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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가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남도답사 1번지

'로 서슴없이 꼽는, 풍광 빼어난 강진. 영랑생가, 다산초당, 청자도

요지, 무위사를 둘러보고 구성지고 느긋한 국악가락으로 풍류를 즐기

며 해남으로 가서 하룻밤을 유숙하고 캠프파이어를 즐긴다. 이어서

대둔사를 답사하고 땅끝봉화대와 땅끝탑을 산행한 후, 소호해수욕장

에서 뱃놀이와 물놀이로 구슬 같은 땀을 식힌다. 중간중간에 TV브라

운관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인기 연예인들과 형제처럼 때론 친구처럼

격의없는 대화를 나눈다는 점을 빼고는 여느 청소년들이 보내는 멋진

피서와 별로 다를 점이 없다.

이것이 지난 8월 12,13 이틀에 걸쳐 전남도청이 허경만 지사의 주도

아래 문화관광국 주관으로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마련한 '일일 아버

지' 행사의 개요다. 24개 시·군에서 각각 남녀 1명씩 2명의 소년소

녀 가장을 선발, 총 48명이 한 명도 빠짐없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이 행사는 휴가철이 되어도 가족과 함께 피서를 떠날 수 없는 청소년

가장들의 소외감을 달래주고 그들의 고충을 자연스레 진솔히 들어주

는 시간을 마련함으로써 제한된 여건에서나마 용기를 한껏 불어넣어

주기 위해 구상되었다. 행사명 자체부터 따뜻한 가정의 온기가 느

껴지는 이번 행사엔 서울회의 참석후 광주공항에서 강진 무위사로 직

행한 허 지사를 비롯하여 개그우먼 조혜련 씨는 영랑생가와 다산초당

길을, 탤런트 겸 영화배우 김혜수 씨는 무위사길을, 그리고 개그맨

서경석 씨는 해남에서 이들 청소년들과 하룻밤을 정겹게 지냈다. 허

지사가 '일일 아버지'로, 자원봉사로 참가한 연예인들이 '일일 언

니, 오빠, 누나, 형'으로 쉴틈없이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한가족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 일정을 꿰맞추며 교대로 동행했던 이들 참가

인사들은 모두 소년소녀 가장들과 시간을 좀더 보낼 수 없었음을 아

쉬워했다. 무위사에서 합류한 허 지사는 "이번 여행길에 여러분들이

영랑생가, 다산초당 등의 유적지를 돌아본 것으로 안다. 다산은 18년

의 유배생활에도 좌절치 않고 양서를 집필하여 한국실학을 완성했고,

영랑은 일제강점기 아래서도 아름다운 남도 말을 시어로 형상화했다.

이처럼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오히려 남들보다 앞서 갈 수 있다는 것

을 역사에서 배우기 바란다. 여러분 모두와 일일이 그리고 낱낱이

함께 해주지 못하는 것이 마음 아프긴 하지만, 여러분의 어려움을 함

께 나누고 싶어하는 분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

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화유적지 답사, 체험실습 교육, 공동체의식 함양이란 주제로 진행

된, 청소년 가장을 위한 '휘파람 불며 떠나는 여행'. 1박2일이란

짧은 일정이 마술처럼 참가 청소년들의 얼굴에 한여름의 태양 못지않

게 빛나는 기쁨을 선사했다. 70대의 할아버지, 할머니, 고2인 언니,

중1인 여동생과 함께 사는 조선아(15, 문수중 3)양은 "연예인 언니

오빠들과 가깝게 지낸 것이 인상깊었다. 특히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

들과 만나서 오랜만에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어 후련했다.

군청에서 여는 수련회에 매년 가는 편이지만, 이번 수련회는 규모도

더 크고 행사내용도 다양해서 훨씬 유익했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참가소감을 밝히기도.

이제는 이들 소외계층의 청소년을 돕는 데에도 경제적 지원을 넘어

선 문화적 차원의 개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참가자 전원에게 형성

된 것이다. 행사 내내 청소년들을 '우리 애기', '아가' 등 다정

하게 남도억양으로 부르며 따라다닌 관련 공무원들의 태도도 행정서

비스 차원을 넘어 가족같은 온기를 느끼게 해 인상적이었다. 이같은

친근함은 김명현(13, 담양중2) 군과 자매결연을 맺은 허 지사 가족을

비롯, 이들 소년소녀 가장과 결연을 맺은 전남도청의 공무원 수가 1

천7백여명에 가까워 전체 후원자 수의 30%가 넘는다는 사실과도 무관

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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