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동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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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로 구성된 라틴 댄스 동호회의 2주년 기념파티 모습. <사진·해피 라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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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통해 인라인, 라틴 댄스, 락 등 동호회 확산

넥타이를 맨 멀쩡한 청년이 일렉트릭 기타를 메고 끙끙거리고 있다. 뭔가 어설픈 포즈. 기타리스트라기엔 너무 단정한데? 그의 곁으로 흐르는 “서른 넘어서 처음 쳤어요”라는 문장. 넥타이 기타맨 뒤에서는 긴 생머리에 청바지를 입은 얌전한 젊은 여성이 열심히 드럼을 치고 있다.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재밌는 걸 어떡합니까.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모 기업 PR 광고다.

어려서부터 너무너무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공부하느라 바빠서, 회사 다니다 보니 미뤄온 일들을 과감하게 실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평일에는 버젓한 직장인이지만 주말이 되면 락커로, 댄서로, 배우로 변신한다. 바로 직장인 동호회원들이다. 직장 다니면서 취미활동하는 게 쉽지 않지만, 이들은 오히려 “새 삶을 찾았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쓸데 없는 회식자리 대신 퇴근 후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운이 좋으면 멋진 인연을 만날 수도 있고…. 이들이 꼽는 동호회의 장점은 한둘이 아니다.

동호회 열풍은 인터넷에 힘입은 바 크다. 인터넷에서는 학벌, 직업, 연봉, 성별에 상관없이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발표회나 파티를 열어 그동안 갈고 닦은 역량을 과시하기도 한다. 여성들이라고 소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동호회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주로 적은 돈과 장비로 즐길 수 있고,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취미들이 각광받고 있다. 라틴 댄스나 인라인 스케이트, 등산, 록음악, 연극, 농구, 스노보드 등이 그것이다. 특히 인라인 스케이트는 간단한 장비만 있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인기다. 인터넷 동호회의 번개 공지를 통해 올림픽 공원이나 여의도 등에서 한두 시간 인라인을 즐기고 영화를 보거나 가볍게 한 잔 즐기곤 한다.

라틴 댄스도 급부상하고 있다. 이삼십대 직장인만으로 꾸려진 인터넷 라틴 댄스 카페 '해피 라틴'은 회원수가 3천 명을 넘는다. 라틴 댄스는 지난해 한 TV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멋지게 춤춘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그보다는 생각보다 쉽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 배려와 친절을 핵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인기다. 강남역이나 압구정역 근처에 있는 라틴 바들이 꽤 여러 개인데, 6천 원에서 8천 원 가량의 음료수권을 끊으면 맘껏 춤을 출 수 있다. 입던 옷 그대로도 즐길 수 있고, 댄스화도 몇만 원이면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라틴 댄스의 특성상 파트너와 조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서로를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이 필수다. 동호회들은 댄스 스튜디오와 연계해 프로 댄서로부터 강습을 받기도 한다. 강습료는 2달에 7만 원 정도.

락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열광한 로큰롤. 그렇지만 악기구입은 언감생심이었고 혼자서 그룹사운드를 꾸릴 수도 없었다. 요즘 인터넷 락 동호회는 나이, 성별, 실력에 상관없이 함께 연주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이다. 광고에 나온 이들도 '직장인 밴드 연합'을 결성해서 활동하는 진짜 직장인들이다. 연극이야 본시 중독성이 강해서 한번 손을 대면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이라고들 하지만 직접 극단을 꾸리고 정기공연하는 동호회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편으로는 직장에 자신의 동호회 활동을 밝히길 꺼리는 사람들도 많다.

“취미는 취미고 회사는 회사죠. 일 끝나자마자 취미생활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나와 회사 일을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됩니다.”

라틴 댄스 동호회 해피 라틴을 운영하는 사라세노 씨의 말처럼 취미는 오히려 직장생활에 활력을 주는 마력의 도구다.

최예정 기자shoooo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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