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문화포럼 17일 열려
송현옥 세종대 교수 강연
“제 연출 특징은 ‘여성주의적 세계관’...
여성을 대상 아닌 ‘주체’로 보니
가부장적·이분법적 틀 깨게 돼”

극단 ‘물결’ 대표인 송현옥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가 17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WIN문화포럼’(대표 서은경)에서 ‘여성적 세계관으로 다시 읽는 고전’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극단 ‘물결’ 대표인 송현옥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가 17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WIN문화포럼’(대표 서은경)에서 ‘여성적 세계관으로 다시 읽는 고전’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15년 연극 여정을 돌아보니 제 작품은 ‘여성주의적 세계관’이 두드러져요. 의도한 건 아닌데, 제가 여성이라서 여성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보게 돼요. 자연스레 가부장적·이분법적 틀을 깨는 시도로 이어졌죠.”

극단 ‘물결’ 대표인 송현옥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는 자신의 연출 세계를 이렇게 정의한다. 17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WIN문화포럼’(대표 서은경)에서 한 이야기다.

송 교수는 연출가로 데뷔한 이래 그리스 비극, 셰익스피어, 안톤 체호프, 막심 고리키, 모파상 등 여러 고전을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왜 고전일까. “나라, 민족, 시대, 장소를 초월하는 힘이 있어서”다. 단 원작의 메시지는 유지하면서 한 발짝 앞서 나갔다. 수동적인 인물에 주체적인 서사를 부여하기도, 무용 요소를 활용해 상징적이고 강렬한 무대를 선사하기도 했다.

예컨대 송 교수가 드라마투르기로 참여한 서울시극단의 2006년작 ‘오이디푸스 더 맨 2006’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각색한 연극이다. 원작의 오이디푸스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남성이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와 결혼하고 아버지를 죽이게 된다’는 자신의 운명에 괴로워하다가 끝내 두 눈을 찌른다. 연극은 다르다. 오이디푸스는 운명에 맞서는 인물로 재해석된다. 직관과 순리를 중시하는 엄마 이오카스테의 비중도 커진다. 오이디푸스가 도시의 여신인 아테나에게 기도하는 장면도 추가했다.

“오이디푸스가 상징하는 남성적 세계관은 이성적, 수직적, 경쟁적이지요. 이오카스테가 상징하는 여성적 세계관은 직관적, 수평적, 포용적입니다. 이런 여성적 가치관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2014년,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아 올린 ‘햄릿 : 여자의 아들’도 햄릿을 ‘여성주의적 세계관’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고뇌에 빠진 햄릿이 어머니이자 왕비인 거트루드의 영향을 받아 직관적이고 포용적으로, 수직과 수평이 아닌 ‘원’의 순리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햄릿의 유명한 독백인 ‘죽느냐 사느냐’는 남성적·이분법적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는 대사도 그렇죠. 하지만 제 작품의 거트루드는 ‘헌신적이고 자애로운 존재’라는 모성 신화를 강요당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않는 여성입니다. ‘그 더러운 욕정의 침실로 가지 말라’는 햄릿에게 거트루드는 ‘나도 여자야’라고 해요. 여성들 덕분에 햄릿은 옳고 그름을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삶이 곧 죽음이고 미움이 곧 사랑이라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극단 ‘물결’ 대표인 송현옥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가 17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WIN문화포럼’(대표 서은경)에서 ‘여성적 세계관으로 다시 읽는 고전’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극단 ‘물결’ 대표인 송현옥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가 17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WIN문화포럼’(대표 서은경)에서 ‘여성적 세계관으로 다시 읽는 고전’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2016년 무대에 올린 ‘인형의 집’은 헨릭 입센의 동명 원작을 각색했다. 주인공 노라는 여성해방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지만, 송 교수는 ‘여성’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자유의지’에 주목해 각색했다.

“여성해방만 고려한 것은 아니었어요. 주체적인 삶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었죠. ‘남성들도 인형이 아닐까’라는 화두를 던졌어요. 여성뿐만이 아니라 사회가, 남들이 주입한 욕망을 따르는 남성들도 결국 ‘인형’일 수 있다는 거죠.”

연극과 무용을 융합한 것도 송 교수 연출의 특징이다. ‘몸의 언어’가 중요하다는 게 송 교수의 지론이다. 그의 딸로 현대무용을 전공한 배우 오주원씨가 역동적인 몸짓으로 극의 상징성을 더한다. ‘햄릿 : 여자의 아들’의 오필리어, ‘인형의 집’의 노라 역을 맡아 열연했다.

“논리적인 기승전결을 제시하기보다는 관객에게 상상할 여지를 주고 싶었어요. ‘잘 모르겠다, 어렵다’는 관객도 있는데요. 정답이 없으니 그냥 편하게 보시라, 즐겨달라고 해요. 뭘 하든 정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틀을 깨고 상상과 생각의 나래에 빠져보세요. 그런 점에서 제 작업을 ‘무대 위에서의 여성적 글쓰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오늘 제 이야기가 여러분들이 다양한 작품 속 여성들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어요.”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