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미'가 다 무엇이냐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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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랑, 1993년 11월 23일 성형 퍼포먼스 장면.

다행스러운 건지, 아님 호사가들에겐 비극인지 몰라도 요새는 TV에서 미스코리아 생중계를 하지 않는다. 한 해에 한 번씩 떠들썩한 쇼라도 되듯, 이것저것 볼 거 별로 없던 세상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만큼 인기 상종가의 TV 프로도 드물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엔 <모래시계>가 퇴근 시간을 당겨놓았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모래시계>의 주인공은 80년대 말 의 퇴근시간을 당겨놓은 미스코리아 출신이다.

흥미로운 일은 바로 그 미인의 선발 기준에 진, 선, 미라는 호칭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진, 선, 미를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오묘하고 그럴듯한 온갖 철학적 의미가 다 부과되는 건 사실이지만, 멀뚱멀뚱 미인 심사를 하러 나온 심사위원들치고 고대 서양철학까지 들먹이면서 그녀들을 진의 영역, 선의 영역, 미의 영역으로 나누는 사람은 솔직히 못 본 것 같다. 아니, 좀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쁜 여자는 소위 '미'인인 셈인데, 너무 대놓고 여자 겉모양만 보고 사람 뽑는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진이 어쩌구 선이 어쩌구를 가져다 붙인 냄새가 더 다부지게 났다.

대체 뭘 보고 그녀의 '진'과 '선'을 뽑는단 말인가? 차라리 '미'는 좀 덜하다. 보기 이쁘면 '미'로 찍으면 그만이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외모만 보는 게 아니라, 그녀가 살아가는 속내를 다 들여다본 것처럼 '진'과 '선'을 구별해놓았다.

결과? 제일 이쁜 여자가 '진'짜 여자, 그보다는 아주 약간 못하지만 그래도 이쁜 여자가 '선'한 여자가 되는 세상이었다.

사실, 얼굴이 무기인 세상에 살고 있다. 얼굴은 뜯어고쳐도 성격은 못 뜯어고치니, 그래도 후덕한 여자를 만나야지, 라던 경구는 이미 낭만의 한 시대를 지나는 듯하다. 못생긴 주제에 아직도 안 뜯어고친 얼굴을 감히 꼿꼿하게 들고 다니는 여자는 뭔가 시대에 뒤떨어지기라도 한 듯, 이젠 얼굴에 칼 안 댄 여자들 보기가 더 어려운 세상이 점점 되어가는 것 같아 은근히 위기의식마저 느낀다.

그렇다. 세상은 끊임없이 즉흥적이고 즉물적이 되어가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인 세상이다. 그러니 미스코리아 심사위원석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 얼굴과 몸매 하나로 진과 선과 미를 가르고, 그 대열에 낀 여성들이 다른 어떤 능력을 가진 여성들보다 훨씬 출세길이 보장되는 걸 뻔히 보면서 지내왔다. 그리스 조각처럼 긴 다리에, 실리콘이 몇 그램 들어갔건 볼륨만 적당히 키워놓으면 만사 오케이, 진이 되고 선이 되고 미가 되는 여자, 그녀들은 세상에 가장 빨리 적응하는 방법으로 가장 많이 자신의 뼈와 살을 발라냈다.

올랑(Orlan)이라는 여성 행위예술가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성형장면을 실시간으로 뉴욕, 파리 등에 생중계해서 이른바 쇼킹요법으로 사람들이 가지는 그 '미'의 인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도구삼아 이른바 세상에 안주하는 여성들처럼, 자신의 얼굴을 마치 주물조각처럼 이리저리 꿰매고 뜯어내고 붙이면서 자신의 예술에 타협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예술을 통해서 이야기했다. '당신들이 원하는 여성의 얼굴이 바로 이런 거였는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그것도 아닌가? 죽을 때까지 한번 고쳐볼까, 그러면 나는 진선미를 겸비한 그 여성이 되는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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