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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여하는 프로그램 중에 '행복한 가족 만들기 워크숍'이라는 것이 있다. 지난 토요일에도 일산에서 워크숍이 있었다. 정해진 시간이 가까워지자 한 가족, 두 가족 모이기 시작했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가족 워크숍이고 목적 또한 '행복한 가족 만들기'인데 거기 모이고 있는 사람들은 엄마와 자녀 또는 엄마들뿐이다.

'아빠는 가족이 아닌가 봐요.' 하고 원장님께 말했더니 '아빠는 가족 아니죠. 가족 아닌 지 오래 됐어요. 예전처럼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권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안됐죠?' 하신다.

한참 워크숍을 진행하다가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요?'라고. 늘상 그렇지만 오늘도 역시 아이들이 정답을 쥐고 있다. 아버지들이 돈 버느라 같이 못 하고, 참여한 엄마들이 경제력 운운할 때 아이들은 '정답게 이야기하기요!''억지로라도 웃어야 돼요!' '각자 할 일은 자기가 해야 돼요'하고 소리를 높인다. 그때마다 얼마나 놀라운지 나는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냥 이야기도 아니고, 그냥 웃는 것도 아니고, '정답게' 이야기하고 '억지로라도' 웃는 것. 도와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자기 할 일을 알아서 하는 것. 그게 행복한 가족을 만드는 지름길이란다.

먹고사는 게 최우선이었던 70년대, 80년대에는 가족가치니, 행복한 가정이니 하는 것은 참 배부른 소리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점심을 굶더라도 사고 싶은 것은 사야 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시대다. 남편과 같이 벌고 같이 집안일을 나누며 짐도 기쁨도 나누기를 원하는 여자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들은 가족생계 부양에 대한 엄청난 짐을 어깨에 혼자 짊어지고 가느라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다. 부인이 왜 일을 하는지, 무슨 생각으로 일을 하는지,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아버지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그리고 누가 내 짐을 함께 나눌 수 있는지… 그들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한다.

많은 아버지들이 돈번다는 이유로, 가장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왕따시키고 있다. 그리고 명퇴 후에, 나이들면 가족들이 왕따시킨다고 한탄을 한다. 사실 그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그저 가족들을 위해서 늦게까지 일하고, 밤까지 술 마시고, 피곤한 것일 뿐인데 가족들이 그것을 몰라주니 오히려 이들은 불쌍한 존재다.

무엇이 문제인가? 물론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버지만 변해서 될 일도 아니고 가족들이 아버지에게 고마워해서 될 일도 아니다. 사회도 변해야 하고, 기업 문화도 변해야 하고, 많은 것들이 변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는 일이다. 아버지들은 잘 모른다. 아무도 무엇이 중요한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들이 중요하다고 여긴 것을 아직도 중요할 거라고 추측하고 살 뿐이다. 이제는 우리가 가르쳐줘야 한다.

가정의 행복을 위한다는 이유로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있던 아버지들을 구출해야 한다.

이제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은 엄마와 자녀들이다.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모를 땐 어떡하냐고? 당신의 자녀들에게 물어보시길. 대답은 자녀들이 가지고 있다. 단, 그들에게 자문을 구할 때는 솔직하게 심정을 털어놓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기를.

그래야만 아버지도 가족이 될 수 있다. 이제 며칠 안 남은 2003년을 훌륭하게 보내기 위한 실천으로 자녀들과 함께 '왕따의 늪에 빠진 아버지 구출작전'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행복을 위해서.

이진아 세종 리더십개발원 프로그램 개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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