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시인 30주기 ③]
고정희는 떠나도 여성주의 문화운동은 계속된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등 또하나의문화 동인들과 함께 있는 고정희 시인 ⓒ여성신문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등 또하나의문화 동인들과 함께 있는 고정희 시인 (오른쪽에서 반시계방향으로 두 번째) ⓒ여성신문

고정희는 떠나도 여성주의 문화운동은 계속된다

시인은 떠났지만, 그를 기리는 여성주의 문화운동은 30년째 이어지고 있다. ‘또문’은 2001년 ‘고정희상’을 제정하고 여성 예술가, 소외된 이들과 연대하는 이들을 시상하고 있다. 김승희 시인, 박영숙 사진작가, 윤석남 화백, 이경자 작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할머니들 등이 이 상을 받았다. ‘고정희 기행’, ‘고정희 청소년 백일장’, ‘고정희 소녀문학상’, ‘소녀들의 페미니즘’ 워크샵 등, 다양한 배경과 세대의 여성주의 문화활동가들이 교류, 연대하는 다채로운 행사도 열렸다. 이길보라 감독, 이슬아 작가 등은 ‘고글리(고정희청소년문학상에서 만나 글도 쓰고 문화 작업도 하는 이들의 마을)’라는 청소년 문화 작업 집단을 만들었다. 

여성신문은 2004년 13주기 추모제 보도에서 “가부장적인 지역 문단과 남자문인들에 의해 한때 ‘처녀귀신’ ‘시집 못 가고 죽은 누이’에 머물렀던 고정희는 해를 거듭하며 그렇듯 여성들의 가슴 속에 갖가지 색깔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세대를 넘나들며 소통의 매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문’ 동인 박혜란 여성학자는 2006년 6월 여성신문 지면에 이렇게 썼다. “처음 10년 동안은 고정희를 아끼는 지인들의 가슴에 안겨 있더니, 다음 5년 동안에는 고정희가 태어난 해남의 여성들 품으로, 그리고 드디어는 전국 곳곳에 사는 여성들의 마음에 고정희가 스며들어 가고 있다. 죽은 시인 고정희는 점점 힘이 세진다.”

2008년 6월, 하자센터에서 독립한 사회적 기업 ‘노리단’ 이 고정희 시인 무덤가에서 공연하는 모습. ⓒ여성신문
2008년 6월, 하자센터에서 독립한 사회적 기업 ‘노리단’ 이 고정희 시인 무덤가에서 공연하는 모습. ⓒ여성신문
2009년 6월 열린 고정희 문화제. ⓒ여성신문
2009년 6월 열린 고정희 문화제. ⓒ여성신문

“얼굴도 모르는 이 시인이 나의 비빌 언덕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시로 나는 또문을 만나고 대안 교육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삶을 함께 뚜벅뚜벅 걸어갈 동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길보라 영화감독이 2014년 11월 또 하나의 문화 30주년 칼럼에서 쓴 글이다.

7년이 지난 지금의 소회를 물었다. “시인이 좋아서 시작했다기보다는, ‘고정희’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진 사람들, 시인을 추억하면서 지역에서 무언가를 계속 만들고 지켜내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요. 몇 달 전에도 또문 선생님들과 온라인 좌담회를 열었어요. 요즘은 해남에 자주 가지 못하지만, 시인의 추모제가 열릴 때마다 다 함께 해남 묘소에 가서 추모제를 보는 게 저희에게는 큰 연례행사이자 연결감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고글리’의 이름으로 문학상을 만들고 재미있는 일을 해 보겠다고 했을 때,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시고 든든한 인적 물적 자원을 제공해 주신 또문 선생님들께 늘 감사합니다.”

이명숙 전 고정희기념사업회장도 “고정희 시인은 19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여성들, 삶과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들에게 큰 자극이자 ‘비빌 언덕’이 됐다. 변화를 꿈꾸는 주부였던 나는 고정희, 또문을 만나 지역에서 사회경제적 비전을 세우고 실천하는 활동가로 살고 있다. 시인은 죽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 지역과 지역 사이, 무수한 관계와 움직임 속에 살아 있다. 그 풍경이 짜릿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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