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들이여 주눅들지 말라
노처녀들이여 주눅들지 말라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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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예술평론가



'화려한 싱글'을 꿈꾼다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독신은 연민과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남들이 보기에도 좀 초라해 보이고, 자신도 종종 위축된다. 꼭 집안 어른들이 뭐라고 잔소리를 해서만은 아니다. 독신을 정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 사회 전체의 분위기 때문에 위축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것도 성에 따라 차이가 있다. 독자 여러분들은, 노총각과 이혼남(혹은 홀아비) 중 누가 더 불쌍해 보이는가? 아마 십중팔구는 이혼남일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어떤가? 노처녀와 이혼녀(혹은 과부) 중 누가 더 위축되어 있고 안돼 보이는가? 그건 확실히 노처녀다. 남자가 오랫동안 미혼상태에 있다는 건 그리 흠이 아니지만, 여자가 노처녀로 늙는다는 것은 치명적인 흠으로 인식된다. 노총각은 늙어가면서 좀더 중후해지고 경제적 여유도 생기지만, 노처녀는 흔히 여자로서는 최고의 가치라 여겨지는 '젊음'을 상실한 무가치한 존재로 취급된다.(이는 여자를 단지 육체 덩어리로 보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서 생기는 지혜와 연륜, 인품 같은 것은 여자에겐 별로 소용없는 가치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편견 때문에, 아무리 당당한 싱글이라고 자기암시를 해도, 노처녀들은 종종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신경질도 느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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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실, <고운 노래 모음집>, 힛트레코드, 1975



하지만 이혼 이후는 다르다. 이혼남은 꼭 엄마 잃은 고아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긴 밥해주고 빨래해주던 여자가 없어졌으니 당연하다. 남자 스스로도 자신의 소유물을 상실한 것으로 느끼면서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런데 이혼녀는 다르다. 결혼과 더불어 독립을 했다. 같이 사는 남자가 해주는 일이 별 게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이 정도면 혼자 살 수 있겠다 싶은 자신감도 획득한다. 이혼이 큰 상처이고 경제적 어려움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이 과정을 거치면서 씩씩한 어른이 된 느낌이 더 강하다. 실제로 이혼녀는 거의 주눅들어 다니지 않는다. 옆에 부양할 아이가 있는데도, 노처녀보다 훨씬 여유롭다. 자신의 삶에 대한 관리능력이 늘어난 까닭이다.



그런데 왜 아직도 우리 사회의 여자들은 이런 자신감과 독립심을 결혼을 통해서만 얻는 것일까? 그러니 수많은 처녀들은, 결혼이 별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남자 찾기에 골몰하는 것 아닐까? 1970년대 초에 이런 노래가 유행했다.



1. 어젯밤 꿈속에서 보라빛 새 한 마리를 / 밤이 새도록 쫓아 헤매다 짐에서 깨어났다오 / (후렴)나는 괴롭힐 사람 없는 조용한 여자 / 나는 괴롭힐 사람 없는 깔끔한 여자랍니다.



2. 봄이 되어서 꽃이 피니 갈 곳이 있어야지요 / 여름이 돼도 바캉스 한 번 가자는 사람이 없네요 (후렴)



3. 스물 한번 지나간 생일날 선물 한 번 못 받았구요 / 그 흔한 크리스마스 파티 한 번 구경도 못했다오 (후렴)



4. 나는 소녀가 아니고 여인 또한 아직은 아니지만 / 장발단속에 안 걸리니 여자는 분명 여자지요 (후렴)



<조용한 여자>(이연실 작사·작곡·노래)



곱고 예쁜 선율에 얹혀져 있는 해학적 가사가 재미있다. 4절은 1970년대 중반 유신체제가 엄혹해지면서, '장발단속' 운운하는 것이 정부시책을 빈정거린다고 느껴졌는지 가사가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 웬만한 방송사에도 원래 가사가 실린 음반이 거의 없다.



대개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겠지만 연말이 가까워오는 이즈음 이런 생각을 하는 여자들 아마 많을 것이다. 내가 뭐가 모자라서 남자가 없나, 남들은 다 하나씩 꿰차고 히히덕거리며 다니는데… 이런 고민을 가진 여자에게는 아무리 “네가 모자라서가 아니란다”, “남자, 결혼? 그거 아무것도 아니란다”라고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는다. 자기는 결혼해놓고 꼭 남한테 이렇게 얘기한다고 삐죽거린다.



연애나 결혼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자신의 인생에 참 많다. 또 성인으로서 독립이 꼭 결혼을 경유해야만 이룩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자신의 인생계획은 자신이 짜고 실행해가야 하며, 자신이 늙어 죽을 때까지 일하며 먹고살 대책을 마련하며 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런 당연한 일을 노처녀들은 종종 결혼을 핑계로 방기한다.



이연실의 <조용한 여자>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는 점에서 일단 귀한 노래다. 특히 여자 자작곡가수가 별로 없는 현실에서, 특히 그러하다. 낭만적 사랑의 환상에서 아직 충분히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낭만적 사랑의 꿈을 여전히 꾸고 있는 자신을 충분히 객관화해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 귀엽지만 다소 어리석고 우스꽝스럽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한 걸음 진전한 것이다. 1970년대 청년문화의 새로움은 이런 데에서도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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