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대 청소노동자 투쟁 100일
타인으로 호명 되던 여성 노동자들
“노조 통해 인간답게 살 권리 알고
투쟁 통해 성평등한 삶 살게 됐다”

정현실 부산일반노조 신라대지회장이 지난 노동자의 날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부산일반노조
정현실 부산일반노조 신라대지회장이 지난 노동자의 날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부산일반노조

‘신라대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철회 농성’이 지난 2일 100일을 맞았다. 지난 1월 신라대 총장은 2월 28일부로 청소노동자 용역업체와 계약을 종료하고 학내 청소노동자 51명에 계약해지 통보를 하고 더 이상 고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집단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청소노동자들은 2월 23일부터 신라대 대학본부에서 100일 넘게 먹고 자며 농성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노동조합 활동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조직되다 보니 활동이 남성 중심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조직 리더도 남성이고 노조의 전략과 사업 집행 모두 남성 활동가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이 많다. 나 또한 그런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부산일반노조 신라대지회는 다르다. 청소는 주로 ‘여성의 일’로 여겨져 왔다. 신라대 청소노동자도 50명이 여성이다. 신라대 투쟁의 대표 역시 정현실 지회장이다. 지회장은 조직의 리더로서 신라대 투쟁을 진두지휘한다. 농성 투쟁 전체 기획과 계획을 늘 점검하고 조합원들에게 역할을 배당한다. 언론 인터뷰가 들어오면 지회장 몫이다.

총무, 조직부장, 쟁의부장, 교육부장 역시 여성들이 맡는다. 간부들뿐만 아니라 개별 조합원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역할이 맡고 있다. 이들은 현장에서 더이상 ‘누구의 엄마’, ‘아줌마’로 불리지 않는다. ‘지회장님’, ‘총무님’, ‘조직부장님’ 그리고 이름으로 호명된다. 

투쟁 현장에서 휴대전화 전자 피켓을 든 정현실 지회장. ⓒ부산일반노조
투쟁 현장에서 휴대전화 전자 피켓을 든 정현실 지회장. ⓒ부산일반노조

“노조 활동 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저를 부를 때 ‘OO 엄마’ 혹은 ‘아줌마’라고 불렀어요. 근데 여기서는 간부가 되면 직책으로 부르고 그렇지 않을 때도 서로 각자의 이름을 불러요. 노조 활동을 통해 저는 누군가 존재 뒤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현실이 되었습니다.” (정현실 지회장)

신라대지회 조합원들은 50~60대 여자가 일하는 것에 대해 인정받지 못한 시대를 살았다. 여자는 집에서 가족 식사를 챙기고 아이를 돌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조합원들은 가부장적 가정에서 생활하다가 집을 나와 농성을 하게 되자 가족들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투쟁한다고 바빠서 집안일에 소홀해졌는데, 부채감보다 일탈감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가족들 위해서 농성 접고 집에 들어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죠.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 밥을 하지 않는 게 이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고요. 가족들이 알아서 밥만 챙겨 먹는다면 남은 인생은 밥 안 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A 조합원)

신라대지회 조합원들은 농성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가족에게 지지받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에 남편과 많이 싸웠어요.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서 내가 청소, 빨래, 요리 등 다 책임지고 하고 있다는 걸 깨닫더라고요. 그래서 투쟁 꼭 이겨서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오히려 투쟁을 응원하더라고요.” (B 조합원)

집단해고에 맞서 싸우는 신라대 청소노동자의 투쟁은 노동자 권리 회복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가부장제를 넘어서고 있는 주요한 싸움이다.

“우리는 페미니즘이나 노동운동은 잘 몰라요. 노조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을 뿐입니다. 그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시작했는데 우리가 몰랐던 세계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여자들만 집안일 하는 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자가 바쁘면 남자도 집안일 해야 하는 거죠. 노조를 통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알게 되었다면 투쟁을 통해서 성평등한 삶을 살게 되었어요.”  (정현실 지회장)

신라대 청소 노동자들이 집단 해고돼 농성을 벌인 지 100여일이 지났다. ⓒ부산일반노조
신라대 청소 노동자들이 집단 해고돼 농성을 벌인 지 100여일이 지났다. ⓒ부산일반노조

‘집단 해고’된 신라대 청소노동자들

지난 1월 신라대 총장은 2월 28일부로 청소노동자 용역업체와 계약을 종료하고 학내 청소노동자 51명에 계약해지 통보를 하고 더 이상 고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청소노동을 자동화하고 교직원을 활용해 자체적으로 청소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학교는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재정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학교 재정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청소용역비를 전액 삭감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소속 청소노동자는 총장의 결정에 불복해 지난 1월 27일 집단해고 철회와 직접고용 쟁취를 위해 투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신라대는 2월 28일이 다가와도 입장 변화가 없었다. 노조는 2월 23일 무기한 전면 파업을 선언하고 대학본부를 점거하고 농성투쟁에 돌입했다. 핵심 구호는 집단해고 철회와 직접고용 쟁취였다.

신라대 청소노동자는 2014년에도 해고를 당해 79일간 농성투쟁 끝에 복직했다. 당시 총장과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고용안정과 정년은 보장하겠다는 협약서를 작성했지만 6년 뒤인 2020년 총장이 바뀌자 청소노동자를 집단해고 했다. 이번 투쟁은 직접고용을 쟁취해 정년까지 해고 없이 일할 수 있게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입장이다.

학교는 청소노동자 없이 학교 운영이 불가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노동자 복직에 대해서는 합의를 모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직접고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인원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청소노동자 51명 전원 복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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