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ll Brinkley, "The Dark Side and the Fair Side". ⓒdbdowd.com
Nell Brinkley, The Dark Side and the Fair Side ⓒdbdowd.com

위대한 여성 만화가는 누구일까? 미국 초기 만화의 정전에서 여성작가의 이름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만화 역사의 범위를 2000년대로 확장한다 해도 이 결과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약간의 여성작가가 덧붙여지긴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남성작가가 위대한 작가의 목록에 포함된다. 이 사실은 놀랍지 않다. 미국만화 산업은 전형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특징지어지며 작가, 편집자 같은 업계 종사자 대다수 역시 남성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70년대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의 문제의식은 여성 만화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 여전히 좋은 출발점이 된다. 노클린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이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의 전제에 의문을 제기했고, "이 같은 질문은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나올 수 없던 이유 즉 여성억압적 구조를 은폐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여성 만화사를 서술하기 위해선 정확한 질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통해 여성 만화가가 어떻게 당대의 경제사회적 환경과 조응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 세계를 펼쳐내는지를 보여야 한다.

 

산업, 제도, 일러스트

미국 여성 만화사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먼저 19세기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를 살펴보자.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는 여성 만화가가 활동하기에 앞서 여성 예술가의 길을 개척한 선구자다.  직업의 제한, 사회적 제약에도 여성인 이들은 어떻게 일찍이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할 수 있었을까. 19세기 미국 미술계는 어느 정도 여성 예술가에게 관대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장식미술과 상업미술의 영역에 한해 여성의 진입을 허용했다. 순수 미술의 경우 아카데미 교육과 유럽 유학을 통해 여성 예술가를 계속해 제한한다. 일러스트는 열등한 미술로 간주되기에 여성에게 가능한 예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린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를 남성에게 수혜 받은 수동적 존재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들은 남성 세계에 가담하면서도 동시에 그 세계와 불화하며 새로운 길을 내려 애썼다.

 

Alice Barber Stephens - The Women's Life Class (1879) ⓒpafa.org
Alice Barber Stephens, The Women's Life Class (1879) ⓒpafa.org

그러면 구체적으로 19세기 대표적인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앨리스 바버 스티븐스’(Alice Barber Stephens)의 삶을 짚어 보자. 스티븐스는 '필라델피아 여성 디자인 학교'(Philadelphia School of Design for Women)를 졸업하고 1876년 '펜실베니아 미술 아카데미'(PAFA, Pennsylvania Academy of the Fine Arts)의 최초 여학생 중 한 명으로 입학한다. 그는 이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나가며 이 과정에서 동료 여성 예술가를 지원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자신의 모교인 필라델피아 여성 디자인 학교에서 여성 예술가를 양성하고, 1897년에는 남성으로만 구성된 필라델피아 스케치 클럽에 대한 단호한 대응으로 자신의 제자 '샬롯 하딩'(Charlotte Harding)과 함께 '플라스틱 클럽'(Plastic Club)을 창립한다. 스티븐스의 이 같은 여성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은 무엇보다 PAFA의 누드 수업 일화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여성 미술가는 누드모델의 드로잉이 금지됐다. 이 제도는 여성 미술가를 배제하는 효율적 제도로서 아카데미의 필수 요소인 신체 묘사를 여성이 습득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스티븐스를 포함한 PAFA의 여학생들은 여성 차별적 제도에 반발했고 그들은 그리하여 누드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기념비적인 승리는 다름 아닌 스티븐스에 의해 'Women's Life Class'(1879)라는 작품으로 기록된다.

 

'신여성'을 그리다

1890년 '라이프'(Life)지에 등장한 ‘깁슨 걸'(Gibson Girl)은 미국 대중매체에 의해 최초로 시각화된 미국 여성상이다. 깁슨 걸은 빅토리아 여성을 대체한 여성상으로, 신여성이라는 변화된 미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신여성과 깁슨 걸과의 연계성에도 긴 머리를 느슨하게 틀어올린 이 여성 이미지는 어느 정도 왜곡돼 있다. 응접실에선 우아하고 야외에선 활동적인 여성 그러니까 깁슨 걸은 남성적 시각으로 구성된 미국의 여성상이다. 깁슨 걸의 이미지를 스티븐스의 'Woman Business'(1887)와 비교해보자. 젠더에 대한 최초의 시각적 논평으로 평가받는 스티븐스의 작품에서는 여성노동자를 포함한 다양한 계층의 여성을 신중하게 재현한다. 동일한 신여성이 왜 이토록 상이하게 재현된 걸까. 두 작가의 성별 차 때문이라 한다면 틀린 답은 아니지만 이보다 흥미로운 답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여성을 그린 스티븐스 본인이 다름 아닌 신여성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스티븐스는 신여성을 그리는 신여성이다.

 

Nell Brinkley - Cover for the Sunday Dayton Journal (1936) ⓒdbdowd.com
Nell Brinkley, Cover for the Sunday Dayton Journal (1936) ⓒdbdowd.com

당연히 이것은 스티븐스만의 특별한 사례는 아니다. 1920년대 만화가 '넬 브링클리'(Nell Brinkley)도 '플래퍼'(Flapper)를 재현하는 동시에 그 자신이 플래퍼의 삶을 구현한다. 플래퍼는 1920년대 전통과 인습을 무시한 신여성으로, 이 새로운 여성상은 많은 여성에게 수용됐고 더 나아가 20년대 미국 대중문화를 사로잡았다. 브링클리는 바로 이러한 플래퍼로 ‘브링크리 걸’(Brinkley Girl)의 이미지로 창조한다. 긴 눈썹 커다란 눈과 곱슬거리는 단발머리의 브링클리 걸은 잡지 혹은 신문의 지면을 유려한 아르누보(Art Nouveau) 선으로 수놓는다. 이 뿐만이 아니다. 대중가요의 노래가사, 무성영화의 여배우 때론 광고 이미지와 캐릭터 상품에서도 브링클리 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브링클리가 특별한 예술가인 이유는 단순히 20년대 신여성 플래퍼를 매혹적으로 재현해서만은 아니다. 그보다 브링클리의 작품에 스며든 여성적 야심, 세련된 스타일, 진보적 계급의식이 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남성작가가 그린 플래퍼는 많은 경우 미성숙하고 어리석은 여성으로 재현됐다. 하지만 브링클리의 플래퍼는 이와는 달랐다. 여성 참정권 시기 여성에게 자신감과 자부심을 불어넣었고 이후에도 여성 노동자를 격려하며 그들의 권리를 증진시킨다.

 

모험하는 여성, 액션하는 여성

19세기 여성 만화가는 매우 제한된 주제만을 다뤄왔다. 여성 만화가는 아기, 동물과 같은 귀여운 캐릭터와 일상적인 가정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그린 반면 남성 만화가는 사회적 주제를 다루는 정치 카툰과 액션과 큰 세계에 집중하는 액션모험 장르를 그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여성 만화가들이 언제까지나 남성이 규정한 경계를 순순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주제의 범위를 점차적으로 넓혀갔으며 종국에 이르러선 작품 속 여성의 속성도 함께 변화시킨다.

 

여성 만화가 '데일 메식'(Dale Messick)의 만화 '브렌다 스타'(Brenda Starr) ⓒcomics.org
여성 만화가 '데일 메식'(Dale Messick)의 만화 '브렌다 스타'(Brenda Starr) ⓒcomics.org

'데일 메식'(Dale Messick)과 '타프 밀스'(June Tarpé Mills)는 여기서 이 새로운 만화의 흐름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 데일 메식은 전성기 시절 250여개의 신문에 작품이 실리며 6000만 명 이상의 독자를 가진 최고의 여성 만화가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 '브렌다 스타'(Brenda Starr)에서 여성 기자의 제한된 역할에 진절머리가 났고, 주인공 브렌다가 '타잔'(Tarzan, 1929년), '딕 트레이시'(Dick Tracy, 1931년)와 같은 동시대 남성 영웅처럼 되기를 원했다. 결국 붉은 머리의 브렌다는 도시와 정글을 오가며 남성 악당들을 물리치고 때로는 연인과 열정적인 로맨스를 갖는 여주인공으로 재창조된다. 이러한 여성 주인공의 변신이 전적으로 환영받은 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들, 특히 어린 소녀들은 여전히 'Brenda Starr'를 읽기 원했다. 남성만이 할 수 있다 생각되어온 일들을 여성인 브렌다가 훨씬 더 훌륭하게 해결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렌다의 팬인 '엘에이 타임즈'(LA Times) 클라우디아 루터 기자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망을 이렇게 언급한다. “'브렌다 스타'가 그려낸  놀랍고도 엄청난 저널리즘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에서 펼쳐지는 로맨스와 미스터리를 평생토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타프 밀스(June Tarpé Mills)의 만화 '미스 퓨리'(Miss Fury) ⓒBilly Ireland Cartoon Library & Museum
타프 밀스(June Tarpé Mills)의 만화 '미스 퓨리'(Miss Fury) ⓒBilly Ireland Cartoon Library & Museum

마지막으로 다룰 작가는 여성 슈퍼히어로를 그린 '타프 밀스'다. '원더 우먼'(Wonder Woman)은 많은 이들에게 최초의 여성 슈퍼 히어로 만화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밀스의 '미스 퓨리'(Miss Fury)가 41년 원더 우먼보다 반년 앞서 코믹 스트립에 등장했다. 그러면 왜 '미스 퓨리'는 여성 히어로 만화의 계보에서 오랫동안 잊힌 걸까. 그것은 망각이라기보다 오히려 의도적인 누락에 가깝다. 남성 히어로가 아닌 여성 히어로라서 더욱이 남성 작가가 아닌 여성 작가가 의해 그려져서 '미스 퓨리'는 만화계에서 지워진 것이다. 이 추론은 2차 세계 대전 전후의 변화된 여성 위상을 고려한다면 결코 비약적이지 않다. 2차 세계 대전은 전례 없는 많은 수의 여성이 공적인 업무에 참여하던 시기다. 만화 산업도 징집된 남성 만화가를 대신할 여성 만화가를 적극 받아들였다. 여성 만화가의 수는 그 결과 1942년에는 3배로 늘어났는데 이때 주목할 지점은 여성 만화가의 증가가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미스 퓨리'부터 '원더 우먼'까지 여성 히어로 주인공이 이 시기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 건 바로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미스 퓨리'는 2차 세계대전에 활동한 진취적 여성의 기념비적 반영이었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군인들이 귀국하자 미국은 급작스런 보수적인 반동이 일어난다. 여성들은 대량으로 일자리를 잃었고 사회는 더 이상 당당하고 독립적인 여성을 요구하지 않았다. 만화계 역시 여성 만화가를 점진적으로 퇴출시켰으며 만화 산업이 호전된 1960년대 말쯤에는 여성 만화가 대부분 사라진다. 1952년 밀스의 은퇴는 이러한 '백래시'(Backlash)와 보수적 반동의 명백한 예시다. 50년대 밀스의 만화는 공포, 범죄 및 일반 슈퍼히어로 만화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공격 받는다. 밀스는 과거 패션계에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스 퓨리'에서는 단일한 코스튬 대신 다채로운 화려한 의상을 선보인 바 있다. 그런데 이 선구적 의상은 집중적 비난의 대상이 됐고 특히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지옥불'(Hellfire)이라고까지 비난 받는다. 이에 신문사들은 자발적 또는 강제적으로 '미스 퓨리'를 검열하는데 1946년에는 37개의 신문사들은 여성 악당의 의상 문제로 '미스 퓨리'를 거부했고 '보스턴 글로브'(Boston Globe)같은 몇몇 신문사의 경우에는 여주인공이 겸손히 보이도록 하기 위해 검열을 이용했다. 밀스는 사회적 압력에 굴복했고 '미스 퓨리'는 그렇게 만화의 역사에서 지워진다.

오혁진 만화평론가
오혁진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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