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국회의장, 신년기자간담회 모두발언’.

‘000장관, 한국관광공사 사장 면담 모두말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모두말씀’.

'모두말씀’. ‘모두발언’?? 모두말씀이라고 한글로 써놓는 게 대부분이지만 간혹 ‘모두(冒頭)’말씀이라고 친절하게 한자를 붙여놓는 곳도 있다. 모두(冒頭)의 사전적 뜻은 ‘말이나 글의 첫머리’다. 그러니까 ‘머리말’이라고 하면 될 것을 ‘모두(冒頭)말씀’이라고 쓰는 셈이다.

공공언어엔 유독 한자어나 국적 불명 한·영 합성어가 많다. 한글은 소리문자여서 같은 글자라도 뜻이 다른 수가 많고, 한자어로 표기하는 게 뜻이 보다 선명하게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 외국어나 외래어라도 이미 우리말화되다시피 했거나 느낌 차이 상 한글로 바꿔 쓰기 애매한 것도 있다.

그러나 널리 사용되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사전을 찾아봐야 하는 한자어를 쓰거나, 읽기도 어렵고 뜻은 더더욱 알 길 없는 합성어를 만들어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자어는 권위가 있어 보이고, 한·영 합성어는 뭔가 더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머리’를 ‘모두’로, 말을 말씀으로 쓸 이유를 찾기 어렵다.

기자간담회는 말 그대로 기자들과 편하게 말을 주고 받는 자리다. 특정한 내용에 관해 발표하는 기자회견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런 간담회에서 하는 인사말은 물론, 두 사람이 만나는 면담 자리의 얘기도 모두말씀이라고 한다.

공청회나 토론회같은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머리말도 아닌 간담회나 면담의 인사말을 모두말씀이라고 표기하는 관행의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혹시 아직도 공공기관은 용어부터 남달라야 한다는 선민의식 내지 권위주의적 색채에 물들어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윗사람을 향한 과잉 충성의 산물일까.

말은 의식의 산물이다, 시대가 바뀌면 말이 바뀌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시찰(視察, 두루 돌아다니며 현지의 사정을 살핌)’이나 ‘초도순시(初度巡視, 한 기관의 책임자 등이 부임 뒤 관할지역을 처음 돌아가며 시찰함)란 말에선 묘하게 고압적인 냄새가 난다. ‘시찰’은 ‘방문’, ‘초도순시’는 ‘첫방문’이라고 쓰면 된다. ‘시찰’이라며 잔뜩 무게 잡고 가도 도착한 곳의 플래카드엔 ‘환영, 000님 방문’이라고 써 있을 테니까.

* 공동기획 : 여성신문 X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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