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20화-끝. 살아 온 남편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한국전쟁 당시 국군 포병부대의 곡사포 사격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전쟁기념관. ⓒ최규화
한국전쟁 당시 국군 포병부대의 곡사포 사격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전쟁기념관. ⓒ최규화

가띡이나 거 참 난리판에 가 있는 사람인데(한테), 아(아이) 없어졌다[딸이 죽었다] 소리는 몬할래라(못하겠더라). 그래 안 했다. 안 하고 있었디 나중에 느그 할배[남편] 휴가 와서, 첫 휴가 오는 걸음에 알았지.

편지를 두 번인가 세 번인가 하고, 느그 할배 칠월 달에 군대 갔는데 이듬해 돌[만 1년]에, 자기 갔던 돌에 첫 휴가를 왔더라꼬. 공 이랐다꼬(이뤘다고) 특별휴가로 보름 해서 왔더라꼬.

안강[경북 경주시 안강읍]에 거 가기 전에 같은 성촌[같은 성의 이웃]이라꼬 우리가 아재, 아지매라 부르는 집이 있어. 느그 증조할아버지[시아버지]하고 친한 집. 느그 할배가 그양 와도 올 낀데, 늦까 저문데(저물고 나서) 가면은 혹시라도 뺄개이(빨갱이)들 나타나까 싶어서 그 집에 가서 자고 왔단다.

이북에서 내르온 사람이 아이고 이쪽에서 생활하던 사람이 있잖아. 뺄개이 생활 하던 사람. 골짹(산골)이고 하니까 혹시라도 그 사람들이 만내까 싶어서, 총으는 다 미고(메고) 왔더라꼬. 응급하면 목숨 피해야 되니까, 휴가를 와도 완전무장 해서 그래 왔다니까.

집까지 오면은 어더블(어두울) 거 같아서 안강에 와가지고 그 집에 가서 자고 왔는데, 또 우리 먼 쪽 일가에 할매가 하나 있었다. 우리가 아지매라 불렀지. 근데 그 아지매가 장 가는 걸음에 느그 할배를 만났는가봐. 느그 할배는 일로(이리로) 오고, 할매는 절로(저리로) 안강장 가고.

오다가 그 아지매를 만내서, 그래 없어졌다[딸이 죽었다] 하더란다. 그 아지매가 말로 하더란다. 오면 아(아이) 볼 끼라꼬 왔디…… 느그 할배가 그래 걸음이 안 나더란다.

그래서 낮에 왔데. 첩때(처음)는 집에 들와도 진짜 살았는강 싶은 생각이 없더라, 야야(얘야). 군인 복장을 해서 그래 들오이(들어오니) 몰랬다. 웬 군인이 저래 오는공, 그랬다.

바가치모자[바가지모자, 철모] 그거 쓰면 얼굴 잘 안 보이잖아. 바가치모자 그거 쓰고, 완전무장 해서, 총 들러미고, 배낭 짊어지고 그래 왔더라고. 길 가는 군인이 물 얻어묵으러 오는강, 그래 생각했다.

“바가치모자 그거 쓰고, 완전무장 해서, 총 들러미고, 배낭 짊어지고 그래 왔더라고.” 사진은 한국전쟁 당시 군복과 군장. 전쟁기념관 소장. ⓒ최규화
“바가치모자 그거 쓰고, 완전무장 해서, 총 들러미고, 배낭 짊어지고 그래 왔더라고.” 사진은 한국전쟁 당시 군복과 군장. 전쟁기념관 소장. ⓒ최규화

미리 편지라도 한 장 하고, 그래 언제쯤 휴가로 간다 그랬으면 알았지. 거[군대]서도 며칠 앞에 가라 소리도 안 했고, 갑자기 특별휴가라꼬 니 가라 하더란다.

그 부대 남은 사람 중에 느그 할아버지가 군대를 제일 머여(먼저) 왔는 거야. 수고도 마이 했고 공 마이 이랐으니까 니 먼저 갔다 온느라 하면서 십오 일로 휴가를 주더라 하더라.

그래서 왔는데, 마당이 이래 기니까 대문 앞에 들올 때도 몰랐어. 모르고 있었는데 마당 가운데 다 와가니까 “엄마!” 그라더라꼬. 그래 누가 엄마라 하노, 싶어가지고 자세히 봤다. 멍하이 이래 봤다. 보니까 그래 낯익은 얼굴이더라꼬. 그래서 내가 나갔다.

“갑자기 어예 이래 오노?”

“안 죽고 살아 있네.”

느그 할배 첫 말이 그거다. 첫마디로 “안 죽고 살아 있네.” 이라데.

“우리사 살지만은 [당신이야말로] 진짜 앤 죽고 살아 오네.”

느그 증조모[시어머니]는 억이 넘으니까(억장이 무너지니까) 반가버도 말도 안 나오고 눈물부터 나는갑더라고. 아들로 끌어안고 빙빙빙빙 돌더라꼬.

“니가 진짜 상회[남편 이름]가? 상회가? 니가 진짜 살아 왔나? 살아 왔나?”

그래 나는 이제 겉밖에(조금 떨어져서) 서 있으이 눈물이, 누가 때린 듯이 나더라꼬.

 

* 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