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treeapp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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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박진표 감독, 2002)▶

중년 여성들과의 모임 주제가 엊그제는 '노년기의 성(性)'이었다. 노년의 성(性)은 노년의 여러 문제 중에서도 무척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또 그만큼 다루기 조심스럽고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다. 그 전 시간에 수업을 위해 영화 〈죽어도 좋아〉 비디오 테이프를 보고 오자고 했기에, 시작하자마자 숙제 검사에 들어간다. 숙제 검사란 다름 아닌 돌아가면서 자유롭게 영화 본 소감 이야기하기이다.

부모님의 잠자리를 훔쳐보는 듯한 민망함이 있었다는 표현은 아주 완곡한 편에 속했다. 더운 여름날 달동네의 좁은 방, 낡은 선풍기 옆에서 벌이는 두 노인의 대낮 섹스가 너무 문란하게 느껴졌다는 이야기에서부터 구토가 나더라는 소감으로까지 이어지는 중에 가만 듣고 있던 한 수강생이 묻는다.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란 영화를 보니 젊은 두 주인공은 정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대낮에 공중 화장실에서는 물론 다른 승객들도 타고 있는 심야 고속버스에서도 섹스를 한다. 왜 그들의 섹스에는 문란하다거나 구토가 난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이 낮이 되었든 밤이 되었든, 아무도 보지 않는 둘만의 공간에서 두 사람의 노인이 원하는 시간에 하는 섹스가 문란하다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단지 젊은이와 노인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편견 때문이 아닌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어쩔 수 없는 끼여들기, 남이 하면 새치기.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의 섹스는 사랑과 열정, 노인들의 섹스는 주책없음과 문란. 똑같이 먹어도 젊은이들은 미식(美食), 노인들은 식탐(食貪).

노년에 대한 편견은 우리를 서로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로 철저히 갈라놓고 있다. 지금 바로 여기 같은 땅에서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가 속해 있는 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며 자신과 상대방을 평가하는 잣대 역시 완전히 다르다.

여기 저기서 하도 많이 이야기해서 다들 알고 있듯이, 노년 인구는 정말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굳이 숫자를 들이대지 않아도 주위를 둘러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나는 주로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데, 자리가 없어 서서 가게 되면 일부러 '노약자 보호석' 근처에 가서 선다. 앉아 계신 어르신들의 얼굴과 옷차림도 살펴보고, 또 같이 타신 분들이 나누는 이야기도 슬쩍 엿듣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전동차 앞쪽과 뒤쪽에 세 명씩 앉아 마주보게 돼 있는 노약자석에 미처 앉지 못하고 그 주위에 서 계신 어르신들 모습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양보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르신들이 워낙 많이 타시다보니 보호석의 숫자가 모자라는 것이다. 어느 날인가는 옆에 있던 친구도 그걸 느꼈는지 노약자 보호석을 좀 더 늘리든지 아니면 노약자 전용칸이라도 만들어야겠다고 한 마디 한다.

이렇게 이미 노약자 보호석이 노인분들로 가득 차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노인을 다른 나라 사람 보듯 할 것인가. 한 사회가 노년을 바라보는 눈은, 바로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걸어가게 될 앞날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어느 새 나의 사랑이 주책없음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자연스러움이 노인의 추한 식탐으로 바뀌어 버려 거울 속의 내가 울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가. 다행스러운 것은 〈죽어도 좋아〉를 본 또 다른 수강생의 소감이었다.

'영화 속 노인들의 섹스에는 억지로라든가 강제로, 또 내 마음대로는 없었다, 나이듦의 배려를 섹스에서도 찾을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다.' 그것을 찾아낸 중년의 그 밝은 눈이 내게는 오히려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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