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eappl@hanmail.net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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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해가 멋있게 지는 곳에 가서 12월 31일 '해넘이'를 보거나, 아니면 이름난 곳을 찾아가 새해 첫날 첫 '해돋이'를 보곤 한다. 해넘이와 해돋이로 유명한 곳을 향해 가는 차량들로 길이 막히고, 높은 곳인 경우는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엉켜 번잡하기 이를 데 없다는 소식에 우리 식구들은 길 떠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늘 그렇듯이 텔레비전을 통해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무덤덤하게 '해바꿈'을 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우리 식구들에게도 '해넘이'를 본 기억이 있다. 지난해 말, 웬 바람이 불었는지 정말 말 그대로 충동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서해안 신두리 바닷가로 향했다.

12월 31일이 되려면 아직 며칠 남은 어느 날이었다. 파도와 바람에 밀려온 모래가 쌓여 언덕을 이룬 해안 사구(砂丘)로 유명한 곳이라는데, 강풍이 불고 추운 날이라 다른 구경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거세게 뒤척이는 겨울 바다에만 눈길이 갔다. 평소 아파트 건물 사이로 뜨고 지는 해에 익숙한 내게, 바다 저 끝의 작은 구릉 위로 넘어가는 해는 새롭고 낯설었다. 일상과는 무언가 좀더 다른 분위기에서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고 싶은 마음에서 사람들은 길을 떠날 것이다. 내게도 물론 그런 마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묵은 것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완전히 새 출발을 하든, 그저 신발 끈만 다시 고쳐 매고 가던 길을 그대로 가든 중요한 것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그 새로운 걸음을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물건 중에서 손가락 끝으로 하나를 들어올려 옮겨 놓듯이, 어떤 큰 존재가 우리를 들어올려 옮겨 놓아주지 않는 한 우리가 출발해야 할 지점은 바로 여기일 수밖에 없다.

바닷바람이 너무 차고 세서 지는 해는 결국 자동차 안에서 배웅하기로 한다. 파도를 피해 도망치기도 하고, 시린 손으로 조개 껍데기도 줍고, 파도에 밀려온 불가사리를 건져 올리기도 하던 두 아이는 결국 바닷물에 발을 적시고 뒷자리에서 담요를 덮고 잠이 들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네 식구의 숨소리만이 차 안에 가득하다. 문득, 여기 이들이 내가 뿌리내리고 선 땅의 근원이며 내 삶의 현실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파고든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가고 싶은 곳과 있어야 할 곳 사이에서 늘 헤매는 나의 자리가 다른 어느 곳 아닌 이곳임이 뼈에 새겨지듯 너무도 분명하게 다가온다. 가족은 이래서 짐이며 울타리인가. 부모님, 나, 아이들…. 때론 서로에게 짐인 동시에 울타리가 되기도 하고, 때론 짐과 울타리 역할을 서로 바꾸어가며 하기도 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고 장년에 이르게 되면, 스스로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마음 속에서'삼면경(三面鏡, three-way mirror)'을 사용하게 된다. 젊어 우리를 업고 안고 길러주셨던 부모님의 주름지고 힘없는 얼굴이 한쪽 거울에 비치고, 늘 품안에 있을 것 같았던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가며 청년의 모습으로 혹은 성인의 모습으로 또 한쪽 거울에 비친다. 남은 한쪽의 거울에는 인생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내 얼굴이 비친다.

삼면의 거울이 동시에 우리 눈앞에 펼쳐지듯이 인생의 어느 한 시기도 다른 시기와 결코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법은 없다. 새해의 초입에 서서 마음 속의 삼면경을 한번 들여다보자. 위로는 부모님을 아래로는 자녀를 감당하며 그 사이에 서 있는 나 자신의 자리를 온몸으로 확인하고, 새로운 발걸음이 결코 어디 낯설고 새로운 곳 아닌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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