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궐선거 사전 투표 첫날인 2일 서울 종로구 종로1·2·3·4가동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홍수형 기자
4·7 재보궐선거 서울 종로구 종로1·2·3·4가동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홍수형 기자

이번 선거는 국민의힘 입장에선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선거였다. 한 군데도 아니고 두 군데 모두 승패는 정해졌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얼마나 크게 질 것이냐는 데에 있었다.

선거가 끝나고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의 72.5%가 오세훈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나자 오세훈 캠프의 이준석 뉴미디어 본부장은 "20대 남자, 자네들은 말이지"라며 엎드려 큰절했다고 한다. 이번 선거의 절대적인 결과는 20대 남성들과 자기 덕분이라고 세상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퍼포먼스였다. 이긴 승부에서 자기 공을 키우고 싶은 맘을 가지는 일은 흔하다. 그러나 이번 선거처럼 뻔히 예상되는 승부에서는 웬만한 방식으로는 승리에 기여했다고 증명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이준석 본부장은 이번 선거 결과를 가지고 침소봉대하며 페미니즘이 이 세상의 모든 혼란의 주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왜곡되고 과장된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다. 

몇 주를 흘려들었다. 부실한 이대남 논리를 가지고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그에 동조해 여성징병제니, 군가산점제 부활이니 말할 때도 그러려니 했다. ‘이게 다 페미니즘 때문’이라는 이준석 본부장의 설익은 분석에, 늘 그렇듯 정치권이 선거 내내 감추던 반격(백래시)의 정치를 행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옛말에도 삼인성호라고 세 사람이 모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이대로 두면 없던 이대남이 진짜 있는 존재가 될 판이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이대남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십대 남성들이 반페미니즘 정서 때문에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힘에 표를 던졌다는 분석은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다. 이번 선거의 핵심은 정권심판이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과 제 2도시 부산의 전임 시장들이 성범죄로 인해 자살했고 사임했다. 코로나 전염 사태로 인해 민생이 바닥부터 파탄나고 있는 상황에서 집권 여당은 능력도 없고 눈치도 없이 허구헌날 문제거리를 만들기만 했다. 게다가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를 않고 국민탓, 언론탓만 하고 있다. 조국 사태를 비롯해 월성 1호기 의혹, 검찰과 추미애 법무부의 극한 대립, LH투기, 청와대 김상조 스캔들까지 기회는 그들에게만 주어졌고 그 과정은 불공정했으며 결과는 비리와 부패였고 뻔뻔했다. 진중권 전 교수 말처럼 야당 후보로 막대기를 세워도 이길 수밖에 없는 선거였다. 그런 선거에서 야당에게 표를 준 20대 남성이 다른 세대에 비해 민주당에 더욱 비판적이라는 명제는 가능해도 페미니즘 때문에 여당이 졌다는 주장은 논리성이 전혀 없다. 그것에 대한 비판이 언론, 학계 심지어 국민의힘에서도 있었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정치권이나 여론에서 이대남과 이대녀를 갈라치기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586세대에 잠식당한 기회의 사다리를 다시 놓아주는 것”이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뉴시스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뉴시스

문제는 주변의 합리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준석 본부장이 허위 주장을 사실처럼 말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도 그랬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재직하기 시작한 첫 한 해 동안 2,140가지의 거짓이나 허위사실을 주장했다. 하루에 거의 평균 5.9가지의 거짓말을 한 것이다. 재임 동안 그의 선동으로 일어난 수많은 계층과 인종 간 갈등 선동과 거짓말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시켰다.

이러한 프로파간다는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주범이며 전체주의를 경고하는 위험신호이기도 하다. 한나 아렌트는 다양한 사람을 '한 사람(One Man)'으로 만들고, 새롭게 시작할 능력을 제거하는 것이 전체주의라고 했다. 그는 전체주의 정치인들의 거짓 프로파간다가 시민 개인의 다양한 경험과 토대를 뿌리 뽑아 대중을 가짜 정치의 꼭두각시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멀쩡한 이십대를 이대남과 이대녀로 분류해 라벨링 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자기 식 대로의 해석과 분류는 가부장 정치의 습성이자 유권자를 향한 가스라이팅이기도 하다. 혐오를 자기 이익으로 치환하는 저열한 장사법이다.

이번 국민의힘의 승리는 국민의힘이 만든 결과가 아니다. 남성 위계 사회의 거대한 권력 앞에 용기 있게 나서준 두 피해자 여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미투선거였다. 이번 선거의 승리자는 야당 후보들이 아니라 집권 여당의 오만과 기만의 정치를 심판하고자 나선 다수의 유권자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표심리에 휘둘리지 않고 제3의 정당을 뽑은 15%의 20대 여성들, 5%의 남성들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세세히 살피지 않고 유권자의 표심을 제멋대로 해석해 다양한 마음들을 깡그리 갈아 ‘이대남'으로 딱지 붙이는 일은 곧 그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민의힘에게 도움 되는 말 한마디만 하겠다. 국민의힘이 얼마 남지 않은 대선에서 이기고 싶고, 제대로 된 정당 역할을 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들을 불신하는 국민들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부디 민주당이 지난 4년 동안 보여준 어리석은 일들을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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