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범헌 한국예총 회장
130만 회원 거대 예술단체
부채·갈등·코로나로 숨 가빴던 임기 1년
게으름 반성하고 더 열심히 뛰겠다

이범헌 한국예총 회장 ⓒ홍수형 기자
1일 서울 양천구 예총 사무실에서 만난 이범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장. ⓒ홍수형 기자

“예총은 게을렀습니다. 60년 역사를 지닌 단체지만, 예술 본연의 가치와 비전을 스스로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부족했어요. 반성하고 열심히 뛸 시간입니다.”

이범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회장의 진단은 날카롭다. 예총은 국내외 158개 연합회·지회, 130만 회원을 둔 거대한 예술단체다. 그러나 ‘쓰러져가는 공룡’으로 불린다. 심각한 부채에 나날이 기우는 살림, 조직 운영을 둘러싼 갈등, 코로나 시대 더 깊어진 예술인들의 생계난이라는 까다로운 과제를 갖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취임하면서부터 이런 막중한 책임을 안았다. 임기 2년 차를 맞아 각오를 다졌다. “예술인의 복지 증진과 권익 보호가 모든 정책과 사업의 기반이고 목적입니다. 나아가 국민들이 수준 높은 문화예술을 일상에서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열심히 뛰겠습니다. 그래서 예술인들이 다시 국민의 사랑을 받고, 고질적인 생계난을 해소하고 창작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선순환을 이룰 정책을 펼치는 게 예총의 사명입니다.”

“지속가능한 창작활동 환경 조성이
실질적인 예술인 복지...
예술하며 생계유지할
현실적·법제도적 장치 만들겠다”

이 회장은 “예술인들의 독자적 생계유지가 가능하도록 법제도적 장치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윤여정 배우, 봉준호 감독, BTS... 그들이 우뚝 서기까지 수많은 스탭들, 안정적으로 활동할 법제도적 기반이 있었습니다.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권, 국가 경쟁력, 국격을 만드는 게 예술이잖아요? 그 중대한 역할에 비해 예술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위상, 직업으로서의 가치 창출은 미약합니다. 일부 스타 외에는 예술 활동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예술인들도 노력해야 하지만, 생계를 유지하며 지속가능한 창작활동을 할 환경을 조성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게 실질적인 예술인 복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예술인복지법, 예술인고용보험 등 법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현장과는 괴리가 있다”고 했다. “좋은 제도지만 허점도 분명해요. 일회성 프로젝트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술인들은 꾸준히 보험료를 내기도 소득 기준을 충족하기도 어렵습니다. 코로나 이후 예술인 긴급 재난지원금,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 정부·지자체의 지원이 늘었는데, 역시 구멍이 있어요. 지원 기준을 낮추면서 ‘아마추어나 프로나 동일하게 지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온라인 신청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 예술인들이 배제됐다’ 같은 불만이 나옵니다.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소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이범헌 한국예총 회장 ⓒ홍수형 기자
1일 서울 양천구 예총 사무실에서 만난 이범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장. ⓒ홍수형 기자

‘빚덩이’ 예술인센터 매각 추진
‘예총=보수’라는 흑백논리 거부
“예총·민예총 손잡고 협력·상생해야”

뜨거운 감자인 ‘예술인센터 매각’ 계획도 밝혔다. 서울 양천구 목동 예술인센터 건물은 지하 5층, 지상 20층짜리 빌딩(대지 1300평, 연면적 약 1만2500평)으로 감정법인 평가액 약 1140억원으로 추산된다. 건설에만 국비 265억원이 투입됐는데, 부실 운영으로 부채가 해마다 10억 이상 늘어나고 있다. “결국 매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매각 이후 새 대안공간을 조성하는 방안을 서울 25개 자치구, 문체부, 국회와 논의 중입니다.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와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방안을 찾겠습니다.”

이 회장은 “예술에는 진보도 보수도 없다. ‘예총=보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진보’라는 낡은 흑백논리에 예총을 가두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런 논의 자체가 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다는 방증입니다. 예술은 그 자체로 진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운동, 이데올로기적 ‘진보’가 아니라 문명적, 철학적 ‘진보’ 개념입니다. 오늘날 예총은 민예총과 함께 중요한 문화예술 정책을 함께 논의해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세세한 사업 활동 방향은 달라도 궁극적으로는 함께 가야 합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는

한국 예술의 미래 지향적 발전을 도모하고 예술문화인들의 친목과 권익 옹호를 위해 1961년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회원협회 10곳(한국건축가협회·한국국악협회·한국무용협회·한국문인협회·한국미술협회·한국사진작가협회·한국연극협회·한국연예협회·한국영화인협회·한국음악협회), 전국 광역시·도, 시·군 156개의 연합회와 지회(미국·일본)로 구성됐다. 회원은 약 130만명이다. 주요 사업은 회원단체 행정지원, 기획전시·공연 등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지역문화사업, 문화예술교육, 예술정책토론회, 각종 법규 제정 및 개정 등 정책 참여, 예술인 지원, 출판과 연구 및 조사다. 예술문화의 교류촉진과 예술인 권익신장을 위한 행정지원 및 정책연구 등 각종 문화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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