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선 칼럼] 가해자 위한 ‘더러운’ 침묵은 이제 그만
[김효선 칼럼] 가해자 위한 ‘더러운’ 침묵은 이제 그만
  • 김효선 발행인
  • 승인 2021.06.02 21:25
  • 수정 2021-06-05 1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군 성폭력 사건을 보며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춘숙 의원 등이 1일 경기도 성남 국군의무사령부 장례식장 접견실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고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중사 유족과 면담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춘숙 의원 등이 1일 경기도 성남 국군의무사령부 장례식장 접견실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고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중사 유족과 면담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공군 20전투비행단의 성추행 사건으로 스물 네 살의 여성인 이모 중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회식 이후 선임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군당국에 신고를 했지만 아무런 대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의지할 곳 없었던 피해자는 휴대폰 동영상으로 그간의 억울한 이야기를 남기고 아주 먼 여행을 떠났다. 그 날이 마침 혼인신고를 한 날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여론의 국민 관심사로 떠올랐다. 국무총리의 질타를 받은 국방부에서 원점 수사 방침을 정했다. 여성가족부에서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피해자 입장에서 현장 점검을 요청하고 나섰다. 국민청원에 대한 성원과 시민단체의 지원도 이어졌다. 공군에서 3개월간 뭉개고 있던 사건을 넘겨받은 국방부 검찰단은 즉각 가해자 장 모 중사를 강제추행 치상 혐의로 구속했다.  이제부터라도 국방부장관이 약속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자존감 높은 젊은 여성직장인의 절망

여군이 1만명을 넘어섰고 국방부는 2022년까지 여군을 8.8%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앞으로 여군 지망생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지만 공군 성추행 사건에서 보듯이 인권의식과 성인지 감수성에서 크게 뒤떨어진 군대 문화의 개선이 시급하다.

이 사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이번 사건이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발된 전문직 여성이 직장생활에서 겪어야 했던 직장내 성폭력이라는 점이다. 여성부사관이 되려면 남성부사관보다 더 심한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성실하게 노력해 시험에 통과하고 부사관에 임관한 이 중사는 당당하고 자존감 높은 20대 여성이었다. 군인이 되면 차별없는 공정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희망찬 인생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중사가 만난 직장문화는 고약하고 비인간적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성폭력 범죄를 응징할 수 없는 비상식. 그 괴력에 짓눌렸을 젊은 여성 직장인의 절망에 주목해야 한다.  

어렵게 취직한 직장에서 성추행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직장인의 이야기는 익숙하다.  대도시 시장실에 근무했던 여성공무원도 있었고,  얼마전 법무법인에 취업한  20대 초임 여성변호사의 '미투'도 있었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취급하는 직장문화가 꿈많은 전문직 여성을 어떻게 죽였는지가 이 사건의 본질이다. 기대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딸들이 열심히 일하는 직장에서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는 답해야 한다.

‘개소리’ 집단의 인권유린 사건

둘째, 성폭력 사건 발생후 군대 조직의 대응은 지극히 비인간적이었다. 현역 의원의 신고를 받은 정의당의 신속한 처리와 비교된다. ‘없던 일로 해달라,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상부에 알리지 말라,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 부대를 망치는 문제아, 관심병사로 꼼짝 못하게 하라. (가해자가) 명예로운 퇴임을 하게 해달라....’ 피해자가 조직 안에서 들어야 했던 폭력적인 말들이었다. 성폭력 피해를 공식적으로 접수하고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게 아니라 무마, 은폐, 협박, 따돌림, 낙인... 등등 온갖 말같지 않은 말들이 피해자를 여러 번 죽여나갔다. 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었다면, 한명이라도 피해자 편에서 힘이 돼 주었다면 공군20전투비행단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모든 남군들이 더러운 침묵의 연대를 맺고 공범자가 된 것 또한 이번 사건의 중요한 핵심이다. 『개소리에 대해서』의 저자 프랭크 퍼트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이번 공군 성폭력 사건은 ‘개소리’ 집단의 인권유린이라 할 수 있겠다.

환골탈태하고 확인 받으라

셋째, 폐쇄적인 군대조직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축적해 놓은 인권과 성인지 감수성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사각지대에 있다는 게 드러났다. 여군을 동료로 보지 못하고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수준의 정신력으로 어떻게 나라를 지킨단 말인가? 코로나 방역지침을 어기면서 회식하고 술마시고 성추행하고 은폐하고 따돌리고.... 군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도덕적 해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겠다. 군 문화의 개혁에 비상한 관심이 모인 지금, 말 그대로 환골탈태하는 변화를 이뤄나가는 개혁이 있어야겠다.  이미 사회상식으로 축적된 글로벌 스탠다드가 있다.  군인 정신을 살려 인권과 젠더 감수성이라는 상식적인 규율을 지키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바란다.  영혼 없는 재발방지책 발표 같은 일을 반복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시민 사회와 소통하면서 변화 과정을 확인받기 바란다.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