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자연에 비하면 너는 한 마리 작은 개미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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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자라면 '나의 살던 고향'에 대한 기억으로 어떤 것을 떠올릴까? 혹시 '현대·이 편한 세상' 같은 아파트 이름과 대형 할인매장 진열대나 롯데월드, 코엑스몰의 조명이 그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하진 않을까? 해마다 피고 지는 꽃나무나 겨울이면 왔다 가는 철새같이, 순환하는 자연·계절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발견하는 기쁨을 느끼고, 재회를 기다리며, 변화를 감지하는 체험의 길은 이 도시에서는 멀기만 해 보인다. 이런 체험의 결핍은 아이들의 '시간' 감각을 거대한 우주의 순환이라는 자연의 리듬이 없는, 켜고 끄고 언제라도 내 마음대로 조절가능한 것으로 형성해 놓을지도 모른다. 기우일까?

그림책 <마리아>는 '도시가 아닌 곳'에 사는 아이 마리아가 주인공이다. 작가는 주로 첫 페이지에 주인공이 어디 산다는 시공간의 정보를 주는 관습을 깨뜨린다. 저녁마다 마리아는 교회 지붕에 올라가 철새들을 기다리는데, 그 새들은 이맘때 날아와 마리아네 집 주변에서 쉬었다 날아가며, 철새들의 깃털로 뒤덮인 벌판은 아름답다고 서술한다. 이런 방식은 세계에 대한 아이들의 부분적인 인식을 반영한다. 또 삽화에도 아이들이 느끼는 세계의 크기가 표현되어 있다. 두 페이지에 걸친 교회지붕과 기와 하나를 끌어안고 있는 아이 하늘까지도 스페인에서는 밀의 색이겠지만, 우리로 치면 황토색인 엷은 황토색으로 그려져 있다. 삽화는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처럼 아이들의 인지나 감각에 맞추는 섬세한 배려가 숨어 있다.

'하늘에 예쁜 그림을 그려주던' 철새들을 찾아, 커다란 새를 만들어 집으로 데려오겠다는 마리아에게 젖소는 말한다. 거대한 자연에 비하면 너는 한 마리 작은 개미일 뿐이니 참고 기다리라고. 하지만 마리아는 길동무들인 돼지와 오리와 닭과 함께 도서관에 가서 오래된 책을 찾아 새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본 뒤 무작정(!) 자전거를 타고 떠나 밀밭 사이로 난 길을 지나 도시에 이른다. 높고 빽빽한 빌딩과 그 아래 벽에 몸을 붙이고 서서 새들을 올려다보는 마리아의 대비나, 사각의 빌딩과 공장굴뚝들 사이 새들의 길 잃은 날개짓의 대비 위로 펼쳐진 검은 하늘은 비좁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먼지 낀 장서들이 가득 찬 도서관의 공기까지 표현한 장면이나 이후 마리아가 큰 날개를 만들어 자전거에 달고 검게 얼룩진 하늘을 나는 장면보다 더. 이는 '마리아는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라는 한 문장 때문이다. 그림은 나서있고 글은 물러나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새들의 날갯짓에 대한 아이의 감응을 묵묵히 보여주는 데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철새를 보러 가고 싶다면 여의도로 가면 된다. 철새들의 낙원이 된 밤섬을 볼 수 있는 '밤섬 철새 조망대'가 한강 시민공원 수영장 강가에 무료 개방되고 있다. 또 내년 1월 1일부터 2월 말까지 운항되는 철새 관찰 유람선을 타면 더욱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중랑천 하류의 용비교에도 쇠오리나 청둥오리가 머문다고 한다. 단 소음을 싫어하는 새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보자. 그들이 하늘에 얼마나 예쁜 그림을 그리는지.

아드리아 고디아 글, 주디트 모랄레스 그림, 김정하 옮김, 아이세움

김은선 객원기자 barya@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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