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각시의 소풍] ⑥

수세미 만들기 ⓒ박효신
나는 수세미를 좋아해서 매년 씨앗을 심고 정성스레 만들어 소홀히 대함이 없이 사랑 가득 담아 사용한다. 나와 수세미는 서로 길들인 사이이니까.  ⓒ박효신

책읽기 모임이 있었다. 이날 주제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불문학을 강의하시는 교수 님이 책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해주시고 참가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오래도록 이야기되어진 것이 책에 나오는 “길들인다”는 의미였다.

우리말에 “길들인다”는 것은 좀 부정적인 어휘인데 작가는 길들인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쓴 것일까? 불어 역시 그랬는지 책에서 길들인다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 사막에서 어린 왕자가 여우와 나누는 대화이다.

“넌 누구야? 참 이쁘구나.”

“나는 여우야.”

“와서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쓸쓸하단다.”

“난 너하고 놀 수가 없단다. 길이 안들었으니까.”

“‘길들인다’는 무슨 말이야?”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란다.”

“네가 날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아쉬워질 거야.

내게는 네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될 것이구,

네게는 내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야.“

“제발… 나를 길들여 줘.”

“…사람들은 이제 무엇을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사람들은 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산단 말이야.

그렇지만 친구를 파는 장사꾼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게 되었단다.

친구가 갖고 싶거든 나를 길들여.”

“어떻게 해야 되니?”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해.

처음에는 내게서 좀 떨어져 그렇게 풀 위에 앉아 있어.

내가 곁눈으로 널 볼 테니 넌 암말도 하지 마. 말이란 오해가 생기는 근원이니까.

그러나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앉아두 돼…”

이날 나는 ‘길들인다’는 의미가 확실히 이해되었다.

사람은 어떤 대상을 자기가 시간을 할애한 만큼 사랑한다고 한다.

길들이려면 내 시간을 쏟아주어야 하고 그러면 사랑하게 되겠지.

매일 설거지를 하면서 만지는 설거지통 속 수세미. 나는 그 수세미를 정말 깊이 사랑한다. 나는 이 천연 수세미를 얻기 위해 무려 여덟 달 동안 시간과 공을 들인다.

4월에 씨앗을 뿌리고 6월에 꽃이 피고 7월부터 열매 맺어 11월에 수확, 두드리고 털고 삶아 수세미 하나를 얻는다. 우리 선조들은 이것으로 가마솥도 닦고 때수건으로도 썼다.

요즘 젊은이들은 마트에서 파는 수세미, 또는 아크릴 실로 짠 수세미 그것들이 오리지널 수세미인 줄 안다. 나의 작업실에 진열된 수세미를 보고 ‘이게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천연 수세미, 수세미란 이름을 가진 식물, 그것에서 나온 것이 진짜 오리지날 수세미라는 것을 대부분 모른다.

나는 수세미를 좋아해서 매년 씨앗을 심고 정성스레 만들어 소홀히 대함이 없이 사랑 가득 담아 사용한다. 나와 수세미는 서로 길들인 사이이니까. 

박효신<br>
박효신

*필자 박효신은 한국일보 기자, 여성신문 편집부장, 한국광고주협회 상무 등 35년 동안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2003년 충남 예산군 대흥으로 귀향해 2010년까지 7년 동안 농사만 짓다가 2011년부터 마을가꾸기 일을 주도해오고 있다. 그동안 여성신문에 '당신의 경쟁력 자신 있습니까?', '풀각시의 시골살이' 등의 칼럼을 연재해 책으로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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