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김명자 효성 이사회 의장
환경부 장관‧과총 회장 거친
과학기술‧환경 분야 전문가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 ⓒ홍수형 기자
김명자 효성 이사회 이사장은 "지속가능발전은 경제-사회-환경의 세 개 정책 기둥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실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홍수형 기자

여성 첫 대기업 이사회 의장이 탄생했다. 효성그룹은 지난 9일 이사회에서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김 의장은 2019년 3월 사외이사로 ㈜효성 이사회에 합류했다. 국내 민간 대기업이 여성 이사회 의장을 선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성이자 환경과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한 배경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자리 잡고 있다. 기업은 더 이상 매출과 영업이익만 추구해서는 소비자와 투자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워졌다. 김 의장은 “ESG 경영은 이제 선택이 아닌 기업의 생존 전략”이라며 “제조업이 근간인 한국에서 기업들이 ESG를 통해 업그레이드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초기에는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정책 시그널(signal‧신호)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효성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됐습니다.

“저로서는 평소에 가던 길을 가고 있는 것뿐이었는데,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네요. 사외이사로서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되니 큰 영광입니다. 비상임으로 역할은 제한돼 있지만 상징성이 크다는 점에서 책임감이 큽니다.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셔서 어깨가 더 무겁습니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게 됐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과거엔 이사회가 대주주의 거수기 역할에 머무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2003년 장관직을 끝내고 KTF와 LG생활건강에서 1년가량 사외이사를 했고 2010년대에도 한 적이 있습니다. 지적하신 그런 얘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였고, 원래 궁금한 것은 꼭 질문을 해야 하는 버릇(?)을 못 버리고 일했습니다. 사외이사의 책무는 대주주나 경영진의 독단적 경영을 감시·견제해 기업 경영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실제로 맡아보니 상임이사와 달리 평상시 회사 밖에서 활동하다가 비상임으로 회의에 참여하기 때문에 독립성은 있지만 경영 실태의 소상히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사외이사로서 일반이사와 동등한 수준의 책임과 권한을 수행하려면 기업의 업무 집행에 대한 이해와 의사결정을 잘 할 수 있는 자질과 역량, 업무 수행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 이사회에 여성 비율은 10%대 입니다. 개정된 자본시장법이 내년 8월 시행되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적임자 찾기가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저는 과학기술 분야의 교육과 훈련을 받고 민관의 여러 분야에서 일하면서, 일찍부터 여성인력이 남성 위주의 영역에도 진출하고, 의사결정의 고위직에 오르는 것이 양성평등의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길이라는 나름대로의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고무적 통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을수록 기업 실적이 우수하고, GDP 상승에서 재원 투입이나 생산성 향상보다 여성 고용 증대의 기여가 크고(‘이코노미스트’), 성평등 지수가 높은 국가일수록 국가 경쟁력과 국민행복 지수가 높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고위직에서의 여성 참여 확대는 가야할 길임은 분명합니다. 제도를 통해 양적 참여를 확대하는 경우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여성인력은 기업 경영 분야에서는 소수 그룹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동안 여성인력이 과소 대표된 우리의 현실은 사회문화적 산물의 성격이 크므로 여성계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자질과 역량을 갖춘 여성인력을 찾고 교육에서도 전공뿐만 아니라 융합적 역량을 갖추도록 해서 양성평등의 새로운 혁신 생태계를 향해 나아가야겠지요. 생태계의 건전성 확보에서는 다양성이 중요한 요소니까요.

조현준 회장이 ESG를 강조하며 내놓은 방침 중 하나가 ‘여성친화적 기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효성은 여성인력 근속연수가 평균 10.6년으로 시가총액 상위 100개 기업 평균인 8.9년(2021년 4월 기준)보다 높습니다.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 모성보호제도, 육아휴직 후 복귀 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평가기준을 별도로 정하는 등 제도가 잘 마련돼 있는 편입니다.”

-효성은 2018년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직을 겸임하던 관행을 깼고, 지난 4월에는 이사회 산하 투명경영위원회를 ESG 경영위원회로 확대 개편했습니다.

“2018년에 투명경영 강화와 독립 경영체제 구축 등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지주사와 4개의 사업회사(효성티앤씨‧효성첨단소재‧효성중공업‧효성화학)로 분할하고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당연히 이사회 의장직을 맡게 돼 있는 조현준 대표이사가 의장직을 내려놓고 사외이사가 맡도록 한 조치가 상징성을 비롯해 높게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지주사와 별도로 4개의 주요 계열사도 대표이사 직속의 ESG 경영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할 계획입니다. 최근의 이들 일련의 변화가 추구하는 목표는 환경, 사회적 책임, 정도 경영에 앞장서고, 협력사는 물론 지역사회와 동반성장해서 산업 경쟁력 강화와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100년 기업 효성’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 ⓒ홍수형 기자
김명자 이사장은 ESG 경영의 내실화 방안에 대해 "ESG 표준안을 설계하고 민관 파트너십에 의해 ESG의 핵심 요소 가이드라인 설정과 평가지표의 평가항목 설계와 인증 사업 등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홍수형 기자

 

-최근 ESG 경영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환경 분야에서 한국은 2016년 사우디, 호주 등과 함께 ‘4대 기후 악당’으로 지목되는 등 여건이 만만치 않습니다.

“한마디로 지속가능발전은 경제-사회-환경의 세 개 정책 기둥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실현 가능합니다. ESG, 그린뉴딜, 탄소중립 등의 키워드는 지속가능발전이라는 21세기 새로운 발전관으로의 전환을 위한 구체적 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후악당(villain) 얘기인데요. 저는 이 번역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후불량(villain) 국가 정도가 어떨까 합니다. 2016년 기후행동추적(Climate Action Tracker)이 탄소 배출량의 80%를 내뿜는 32개국의 온실가스 감축 행동을 분석한 평가 결과인데, 한국이 낮게 평가된 근거는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속도, 석탄발전소 수출 재정 지원, 202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폐기 등이었습니다.

국가마다 발전단계와 경제적 여건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에너지 여건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ESG에서도 에너지 부문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부존자원이 거의 없이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로 빈곤을 벗어났고, 이른바 4차 산업혁명기를 맞아 전기화가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실가스 감축으로 경로를 바꾸기 위해서는 수요관리에 의해 국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부문 간 에너지 가격 세제 불균형으로 에너지 소비가 왜곡돼 있고, 전기요금 체계도 개선돼야 합니다. 세수 중 에너지세 비중은 OECD 평균의 2배이고, 유류세가 높고, 전력과 가스는 공기업 체제하에서 정부의 요금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전력산업 발전원료는 면세 조치로 인해 시장에서 연료 선택이 왜곡되고 있는 등 온실가스 감축 관련 기본적인 장애요인을 극복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한국 기업의 ESG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예컨대 글로벌 ESG 펀드는 2020년 한해에 140%가 급증해 1500조원대에 이르렀고, 우리나라도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글로벌 시장이 ESG 등 비재무적 요소를 중시하고 ESG 정보공시를 의무화하는 등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이 기존의 화석연료 의존의 경제에서 단기간에 빠져나오기에는 산업구조와 인프라가 탄소 기반이므로 간단치 않습니다.

현재로서는 우리 기업들의 ESG 등급은 모건스탠리 주가지수(MSCI)의 ESG 리더스 지수 평가의 경우 대상기업 98개 중 65%가 세계 평균 이하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올해 발동을 걸었으니 조속히 탄소 배출량과 이사회 다양성 등 기업의 생산활동의 기후변화 영향과 대기업의 독과점 등 환경, 사회 책임, 투명경영 등에서 글로벌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이 과제입니다.”

-ESG 경영 내실화 방안은.

“우리 사회는 발전 지향성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단기간의 급속한 근대화와 산업화는 그런 속성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서, 복합적인 글로벌 리스크와 국가적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하려면 지속가능발전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고 모든 경제주체가 ESG 관점을 갖는 것이 필수입니다.

초기에는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전략적 대응이 견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가 공시 의무화 계획을 발표했으니, 한국의 ESG 표준안을 설계하고 민관 파트너십에 의해 ESG의 핵심 요소 가이드라인 설정과 평가지표의 평가항목 설계와 인증 사업 등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이 시급합니다. 민관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서 국제 ESG 관련 회의체에 적극 참여하고 선진 경제권의 ESG 공시 의무화 내용과 새로운 세제 도입 등에 대한 동향을 적시에 파악해 대응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정책 시그널(signal‧신호)을 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명자 효성 이사회 의장

경기여고·서울대 화학과를 거쳐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1971년). 숙명여대 화학과 교수 재직 중 1999년 6월 환경부 장관에 발탁돼 2003년 2월 말 김대중 정부 마감까지 3년 8개월 재임한 헌정 사상 최장수 여성장관이다. 2004년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국방위 간사, 여성으로는 처음 국회윤리특별위원장을 지냈고, 2016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50년 사상 첫 여성 회장으로 선출됐다. 현재 (사)서울국제포럼 첫 여성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