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유아보육업무를 보건복지부에서 여성부로 이관하려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12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다른 이유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보육업무가 여성부로 이관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이관된 여성부의 보육업무는 어떻게 차별화되어야 할까?

나는 14개월 차이의 연년생을 키우면서 수면장애라는 병 아닌 병을 얻었다. 큰애 돌잔치가 끝나고 바로 둘째가 태어났다. 딱 3년 동안 밤에 5번씩 깨서 우는 아이들을 달래고 젖병을 물리고 하다가 생긴 병이다.

그렇게 밤새도록 아이들에게 시달리다가 아침에 눈뜨면 두 아이를 하루종일 돌볼 생각에 쿵쿵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힘들었다. 그러다가 나는 결국 18개월 된 큰아이를 잠시 어린이집 오전반에 맡기게 되었다. 나는 당시 직장생활을 하는 소위 '맞벌이 부부'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힘들다고 애를 일찍부터 떼어놓는 이기적인 엄마”로 치부되었다.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을 찾기는 너무 힘들었다. 시설은 어차피 그렇다치고 좋은 선생님이라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어린이집을 방문해서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는 선생님인지 아닌지를 한눈에 알아보는 독심술(讀心術)은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나는 맞벌이를 하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높은 비용의 보육료를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지방에는 국공립보육시설도 거의 없고 수도권의 전업주부 자녀는 무작정 대기했다가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판이었다. 결국 한국의 보육정책은 일하는 여성 중에서도 일부집단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나머지 아동은 개별가족에서, 엄마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들은 자율성을 전혀 갖지 못했다. 자녀가 다쳐도 '엄마 책임', 공부를 못하는 것도 '엄마 책임', 어머니는 자녀에 대한 책임론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아내구타의 문제는 구타당하는 여성의 인권이 아니라 성장해야 할 '자녀'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문제시되었다. 호주제는 여성의 권리보다는 재혼가정의 '자녀'가 새아버지와 성이 달라 겪는 왕따문제 때문에 폐지되어야 할 악법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어머니의 권리는 아동의 권리를 위해서는 잠시 양보되어야 마땅한 것으로 인식된 우리사회의 현실에서 여성부가 보육업무를 담당하게 된다는 소식은 나를 들뜨게 한다. 성평등을 실현하는 행정부처인 여성부의 보육업무는 여성에게 밀착된 보육을 떼어내어 모성이데올로기와 성별분업을 해체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제 보육의 책임을 국가와 개별가족이 나누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보육의 '국가책임'과'개별가족' 뒤에 숨어 있었던 남성들을 끌어내어 보살핌노동의 주체로 세워내야 할 것이다. 이제 대안적인 보육정책의 중심은 아동이 아니라 여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여성부는 그 동안 여성들이 개별 가족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꼈던 갈등과 요구에 귀기울여 어머니들의 눈물을 닦아줄 것으로 기대된다. 거리에 아이를 업은 남성들이 늘어나고, 아이를 보육시설에 당당하게 맡기고 일터나 스포츠센터로 향하는 여성들이 늘어난다면 여성부의 보육정책은 대 성공이다.

조주은/ 고려대학교 보건대학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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