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생 김두리] “대추남기 앞에 세워놓고 총을 털커덕 하더라꼬”
[29년생 김두리] “대추남기 앞에 세워놓고 총을 털커덕 하더라꼬”
  • 최규화 작가
  • 승인 2021.09.06 11:44
  • 수정 2021-09-06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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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17화. 총부리 앞에서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전쟁기념관. ⓒ최규화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전쟁기념관. ⓒ최규화

엄마는 느그 중간 이모할매[할머니에겐 둘째 언니] 집에 양식 얻으러 간다 하더라꼬.

“야야(얘야), 이래서 안 될따(되겠다). 이쪽저쪽 다 길 막혀서 가도 오도 몬하니까 거 가서 내가 보쌀(보리쌀)이라도 쪼매 얻어오께. 쌀 이거 가지고 얼매나 묵노. 니는 [집에] 있어라.”

엄마가 양식 얻으러 간다꼬 가고, 내가 바아(방에) 누벘다(누웠다). 그래 이 새끼들[인민군]이 오는 거야! 돌아오는 거야. 저쪽으로 길이 팄으면(트였으면) 저쪽으로 갈 낀데, 아군[국군]들이 큰길로, 저쪽버텀(부터) 머여(먼저) 왔는 거야. 그쪼로(그쪽으로) 못 가니까 인민군이 이쪼로(이쪽으로) 뒤돌아 왔는 거야.

[부상병] 미고(메고) 갔던 사람들이 없으니까[달아났으니까] 즈그도 악이 딱 받혔는 거야. 오디만(오더니만) “간나새끼!” 하면서, 동생 찾아내라 하더라꼬. [동생이 숨어 있는 광] 잩(곁)에 오면 숨소리 듣긴다니까(들린다니까). 밤에 못 자놓이 코를 기리고(골면서) 자더라꼬.

그래 이 새끼들 들오는 거 보고, 내가 쫓아[달려] 나갔다. 대문 앞에 나갔다.

“무슨 소리 이런 소리 하노! 당신들이 델고 갔잖아. 내 동생 내놔라. 삼대독자 외디(외동이)다. 그거 없으면 우리 혈손[혈통을 이어가는 자손)도 끊어지고 노부모는 어떻게 하노!”

[인민군들이] 느그 할아버지[남편] 군대 간 줄 알았으면 내가 그때 죽었어. 군인 가족인 줄은 몰랐지. 군인 가족, 면장, 이런 집안은 그놈들이 알면 그냥 안 놔둔다. 어차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뭐. 이놈들이 동생 달러가뿌고(달아나버리고) 없다 하는데, 내가 도로 내 동생 찾아내라꼬 막 그랬다.

“개새끼들! 감자국 끼래(끓여) 가지고 배지[배를 속되게 이르는 말]가 터지도록 밥해 처믹여(처먹여) 놨디! 내 동생 우옜노(어떻게 했느냐)? 내 동생 내놔라!”

이놈들이 또 엄마는 어디 갔냐고 묻데.

“동생 찾아간다고 갔다. 울고불고 갔다. 그거 없으면 우리가 피란하면 뭐하고 살면 뭐 하노. 대도 못 세울 판인데. 무슨 소리 이런 소리 하노! 내 동생 찾아내라!”

엄마가 없기를 잘했지. 그래 이놈들이 “거짓말 하지 마라! 간나새끼 죽인다!” 하면서 내 멕살가지(멱살)를 쥐고 가더라꼬. 나도 마 지 멱살로 들었다. 겁나는 게 없더라.

느그 큰아버지[첫째 아들]가 있으니까, 그거만 살면 이 집[시댁]에는 씨대(씨를 이을 사람)가 있는 거 아이가. 근데 느그 덕암 할배[남동생]는 그때 총각이니까, 죽어뿌면 대가 영 끊기는 기라. 우리 집 대는 끊기는 거야. 내가 죽더라도 저거는 살려야 된다, 그래 생각했지.

“우리 사랑방 앞에, 고 대추남기 하나 있어. 고 날 갖다 딱 서우더라꼬. 서아놓고 지가 총을, 총살을 이래 해서 털커덕 하더라꼬.” ⓒpixabay
“우리 사랑방 앞에, 고 대추남기 하나 있어. 고 날 갖다 딱 서우더라꼬. 서아놓고 지가 총을, 총살을 이래 해서 털커덕 하더라꼬.” ⓒpixabay

근데 동생이 잠 깨서 뭔 일인공 싶어서 그양 나오면 안 되잖아. 그 사람들 있을 직(적)에 나오면 큰일 나잖아. 그래서 내가 괌(고함)을 마 더 크게 지댔다(질렀다). 그 사람들 왔다는 거를 알어라꼬. 몬 나오게 할라꼬 내가 더 소리를 크게 내서, 동생 찾아내라꼬 괌을 괌을 질렀다니까.

그래놨디 “이 간나새끼가!” 하면서 날 죽인다꼬, 총살 시킨다고 끄직고(끌고) 나와가지고, 우리 사랑방 앞에, 고 대추남기(대추나무) 하나 있어. 고 날 갖다 딱 서우더라꼬(세우더라고). 서아놓고 지가 총을, 총살(총알)을 이래 해서 털커덕 하더라꼬.

털커덕거리니까 같이 왔는 놈들이 밖에서 “동무! 동무!” 하면서 부르더라꼬. 그놈이 “왜?” 그라니까 “빨리 나와!” 하는 거야. 그래 총소리 나면 즈그도 다 죽는 거야. 아군이 동네를 둘러싸고 있으니까 총소리 나면 여 그놈들 있구나 하면서 일로(이리로) 다 올 거 아이가. 즈그도 숨어서 달러가야 되는 판이거든.

느그 할매[본인] 죽을 운이 아이든가봐. 그래 가지고 그놈이 “간나새끼!” 하면서 날로(나를) 콱 쥐박아 가지고 이래 처박아뿌더라.

쓰러졌지. 죽었는 줄 알았어, 내가. 속정신[정신을 잃었다가 어렴풋이 차리는 정신]을 가마(가만히) 채려서 생각하니까, ‘이게 죽었는갑다’ 생각하고 있었지. 그래 있었지.

그때 우리 마다아(마당에) 피란 왔는 사람들 이십 명도 더 됐지. 그래 우리 집에 한테(같이) 있어도 아무도 동생 여 안 왔다꼬, 그러지 마라꼬 하나 말하는 사람이 없더라. 내가 그래 끄지께(끌려) 나가도 마카(모두) 겁이 나서 벌벌벌벌 떨고. 아무도 날로 따라오지도 안 해. 마카 벌벌 떨고 앤 보고 있었는 거야.

그래 날로 처박아뿌고 그 사람들[인민군]이 날러뿌고(도망가버리고) 나니까, [마당에 와 있던 피란민들이] 날로 깨바서(깨워서) 물로 떠 믹이고 일받아서(일으켜서) 바아(방에) 델따 놨더라꼬.

아효, 그 사람들[피란민]도 내가 죽었는 줄 알았단다. 나도 내가 살았는 줄 모르고 이래 눈을 떠서 봤다.

“총소리 났나? 내가 살았나?”

“살았다! 어디메 그런 용기가 있었노?”

죽을 판이 되니까 아무것도 겁나게 없더라. 나는 죽어도 내 동생으는 살려야 엄마 뒤를 잇는다는 고 생각만 했다 내가. 나는 죽기는 죽는 줄로 생각했거든. 내가 죽어도 이쪽에서[집 밖에서] 죽으면 저놈들이 날로 죽여놓고는 그양 갈 거니까, 저거[동생]는 살 거니까, 그 생각을 했다.

그래서 쫌 있으니까 저녁답(저녁때) 전에, 오새(요새) 시간으로 하면 한 세 시나 네 시나 되니까 아군들이 동네에 닥치더라고. 하이고 이제는 살었다 싶으더라꼬. 인자(이제) 죽어도 아군 손에 죽지 적군 손에는 안 죽겠구나 싶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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