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예술평론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아니라

아내에게 '아부하는' 노래

신문기사나 뉴스도 행간을 읽어야 제 맛이라고 하는데, 대중예술을 통해 세상을 읽어내는 것도 그러하다. 작품 속에 나온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왜 하필 이때 이런 노래가 나왔을까 하는 것을 되짚어 생각할 때 제대로 보인다는 말이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도 그렇게 읽어내야 하는 노래 중에 하나다.

젖은 손이 애처로와 살며시 잡아 본 순간 /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웠소 / 시린 손끝에 뜨거운 정성 고이 접어 다져온 이 행복 / 여민 옷깃에 스미는 바람 땀방울로 씻어온 나날들 /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하수영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1976, 조운파 작사, 임종수 작곡)

전통적 현모양처를 여자가 가야 할 당연한 길이라는 생각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라면 이 노래를 들으면서 고개를 외로 꼬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애처로워? 쳇, 웃기고 있네. 그렇게 애처로우면 지가 빨래를 좀 하지. 아니 빨래하는 것까지는 안 바란다. 속옷이니 양말짝이니 꼭 홀랑 뒤집어 벗어놓아 손 한번 더 가게 시키면서, 입으로 말만 번드르르….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온다.

이런 남자들은 겉으로는 아내를 매우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은 아내가 밥 한 끼라도 안 챙겨주면 큰일이나 난 것처럼 생각하는 전형적인 마초들일 가능성이 높다. 아내의 가치는 손마디가 거칠어지도록 자신을 위해 일을 하고, 아내 자신의 삶을 접고 온전히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할 때에만 생기는 것이라는 생각에 철저하게 젖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금 차분히 생각해보자. 왜 하필이면 1970년대에 이런 노래가 나왔을까?

1970년대 후반이라면 그래도 청바지 입은 씩씩한 양희은과, 배꼽이 보일락 말락 남방을 질끈 동여맨 김추자가 휩쓸고 지나간 때가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세상이 변했는데 이런 시대착오적인 노래가 나오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그런데 나는, 바로 이 노래의 등장이야말로 세상에 변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곰곰 생각해보자. 왜 이전까지는 이렇게 착하고 참한 현모양처를 칭송한 노래가 없었을까? 그 이유는, 이렇게 착한 현모양처로 사는 것이 특별히 칭송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 여자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당연한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여자가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남편이 가져다주는 쥐꼬리만한 돈으로도 군소리 없이 알뜰살뜰 저축까지 하고, 남편이 매일처럼 밤늦게 친구들을 데리고 들이닥쳐도 군소리 없이 주안상 해올리는 것은, 그야말로 '기본나가리'다. 이것도 안 하면 당장 소박맞을 여편네가 되는 거다. 그러니,

이렇게 살다 속이 타버린 여자들이 '고초 당초 맵다더니 시집살이 더 맵고나'라고 노래했던 민요나,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라고 흐느끼는 <여자의 일생> 같은 노래는 터져나올지언정, 남자가 이런 삶을 칭송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게 뭐 그리 노래까지 해 바쳐야 할 일인가 말이다. 1970년대에 이런 노래가 나와 인기를 끈다는 것은, 이제 이러한 현모양처의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여자들에게 이런 현모양처형 전업주부, 단정히 옷깃 여민 다소곳하고 소극적인 여성상은 전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가치관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던 시대였던 셈이다. 그러니 이렇게 현모양처로 꿋꿋이 살아가는 것을 장한 일로 칭송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구체제에 균열과 위기가 생길 때에는, 늘 표면적으로 보수성이 강화된다. 조선조의 질서가 붕괴되고 있던 조선 후기에, 양반 가문 따지는 습관이 훨씬 강화되고, 족보에서는 딸의 이름이 빠지기 시작했다고 하지 않는가. 어둠이 깊어지는 것은 새벽이 멀지 않은 증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 노래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라기보다는 '아내에게 아부하는 노래'다. 아부라도 해서, 아내가 계속 착한 현모양처로 살아가도록 독려해야만 한 시대의 변화가 눈에 선하게 보인다. 노래로서는 꽤 깔끔하게 정리된 노래인데도,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왠지 스멀스멀 벌레 기어가는 것 같고 닭살 돋는 느낌을 주는 이유는 바로 이 '아부'의 냄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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