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광희 사단법인 희망고 대표
LS엠트론 구본규 대표 지원으로
트랙터 2대, 호미, 씨앗 등
안식년 동안 농사‧식물에 관심
‘이끼 들꽃 정원’ 선보이고
40년만 처음 ‘이지웨어’ 도전
“가치 있는 일에 여전히 설레”

이광희 희망고 대표 ⓒ홍수형 기자
 이광희 희망고 대표는 “아프리카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현지에서 농사를 지어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길”이라며 올해 본격적으로 농사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홍수형 기자 

패션 디자이너이자 아프리카 구호 활동가인 이광희 사단법인 희망고 대표가 최근 ‘아프리카 농사 프로젝트’에 나섰다. 메마른 땅에 농사라는 희망을 심기로 결정하고 농사에 필요한 트랙터 2대와 각종 씨앗 1만 봉지, 곡괭이‧호비 등 농기구 500개를 지난 5월 중순 남수단 톤즈로 보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구본규 LS엠트론 대표이사가 힘을 보탰다. 한 대에 7000만원이 넘는 트랙터 두 대와 물류비용 등 약 2억원을 기부했다. 이 대표는 “아프리카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현지에서 농사를 지어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구본규 대표도 일회성 기부를 넘어 차원을 넘어 아프리카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일에 선뜻 참여해 이번 농사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메마른 땅을 일궈 농사를 짓고 수확하는 비옥한 땅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아프리카로 향한 40피트 크기의 컨테이너 3대에는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용품 뿐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컴퓨터 90대와 한센인 아이들이 다닐 초등학교 건립에 필요한 시멘트 500푸대, 전기톱, 기능용 매트리스 500개, 코로나 확산을 막는 소독세제 등이 가득 실렸다. 현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 대표는 개인 기부와 오뚜기 등 기업 기부를 받아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물품을 꼼꼼히 챙겨 보냈다.  

구본규 LS엠트론 대표이사는 아프리카 농사 프로젝트를 위해 트랙터 2대 등을 희망고에 기부했다.  ⓒ이광희 대표
구본규 LS엠트론 대표이사는 아프리카 농사 프로젝트를 위해 트랙터 2대 등을 희망고에 기부했다. ⓒ이광희 대표

올해로 이 대표가 아프리카 구호 활동에 나선 지 11년째다. 대통령 부인과 정재계 유명인사의 옷을 짓는 톱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린 그는 2009년 3월 배우 김혜자씨와 함께 봉사활동 차 찾은 남수단 톤즈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남수단은 2011년 7월 수단에서 독립했지만 전쟁과 기아로 2014년 ‘취약국가지수’ 1위를 기록할 만큼 열악한 곳이다. 이 대표는 수중의 돈을 털어 망고나무 묘목 100그루를 구입해 그곳에 심었다.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망고나무는 한 번 심으면 100년 동안 먹거리를 내주는 희망의 나무다. 구호 활동 경험이 전무 했던 그는 사단법인까지 만들어 인생 2막의 시작이다. 10년간 4만 그루의 망고나무 묘목을 톤즈 주민들에게 배분했고, 복합교육기관 ‘희망고 빌리지’를 세워 톤즈 주민들의 자립을 도왔다.

패션디자이너와 구호 활동가의 삶을 병행한 지난 10년은 생명을 살리고, 마음을 보듬는 나날이었다. 그는 “농사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5년 전부터 조금씩 빌리지 텃밭에 씨앗을 뿌리는 실험을 해왔다”고 했다. 전문가들에게 자문도 했지만 농사 시작 전 토양 평가 등 거쳐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무작정 한국에서 가져간 수박, 참외, 오이, 시금치, 배추 씨앗을 척박한 땅에 뿌렸다. 메마른 땅에서도 새 순이 돋았다. 수박이 열렸을 때는 눈물이 흘렀다. 주변에선 안 된다는 말만 들었지만, 열매를 보며 희망을 얻었다. “척박한 땅에서 맺은 열매를 보며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는 성경 말씀이 떠올랐어요. 아무런 농사 기술이 없어도 일단 씨를 뿌리고 애정을 주면 열매를 맺을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백합화를 찾고 싶었어요.”

 

지난해 안식년을 가진 그는 올해 인생 3막을 위한 기지개를 펴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농사 프로젝트’이고, 두 번째는 식물이다. 20~30대 패션 디자이너로서 발돋음 하던 시기, 플로리스트로서도 활약한 그는 시는 동안 나무 둥치에 낀 이끼와 길섶에 핀 들꽃 한 송이에 마음이 갔다. “푸릇한 새 순이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희망을 불어넣었다”고 했다. 야생란, 서리이끼, 비단이끼, 죽도 야생난 등을 한데 모으니 화분 크기의 작은 정원이 됐다. 주변에 이끼 들꽃 정원이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사람이 늘어 ‘새벽의 새 순’이라는 이름도 붙이게 됐다. 이제 서울 남산 중턱에 위치한 그의 부티크는 옷이 아닌 이끼와 들꽃으로 가득하다.

화려한 맞춤복에서 벗어나 ‘이지웨어’ 디자인에도 처음 도전했다. 이 대표가 살짝 보여준 새로운 컬렉션은 수수하고 편안한 스타일을 즐기는 평소 그의 스타일과 닮아 있었다. 그는 6월 중 들꽃 정원 작품과 이지웨어 컬렉션을 함께 즐기는 자선 패션쇼를 열 계획이다.

40년 간 톱 패션디자이너로 산 그는 일흔의 나이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돈과 명예를 가졌으면서도 굳이 새 길을 내려는 이유는 뭘까. 이 대표는 “이 나이에 왜 힘든 길을 가느냐고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이걸 안하면 뭘 할까, 몸이 편해지면 뭘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그는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도전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하고자 하는 일의 목적과 가치를 생각해보라”고 권했다. “돈을 버는 일은 정말 중요해요. 그런데 왜 돈을 버는 것인지, 이 돈으로 뭘 하려고 하는 것인지 목적과 가치를 생각하면 삶이 달라질 겁니다. 저는 일의 특성상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돈을 벌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분들을 많이 접했어요. 그 분들에게 나눔과 기부라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안내하고 나눔을 전하는 심부름꾼 역할을 자연스럽게 맡게 됐지요. 모든 일에 는 양면이 존재합니다. 어려운 일은 어려운 만큼 반드시 얻는 게 있었어요. 보람과 기쁨이 배가 됐죠. 하는 일마다 어려움이 뒤따르다보니 이제는 이 정도 어려움 없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지 라는 생각도 하게 됐죠. 일의 목적과 추구하는 가치가 분명하다면 그 과정에서 닥치는 어려움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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