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 여성문제 '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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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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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선 여성부 대외협력국장

(추천의 변)

주진오 교수님은 국내에서 남자로는 유일하게 여성사학을 강의하시고, 여성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의 여성문제와 여성현실을 바라보는 분입니다. 이번 여성사 전시관 1주년 기념 전시회에서도 많은 조언들을 해주셨고 꾸준히 여성의 눈으로 역사를 재해석, 교육하시는 분으로, 사학계 GS리더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여성사 가르치는 '청일점' 구수한 입담에 인기 강사

남성도 가부장제 피해자 남녀공존·열린사고 필요

남자로선 유일하게 여성사를 강의해 화제를 모은 주진오 교수(48·상명대 사학과). 7년간 대학 강단에만 서다 지난 10월 KBS TV 'N세대 특강'의 여성사 강의를 진행하며 유명세를 탔다. 특히 여성부가 주최하는 여성사 전시관 1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여성사 고증까지 맡았다니, 페미니스트 역사학자이거나 최소 친여성적인 남자임에 분명하다.

“스스로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완벽한 페미니스트는 아니어도 착한 남자 정도는 되지 않을까. 늘 억압당하는 사람 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성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면서 나조차도 어떤 사람에게는 의도하지 않게 억압자일 수 있겠구나 깨달았죠.”

1995년 상명대에 한국 여성사 과목이 개설됐고, 이를 강의해줄 강사를 찾다 우연히 주 교수가 물망에 올랐다. 한국근대정치사상사를 전공한 그에게 한국여성사는 다소 생소한 분야였지만 일단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선뜻 강사로 나섰다. 그가 처음 강의실에 들어서니 당황해하던 학생들.

“어떤 학생들은 과목만 보고 신청한 경우도 많거든요. 처음에 들어가면 웅성웅성해요.”

이제는 입담 좋은 남자교수의 여성사 과목이 이 학교 인기 수강 과목으로 떠올랐다.

“남자인 나한테 여성문제는 부차적이거나 절실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여자 입장에서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얘기하니 학생들 스스로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알게 되고, 어떤 점에서는 페미니스트 여성이 강의하는 것보다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의 강의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여성사 전반을 훑는 내용이다. 여성사가 한가한 옛날 얘기가 아니라 오늘날의 여성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무기이자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그. 호주제 역시 피해 사례를 통해 국민들을 설득하려 하기보다 역사적 근거를 통해 그 부당성을 역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성사를 통해 전통이란 이름으로 강조되는 것들의 토대를 허물고, 그렇게 함으로써 여성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좀더 당당한 논리를 제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주변에서는 남자가 이런 역할을 해주니 좋다는 반응. 물론 비우호적인 반응도 없지 않다.

“자기가 여자에 대해 알면 뭘 알고 페미니즘에 대해 알면 뭘 알아라고 절대적인 기준을 놓고 보면 많이 부족하죠. 제가 여성사학의 선구자도 아니고, 다만 그 분들이 열심히 공부한 걸 소화해서 학생들로 하여금 바람직한 생각을 갖도록 하자는 건데….”

주 교수는 오히려 “남성들이 얼마나 가부장제 조건 속에서 스스로 제압 받았는가 여성들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늘 대립구도를 만들어 몰아붙이는 건 너무 남성적인 모습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수업을 위해 개설한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는 이따금 성상담이나 결혼 문제 등을 털어놓는 학생들의 글이 올라온다. 처음엔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지금은 편한 마음으로 응수하게 됐다고.

“힘의 관계가 역전돼서 주체만 바뀌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남학생들한테 빨리 이런 흐름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해요.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하나의 인간으로서 완성되기 위해, 행복을 찾는 길이라 생각하라고 말하죠.”

주 교수 개인적으로는 텍사스 주립대 한국어 강사인 부인이 딸과 함께 미국에 체류중이다. 집에는 주 교수와 그의 아버지, 아들, 남자 3대가 모여 산다. 결혼 초만 해도 집안일 하는 것이 쑥스러웠다는 그이지만 언제부턴가 아파트 2층에 살아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빨래 너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됐다. 실업자 아니냐는 오명까지 쓰며 학부모회에 나가는 일은 기본.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 아닙니다. 도와주는 것에서 벗어나 집안일을 내 일로 생각하게 됐어요. 내 일인데 불평할 게 뭐 있나 싶고 밥 먹다 반찬 남은 거 있으면 다 먹게 되고. 어느 새 여자들, 여러 가지 일이 분산돼서 사회적인 일 해 나가는데 어려움이 많았겠구나 이해하게 됐죠.”

근대 여성에 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남성학자가 여성사에 관심 갖고 주목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주 교수는 여성사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이어가 내년 봄쯤에는 신여성, 현모양처론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해볼 생각이란다.

임인숙 기자isim123@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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