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 사물을 보는 법

항산(恒山),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197×333.5cm ⓒ강요배
항산(恒山),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197×333.5cm ⓒ강요배

나는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먼저 분위기를 파악한다. 다음엔 유난히 눈에 띤 것을 관찰한다. 그리곤 관찰체험을 심적으로 여과하면서 의미 있는 무엇으로 지니고자 한다. 분위기는 물체나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전체적인 느낌이다. 그것은 시야나 온 몸에 단번에 다가오는 즉각적인 감각이지만, 경험이나 사전지식, 막연한 예상에 뿌리내린 감각이기도 하다. 즉 이해와 감성의 복합작용이다.

우선 조도(照度)를 느낀다. 어둠과 어스름부터 흐리고 맑고 눈부심까지. 동시에 온도를 느끼고 소리를 듣고 질감을 느낀다. 더불어 어떤 흐름을 감지한다. 정지와 운동이다. 고요하거나 굳건한 것, 빠르거나 느리게, 끊어지거나 이어지면서, 급박하거나 유유하게 움직이는 것들이다. 조(調)와 율(律)이라 말할 수 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기도 하고, 오인과 무감각도 흔한 일이다. 나는 상황 속이나 가장자리 또는 상황 밖에 있을 수 있다. 온몸이나 시선 혹은 상념으로 사물을 만난다. 사물을 둘러싼 분위기는 한 덩어리의 큰 느낌으로 다가온다.

시선을 유난히 끄는 것엔 새로움이 있다. 넓은 뜻으로 쓰이는 ‘맛’이 있다. 무미건조하지 않으며, 유별난 조화로움이 있다. 새로움은 외부 사물로부터 발산되는 듯하지만 내가 그것을 평소와 달리 바라보는 데서 생기기도 한다.

상강(霜降),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182×259cm ⓒ강요배
상강(霜降), 2017, 캔버스에 아크릴릭, 182×259cm ⓒ강요배

결정(結晶)처럼 눈에 강하게 띄는 것엔 골기(骨氣)와 운치(韻致)가 서려 있다. 정지한 사물에서나 움직이는 사물 모두에 기운은 어떤 흐름으로 배어 있다. 사물의 기운생동 또한 사물로부터 오지만, 내가 감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특이한 구조와 배치를 지닌다. 사물을 이루는 그만의 구조와 사물 또는 부분들의 배치는 다양하다. 이 또한 나와 사물간 상관적 관찰의 결과물이다. 이렇듯 유난히 눈에 띄는 것, 새롭고 맛깔나며 기운이 살아 있고 그만의 구조와 배치를 갖는 것, 그것은 독특한 독자 체험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므로 사전에 있는 사물의 이름과는 다른 것이다.

당장의 뚜렷한 체험은 서서히 심적 여과 과정을 거친다. 그것은 사물로부터 왔으되 나만의 시선 안에 있다. 나는 그것을 강렬한 요체로 간직하려 한다. 군더더기를 버리고 단순화하여 명료하게 만들려 한다. 눈을 감고 상념에 잠기면 그것들이 되살아난다. 멀리…, 또는 가까이… 파도–소리–바람–스침–차가움–힘참–거칠음–하염없음–시원함–부서짐–휘말림–하얗게–검게–첩첩이…

이 전체 속에 흐르는 기운. 형이나 색보다 더 중요한 것, 바로 그것! 체험들은 나의 심성을 이룬다. 어쩌면 그것이 ‘나’ 일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내가 바라본 것이 이 세계의 모습 아닌가. 그것들은 단적으로 표현되기를 기다린다. 그림이다. 그림으로써 내가 확인된다. 한 개인적 체험이 보편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작가 약력>

1952 제주 출생

197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82 서울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졸업

1976~2018 서울(학고재 외)과 제주, 부산, 대구에서 개인전 20여회

2021 이인성미술상 수상기념전(대구미술관, 11월 예정)

1977~2018 서울(국립현대미술관), 제주, 대구, 광주, 미국, 일본, 중국, 대만 등 국내외에 서 단체전 수백회.

-수상: 제27회 이중섭미술상, 제21회 이인성미술상, 민족예술상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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