꽃가마 타고 가요 / 머리에는 꽃관 쓰고 온 몸엔 색동 입고 / 가요 가요 나는 가요 꽃가마 타고 가요 / 잘못 되면 어떡하나 걱정 잔뜩 받고 / 가요 가요 나는 가요 꽃가마 타고 가요 / 사람이 아냐 생명이 아냐 손때 묻은 노리개예요

2. 가요 가요 나는 가요 꽃상여 타고 가요 / 눈 에는 꿀 바르고 입에는 대추 물고 / 가요 가요 나는 가요 꽃상여 타고 가요 / 잘못하나 어디 보자 눈총 잔뜩 받고 / 가요 가요 나는 가요 꽃상여 타고 가요 / 사람이 아내 생명이 아냐 길들인 짐승이에요

3. 가요 가요 나는 가요 훨훨 벗고 가요 / 싱그러운 몸냄새로 싱그러운 소리로 / 가요 가요 나는 가요 훨훨 벗고 가요 / 나대로 살련다 바램 잔뜩 안고 / 가요 가요 나는 가요 훨훨 벗고 가요 / 목석이 아냐 짐승이 아냐 하늘 같은 사람이예요.

<가요! 나는 가요>(김문환 작사, 이요섭 작곡)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은 이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 민중가요의 수는 수백 곡에 이르지만, 이 정도로 강한 페미니즘 의식을 지닌 노래는 매우 드물다. 김민기가 지은 <금사슬 은사슬> 정도를 더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 점에서 이 노래는 한국 여성주의 노래사 같은 것을 이야기한다면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이 노래는 지나치게 이런 의식을 드러내고자 '작정하고' 만든 티가 역력하다. 뭔가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절실한 느낌보다는 학습된 내용을 노래가사로 꾸며 놓았다는 느낌이 훨씬 강하다. 그래서 노래 부르는 사람으로서는 그다지 즐거운 노래가 아니다. 재즈 음계를 이용한 경쾌한 선율과 리듬이 재미를 주기는 하지만(내 경험으로 미루어보자면) 여자인 내가 내 입으로 '손때 묻은 노리개예요' '길들인 짐승이예요'를 부를 때의 마음은 적잖이 불쾌했다. 아무리 3절에서 '하늘 같은 사람이에요'로 마무리한다 해도, 작품 전체의 주제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하더라도, 뭔가 여성이 대상화되는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게다가 1, 2절의 구체성에 비해 3절은 매우 추상적이며 그나마 3절은 부를 때의 중요도도 낮아진다.

아마 이런 한계는 여성문제를 몸보다는 머리로 이해하는 남성 창작자의 역량에서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1970년대 중반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좋은 노래를 만들고 확산시키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만들어진 노래로(<진달래>, <언덕에 서서> 등도 이 사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 사업에 간여했던 간사 김문환(현 서울대 교수)이 가사를 짓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노래를 많이 작곡했던 이요섭이 곡을 붙였으며, 그곳에서 발행한 노래책 <내일을 위한 노래>에 실려 널리 알려졌다. 그래도 이 노래의 의의는 줄어들지 않는다. 이후 페미니즘 노래는 1980년대 말의 안혜경의 노래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이 노래는 여전히 독보적 위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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