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이 말 그대로 뿌리뽑히는 날이 와 준다면야 좋으련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어디선가는 또 다른 추악한 행위가 재발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모두 천사는 아니기 때문에 불가피한, 우리 사는 세상의 유쾌하지 않은 이면이다. 그렇기에 피해가 발생했을 때 더 큰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주의로써 피해자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제도의 마련과 그 실효적 운영이 어쩌면 더욱 절실한 과제일 수 있다.

피해자국선변호사 제도 또한 그 가운데 하나이리라. 최근에는 성폭력 피해자가 원하는 경우라면 국가의 비용으로 피해자변호사를 선임해 주는 절차가 일반화 되어 있어서 다행한 점은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적지 않다. 필자는 특히 병영 내 사건의 피해자국선변호사로 여러 사건에 관여해 왔는데, 그동안 경험하면서 생각해 왔던 몇 가지를 공유해 보고자 한다.

피해자국선변호사로 선정되면 군 검찰부로부터 국선변호사로 선정되었음을 알리는 간단한 문서가 한 장 날아온다. 그 다음에는? ‘국선변호사 선정 이후에는 피해자와 변호사 두 사람이 알아서 해라.’라는 것과도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다. 병영 내 피해자 사건을 처음 대리했을 때의 일이다. 당연히 피해자에게, 그 선임된 변호사의 연락처와 필요한 여러 정보가 전달되어, 피해자가 원하는 적절한 시점에 피해자로부터 변호사에게 연락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서 계속 그 연락을 기다린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나저제나 아무리 기다려도 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피해자로부터의 연락.

피해자가 원치 않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피해자변호사로부터 어떤 내용의 도움을 어떠한 방식으로 받을 수 있는지를 피해자 본인이 미처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서 그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일 수도 있음을 이제는 잘 알기에, 지금은 선정통지서가 송달되면 필자가 먼저 연락을 취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피해자에게 첫 연락을 시도할 때마다, 혹시라도 피해자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어서 변호사의 연락을 당장에는 받고 싶어 하지 않는 시점에 잘못 연락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늘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이왕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서 피해자변호사를 국가가 선임해 주는 김에, 그 선정된 시점으로부터 일정한 기간 이내에 적어도 한 차례는 피해자와 피해자변호사가 직접 대면하여 절차 진행 시의 조력제공에 관하여 구체적인 상담을 진행하도록, 사건을 담당하는 군 검찰부가 그 1차적 대면 기회까지는 직접 주선을 하는 방식으로 제도화를 하는 것은 어떨까.

아무리 검찰부로부터 국선변호사 제도에 관해 설명을 전달 받았다고 하더라도, 대개는 형사절차를 경험하는 것이 생전 처음일 피해자들 가운데에는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왕좌왕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생각 외로 변호사에게 스스로 전화를 거는 일 그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피해자의 경우도 전혀 없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병영 내에서 생활하는 피해자들은 민간인 피해자들과는 달리, ‘영외’에서 변호사의 일과시간 중에 자유롭게 면담을 하기도 쉽지만은 않은 특성도 있다. 그리고 검찰부 측에서 피해자의 직접적인 의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먼저 확인하였으므로 면담을 하게 된다면 언제 피해자변호사와 면담하는 것이 좋겠는지를 좀 더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는 장점도 있다.

피해자국선변호사 제도의 개선점과 관련해서는, 부득이하게도 국선변호사의 보수체계에 대해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번은, 사건 초기부터 재판이 종결될 때까지 여러 번에 걸쳐서 전화와 전자우편 상담을 진행했고, 피해자의 증인신문을 준비하면서 2시간 넘게 대면상담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한 후 증인신문기일에는 피해자와 법정에서 동석해주기 위해서 왕복 세 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서 법원에 다녀오기까지 했었지만, 국선변호사 보수라고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70만원 남짓이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보수의 수준에 무관하게 언제나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성실하게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변호사의 직업윤리에 속한다. 하지만 변호사도 사람인지라, 더 큰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사건에 아무래도 더 많이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국선변호사 제도의 실효적 운영을 위해서는 그 보수 수준을 현실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언제까지 개개인의 선의에만 기댈 수는 없지 않은가.

또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병영 내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후 우리 곁을 떠났다. 안타깝기 그지 없다. 필자도 병영 내 성폭력 사건에 피해자국선변호사로 관여해 오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모든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삼가 조의를 표한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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