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treeapp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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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그래프 한번 그려보자.

몇 년 전, 노인대학 각 반의 반장과 동아리 대표를 맡으신 어머님들 스무 분을 모시고 지도자 수련회를 갔다. 모처럼의 1박 2일 나들이에 마음이 들뜨신 어르신들은 아픈 허리와 시큰거리는 무릎은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듯, 이틀 동안 도저히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음식과 다양한 요리 재료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집합 장소로 오셨다. 소풍이나 수학여행과 달리 적은 인원이어서 인솔을 책임진 노인복지관 직원들의 마음도 가벼웠다. 본격적인 지도자 수련회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친 다음부터였다. 그 날의 프로그램 제목은〈나의 인생 그래프 그려보기〉.

그림 중앙의 실선은 나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현재 나이를 가장 오른 쪽에 표시하고 적당하게 등분을 한다. 위쪽 점선은 행복과 성공을, 아래쪽 점선은 불행과 실패를 뜻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그동안 경험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행복과 성공과 불행과 실패를 곡선으로 표시해 보는 것이다. 다 그린 후에는 그 그래프를 가지고 다른 동료들 앞에서 설명을 하는데, 드러내 말하고 싶지 않은 사연은 그대로 넘어가도 되고 털어놓고 함께 나누고 싶으면 자유롭게 이야기를 한다. 아래 그림에 그려진 그래프는 나의 인생 그래프이다.

그림 그리기에 익숙하지 않고 자신을 말로 드러내는 일에 숙달되지 않은 어머님들이어서 처음에는 무척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돋보기를 쓰고 방바닥에 엎드려 진지하게 곡선을 그려나가시는 어머님들의 휘어진 등을 보며 벌써부터 내 가슴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노인대학 친구들 앞에 그래프를 공개하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 첫 번째 어머님의 발표에서부터 벌써 말씀하시는 분이나 듣는 분이나 모두 눈물 콧물 범벅이시다. 딸로 태어나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온갖 고생 마다하지 않으신 어머님들의 이야기는 하나 하나가 역사였으며 소설이었으며 드라마였다.

'그 때는 죽고만 싶어서 맨 밑바닥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그림을 그려보니 그래도 아주 바닥은 아니었네' 하며 씩 웃으시는 어머님. '내가 쉰 살만 됐어도 이 때를 최고 성공이고 행복이라고 그렸을 텐데, 일흔 살 되고 보니 다 부질 없네' 하시는 어머님. 짧은 시간 간단해 보이는 그림 한 장에도 사람 한 평생의 역사와 인생의 교훈들이 줄줄 이어져 나온다.

이제 곧 새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이 한 살이 더해질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나의 인생 그래프〉를 한번 그려보자. 굳이 누구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인생 그래프가 직선인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아직 살아보지 않은 미래의 인생 그래프를 뚜렷하게 그릴 수 있는 사람 역시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살아갈 남은 인생의 그래프를 그릴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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